지금껏 종합편성채널에 관한 논의는 거의 단일한 전선이었다. 탄생 과정은 위법하며, 방송 내용은 형편없이 편향이고 시장 원리에 입각한 방송사로서의 존속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JTBC 변수가 등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석희 쇼크’가 언론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5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던 손석희가 ‘종편사 사장’으로 영 어색해 보이던 자리 이동을 했다. 그리곤 9월 16일부터는 직접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 80여일 만에 JTBC를 보는 사회적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냉정히 말하면 두렵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정말 생각지 못했다. 어느 정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거니 했지만, 불과 두 달여 뉴스의 정체성을 바꾼 모습이다. 지금 JTBC 뉴스는 단순히 볼 만한 뉴스가 아닌 볼 가치가 있는 뉴스이다.”

▲ 지난 11월 6일자 JTBC 보도. 국정원이 직원 김모 씨의 변호사 비용을 지불했다고 단독보도했다. (관련 화면 캡처)

주목할 만한 현상이 되어버린 JTBC의 2개월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손석희 뉴스의 지난 2개 월 여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례적인 평가가 아니다. ‘보이는 시선집중’이라고도 불리는 손석희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방송계 안팎에 점점 두터운 경외를 쌓고 있는 중이다. 그 어떤 방송도 이렇게 빨리 채널에 대한 신뢰를 획득하며 나아간 적은 없었단 점에서 이는 방송사적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과거, MBC 뉴스가 ‘마봉춘’이라 불리며 광장의 관심을 샀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MBC 뉴스를 향한 대중의 환호는 신경민이라고 하는 걸출한 앵커의 활약도 있었지만 <PD수첩> 등 강세를 보였던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오랜 지지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던 것이었다. 개별 리포트들에서는 별로 다를 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뉴스가 상대적으로 좀 낫고, 언론 장악의 상황 속에서 MBC를 지켜줘야 한다는 상대적 조건도 달려 있었다.

하지만 JTBC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MBC가 갖고 있던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를 JTBC는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탄생 과정에 대한 ‘시비’는 여전하다. 꽤 좋은 보도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노동 현황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JTBC 기자들은 여전히 민주노총 주최 집회나 행사에서 취재 불허를 고지 받는 입장이다. 손 사장 취임 이후 그 강도는 전과 같진 않지만 여전히 다수의 진보적 인사들은 JTBC에 출연하길 꺼려한다.

▲ 심상정 의원의 삼성 노동조합 무력화 문서를 보도한 JTBC 뉴스9 (방송 화면 캡처)

현재까지의 유일한 키워드 ‘손석희’

이러한 상황에서 JTBC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좋은 뉴스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이 무엇보다 손석희라고 하는 개인의 참여 이후 달라진 상황이란 점은 더더욱 그러하다. 손석희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전, JTBC의 뉴스는 채널A나 TV조선의 뉴스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기본적으로 ‘보수 일색’의 시각과 ‘정부 편향적’ 보도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금, 지상파 방송 뉴스들처럼 진보적 의제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고, 정부의 발표 저널리즘을 확대 재생산하는 ‘스피커’로서의 기능만 충실했다.

단적으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압수수색 당하고 체포당하던 지난 8월 말 JTBC의 뉴스 경향은 다른 종편과 그리고 지상파 방송의 뉴스들과 정확히 한 덩어리였다. ‘종북’ 프레임으로 여론재판을 몰이하던 다수의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관련 보도나 쌍용차 문제 그리고 여야 대치 정국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있어서 JTBC의 뉴스는 지상파를 포함해 모든 방송 뉴스 가운데서 가장 비판적인 그리고 굳이 좌우의 스펙트럼을 나누자면 가장 왼쪽에 서는 소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삼성방송’이라고 불리는 JT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언론 지형을 낳고 있다.

이걸 설명하는 유일한 키워드는 현재까지는 손석희다. 지상파 방송이 막강한 콘텐츠 파워에도 불구하고 ‘저널로서의 기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뉴스의 품질 문제 때문이라면 반대로 현재 JTBC는 이러저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뉴스의 품질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는 그렇다면 JTBC가 현재 ‘유일하게 저널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음을 말하다. 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지금 던져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이 던져진 까닭은 그 만큼 우리의 언론 수준이 형편없을 정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손석희는 날로 퇴행해온 지난 몇 년간의 언론 지형에서 몇 안 되게 제 자리를 유지하던 기성 언론인이었지만, MBC는 그를 품지 못하고 사실상 내버렸다. 10년 가까이 ‘신뢰받는 언론인 1위’를 지켜온 그가 기성 언론의 현장에서 완전히 ‘박대’받았던 상황이야말로 오늘 JTBC의 질주를 낳은 토대인지도 모른다.

▲ 지난 11월 5일 JTBC 뉴스9. 이날 JTBC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보도가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지난 27일 방통심의위원회로 부터 중징계가 예고됐다. 김재연 통진당 대변인, 김종철 교수, 박원순 시장 등 정부 조치에 반대하는 인사들의 의견만 보도했다는 이유에서다. JTBC 측은 방통심의원회에서 "반론권 차원에서 김재연 대변인을 출연시켰다"며 "우리가 균형잡힌 보도"라고 항변했다.

유일하게 봐줄만한 종편 채널인 JTBC의 라인업

보도 경향뿐 만은 아니다. JTBC는 그간 종편사 가운데서는 거의 유일하게 볼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채널이었다. 광고업계 관계자들은 “광고주들은 그나마 종편에선 JTBC만 유일하게 광고를 꽂을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한다”고 할 정도다. 다른 종편들은 ‘관리’ 차원에서 협찬 광고를 주는 것이지 특별히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전무하지만 JTBC는 ‘타킷 오니언스’가 분명한 몇몇 프로그램들을 통해 자생적 힘으로도 광고를 유치할 수준이 되는 콘텐츠들이 있단 얘기다.

JTBC는 ‘무자식 상팔자’를 비롯해 ‘인수대비’, ‘빠담빠담’, ‘아내의 자격’ 등 지상파에서 했더라면 능히 2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드라마들을 꾸준히 방송해왔다. 이 가운데 몇몇은 종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끌어낼 정도로 수준급 작품들이었다. 다른 종편들이 제작비를 이유로 사실상 종편 채널로서의 기능을 포기하며 저질 보도물 제작에 ‘올인’하는 동안 JTBC는 유일하게 드라마를 만들어왔고, 완성도 측면에서도 경쟁이 가능한 수작들을 내놓았다.

예능 역시 타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단 평가가 일반적이다. 최근 ‘히든싱어’의 경우 초창기 ‘슈퍼스타K’의 분위기를 연상시킬 정도로 안착에 성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썰전’과 ‘마녀사냥’은 정치와 예능, 시사와 토크쇼의 경계를 질주하며 젊은 세대의 ‘페이보릿 콘텐츠’에 속할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화방송’과 ‘닥터의 승부’ 같은 프로그램도 케이블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기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기획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JTBC는 종편 4가 가운데 유일하게 ‘드라마, 예능, 교양, 뉴스’의 라인업 구성이 가능한 방송이다. 세상이 모두 종편을 비웃을 때, 그나마 꾸준히 제 역할을 고민하며 편성의 틀을 지키고 프로그램의 질적 진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 손석희라고 하는 터닝 포인트를 만나며 급격하게 팽창했다고 보는 것이 현재 JTBC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일 것이다.

▲ 서울 중구 서소문로 중앙일보 사옥 ⓒ미디어스

여전한 꼬리표, 하지만 달라진 지형

물론, 태생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종편이라고 하는 체제의 출범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종편에 어떤 것이 담겨도 문제라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JTBC의 경우 중앙일보-삼성과의 연계성을 떼어놓고 말할 순 없다. JTBC의 진화를 중앙일보가 받아들여야 하는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JTBC의 변화는 온전한 것이라기보다는 ‘액세서리’일 수도 있단 시각 역시 유효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경제적 독자 생존 가능성은 높지 않다. JTBC가 그나마 종편사 가운데 유일하게 구색을 맞추는 라인업을 선보이는 동안 JTBC의 적자폭은 종편사 가운데 가장 컸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다양하게 만들수록 손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타사들이 ‘최대한 내부를 짜내는 경영’을 했다면, JTBC는 유일하게 그 전략을 취하지 않았고 그 부담은 재정의 적자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탄생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얼마 전, 언론노조 주최 행사에서 취재를 불허하니 나가줄 것을 요구받으며 JTBC의 한 기자는 정중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보도하겠습니다. 저희에 대한 입장은 언제 바뀌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날 행사에 ENG카메라가 JTBC가 유일하던 상황에서 듣고 있는 사람도 머쓱한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점점 애매해질 수밖에 없는 경계선에서 JTBC는 지금처럼 계속 아슬아슬한 질주를 해나간다면, 분명 그 경계는 사선이 될 것이다. 경제적 조건 역시 역설적으로 JTBC가 가장 확실한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단 점에서 크게 위협적인 문제는 아닐 수 있다. 홍석현 회장은 얼마 전 천문학적인 배당을 받기도 했고, 향후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그 자체로 JTBC 영업에 엄청난 기폭제가 될 것이다. 삼성 그룹 차원에서 JTBC라고 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단 판단이 공유되면, JTBC는 계속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삼성방송’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JTBC가 지금과 같은 아니 더 진화된, 손석희 사장의 표현을 빌자면 “한 발 더 나가는” 내용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지금 JTBC 앞에 놓인 과제일지 모른다. 만약, JTBC가 이 장벽을 돌파해버리면 종편이라고 하는 플랫폼의 위상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손석희라는 지렛대다. JTBC가 이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손석희를 타고 넘는 것이다. 이 중요하고 위험한 게임에서 손석희 사장은 끝내 승리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한 종편사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한국사회의 언론 지형 전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방송통신심의위를 시작으로 이제는 불편해진 방송 JTBC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은 이미 시작됐다. 1차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손석희 체제가 맞은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