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의 흔한 결말은 몇 년 후다. 이것은 아주 힘겨운 전개로 끌고 간 드라마일수록 어쨌든 행복했다는 말을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자들 특히 황정음과 배수빈의 극한을 끌어내는 연기에 푹 빠져 있던 시청자라면 이런 해피엔딩에 다소 불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든다면 <비밀> 역시도 한국드라마의 지병인 난데없는 해피엔딩의 전형을 거의 따라갔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역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역량과 상관없이 상업드라마의 본질적인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마 전 우연히 고참 드라마 PD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손현주와 송채환 주연의 웃기면서도 지독하게 슬픈 단막극에 대한 일종의 고백 비슷한 것이었다. 드라마 흐름대로 가면 반드시 새드엔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던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 PD의 말을 거의 비슷하게 옮긴다면 이렇다. “뭐 대단한 예술 한다고 사람들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겠나”는 것이다. 그것은 자조가 아니라 애정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드라마로 인해 웃고 우는 사람들에게 신기루 같은 행복을 주고 싶다는 정신의 발로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안도훈 같은 인물이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의 생존에 갑자기 회개하고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일이다. 또한 키운 정 때문에 무릎 꿇고 매달리는 입양모에게 결국 아들을 맡기는 것도 너무 멋스런 결정이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평범한 결단은 아니었다. 사실 작가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해피엔딩의 강박이 시킨 작위였을 것이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이 드라마는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불행의 끝을 봤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려니까, 혹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의 행복한 결말은 분명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은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결말의 구조가 어떻냐는 등 따지고 물을 사람보다 행복해서 좋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은 틀림없다. 더 많은 사람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것은 그 허술함을 훌륭하게 덮을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배우들을 이틀 더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은 결말의 불만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마지막까지 눈물을 아끼지 않았던 황정음의 시작과 달리 많이 성숙해진 모습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으로 남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배수빈의 뼛속까지 악인의 연기는 두고두고 감탄할 만하다. 그런 점들은 결말이 어떻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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