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밀매나 마약거래처럼 불법적인 일은 합법적인 일을 할 때보다 생기는 이득이 많지만, 그와 더불어 위험도 커진다는 걸 의미한다. 경찰에 적발될 위험도 크지만 일이 수틀릴 경우에는 불법 거래에 영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떄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카운슬러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미국은 변호사의 천국이다. 인구 대비 소송 건수가 우리나라를 앞지르기도 하지만 변호사의 수입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당히 쏠쏠하다. 주인공 카운슬러의 직업은 변호사. 사고만 치지 않으면 평생 황금알을 낳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거기에 하나 더, 그림같이 아름다운 약혼녀까지 두었으니 카운슬러의 인생은 남부럽지 않은 인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수입이 좋다 한들 지출이 많으면 그 인생은 적자 인생을 면하지 못할 터, 카운슬러는 수입에 맞는 지출을 할 줄 몰랐다. 결국 그가 택한 길은 변호보다 달콤하지만 독약 같은 제안, 마약 커넥션이라는 양날의 칼을 선택한다.

잘만 되면 높은 수익이 보장되지만 일이 꼬이는 경우 이득은 고사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리스크가 목을 겨누는 상황을 택한다. 파생상품이 주식보다 적게는 열 배, 많게는 몇 백 배의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방향을 잘못 타면 거래자에게 치명타를 안겨 주는 것처럼 말이다.

잘 나갈 때 불행을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완벽할 것만 같았던 카운슬러의 고소득 재정 설계인 마약 커넥션은 누군가의 음모로 파국을 맞는다. 카운슬러와 그들의 동업자를 쫓는 살인귀들의 추적은 집요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추적을 피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이어야만 한다. 하나는 카운슬러가 불귀의 객이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하거나, 다른 하나는 ‘아웃 오브 어스’ 지구를 떠나야 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한 마디로 데드 맨 워킹,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하고야 만다.

욕심이 도를 넘었을 때, 탐욕이 풍기는 악취가 악취를 넘어서서 죽음의 여신과 키스해야 하는 상황을 영화는 치열하리만치 묘사한다. 탐욕이 어떻게 죽음의 여신에게 이끌어주는 중매쟁이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가 <카운슬러>다. 제목은 반어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사내가 카운슬러로 불린다는 건 상당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하나 더, 카운슬러와 그의 조력자들처럼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운명의 여신이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인간의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 실현되지 못한다.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개짓이 다른 편에 태풍을 몰고 오는 나비효과마냥, 인간의 계획 저 너머에 있는 불확정성은 계획이라는 이성적인 행동 자체를 무위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갖는다.

<카운슬러>는 이성적인 계획이라는 야심찬 마약 커넥션을 무위로 만들어버리는 불확정성에 주목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은 행운이 연이어 다가올 때를 조심했다고들 한다. 잘 나갈 때 행운을 덜어내는 것이 액막이라는 걸 옛 그리스인은 알았지만, 이성 만능주의에 침잠한 요즘 세태는 이러한 지혜를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카운슬러>는 잘 나갈 때 일부러 행운을 덜어내려 하지 않고 도리어 대박이라는 잭팟을 쫓다가 인생이 꼬이는 파멸의 암울한 그림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파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 하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파멸하는 걸 알면서도 카운슬러가 걸었던 파멸의 길을 추구하는 불행의 길을 자초한다. <카운슬러>의 인생 군상을 눈여겨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잘 나갈 때 대박을 향해 달리다가 잘못하면 인생 그 자체가 한 방에 훅 간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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