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순정만화의 교본, 이미라 작가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보면 잘 만든 순정만화가 모두 그러하듯 소녀를 설레게 하는 여러 가지 타입의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보통의 여주인공 이슬비를 문득 부럽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가 안소니와 테리우스의 양면을 가진 남자 푸르매 혹은 서지원의 종착지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성으로 무장한 조종인이 사랑 때문에 우스워지는 꼴이 설레긴 했지만, 딱히 부러움을 느끼지는 않았지요. 여주인공이니까 이런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만화가 엔딩을 향해 달려갈 때 즈음 이란성 쌍둥이 조휘인의 회상은 저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처음부터 좋았던 소녀라고. "무르익다"도 아니고 순간의 자각도 아닌,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했다니. 믿을 수 없었지요. 그는 형과 서지원이 그토록 뜨거운 호적수로 서로를 겨누고 있을 때조차 평온을 지켰던, 그저 여주인공의 친절한 선배님일 뿐이었으니까요. 그 자신은 물론 작가조차 설명해주지 않았던 그의 사랑이 천성이라 생각했던 무수한 친절 속에 묻어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짠해지더군요. 바보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는 단 한번도 나를 사랑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
근성녀 성나정은 툴툴 털고 일어나 영화를 같이 봤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그 이상을 바라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시청자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나정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었고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잊을만하면 성나정의 마음이 일방통행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남겨주고 사라집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어슴푸레해서 답답하고 갈증이 납니다. 이런 상태에서 오리무중한 쓰레기의 선택은 화를 부채질하는 짓이나 다름없었죠.
사랑하고 있다면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겠지라는 예상을 실망하게 하지 않은 것은 칠봉의 선택 하나뿐이었습니다. 미련 없이 삼천포행의 티켓을 끊은 칠봉과 가지 않은 쓰레기. 제작진은 이 장면을 가혹하다 싶게 극과 극으로 나누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 지금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차라리 상념에 잠겨 의학 서적이라도 독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좀 나았을까요. 그녀가 있는 곳을 버리고 선택한 곳이 고작 당구장이라니. 이쯤 되면 생각을 환기하는 것을 넘어 뒤집어버리게 됩니다. 쓰레기에게 성나정이란 그저 귀여운 여동생일 뿐인가.
"아, 죽겠다." "뭔 일 있어?" "그러게. 와 이렇게 늦었노." 당구장에 도착해서 던진 첫마디의 대사들에 희망을 실어 그가 삼천포로 뛰어가다 발걸음을 돌렸을 가능성 또한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다 돌아왔어도 바보고 안 갔어도 바보죠. 경상도 사투리로 반피나 다름없는 그는 무엇을 택했든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분명 멋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이게 바로 이 남자가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인 것을요.
저는 캐릭터를 죽이지 않는 방법은 멋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캐릭터의 일관성을 지키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특히 쓰레기의 캐릭터에 관해서는 강박적이다 싶을 만큼 이변을 추구하지 않았죠. 흰 우유를 마시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공을 들이며 캐릭터의 일관성을 지켜주고 있지요. 그리고 쓰레기는 그 일관성만큼 감정의 진화를 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더 이상 여자로 다가서는 나정을 외면하거나 농담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습니다. 볼일을 보는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바지를 벗겨대던 아이가 이제는 작은 손길에도 예민해져 토라집니다. 결코 둘 사이에 사과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이 사과가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는 사과하고 받아들이며 여자가 된 이 아이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빠가 씻겨줄까?" 마치 테스트하듯 한쪽 볼을 부풀려 웃으며 농담을 던져봤다가 곧 허무해져 수습해버립니다. "농담이다. 이 가시나야." "안 본다. 이 가시나야. 그만 가리라. 옷 다 늘어난다."
"아이, 어제 나정이랑 마누라 죽이기 보지 않으셨어요?" 빙그레의 질문에 그는 얼어붙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이전에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봤던 '마누라 죽이기'라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이상 상태인 자신을 자책하며. 마치 스스로에게 해답을 찾듯 상념에 잠겨있던 그는 말합니다. "아니, 개얀타. 내 내용 한 개도 기억 안 난다. 어제 보긴 봤는데…. 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칠봉과 나정은 비슷한 결핍과 같은 방향의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는 둘은 스무 살이고. 같은 애정을 갈구하기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사랑 같은 가족애와 가족애 같은 사랑이죠. 결핍을 채워주는 일에만 급급했던 쓰레기는 그녀를 갈구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식하는 것조차 죄라고 생각하겠죠. 그래서 그의 반피처럼 멋없는 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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