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데 성공해, 모두가 그 개념을 언급하고 사용해도 책은 별로 안 나가는 경우가 있다. ‘큐레이션’이 딱 그런 경우다. 너무 명료한 개념이라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SNS에 ‘올웨이즈온’ 되어있다가 오랜만에 《큐레이션의 시대》(민음사, 사사키 도시나오, 2012)를 펼쳐본다.

책이 말하는 것은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해낼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큐레이션’이다. 많은 기업이, 개인이, 커뮤니티 운영자들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메일을 보내고, 광고를 진행하며 ‘사람들은 이걸 볼까?’,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라고 생각한다. SNS가 등장하기 전 지난 몇 년간의 광고 메일의 제목 낚시는 더 심했고, 메일의 양은 넘쳐났다.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이전과 같은 무제한 광고 메일 발송을 사용자가 직접 제한할 수 있게 조치가 취해졌다.
그럼, 정보는? 문제는 정보 불균형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의 SNS를 사용해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수집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다른 사람과 교류한다. 이런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매스 미디어에서 나오는 광고나 기사 같은 걸 읽어야 하지? 정보는 이미 충분한데.’ 제공하려는 사람들의 넘쳐나는 정보와, 정보를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사라지는 불균형에서 큐레이션은 시작된다.
큐레이션은 매일 쏟아지는 정보 더미 속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정보를 필터링하는 가치가 이전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다. 문맥을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능력이 된다. 바로 이것이 큐레이션이며, 이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는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보전달자인지만 중요하다. 과거에는 협업과 축적, 공유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정보를 잘 모으는 것(aggregateing) 이 협력해 축적하는 것(Collaborating) 보다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위키 재단의 어드바이져이자 집단지성을 강조해온 뉴욕대 교수인 클레이 셔키의 말이다.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곳에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정보로 감명을 줄 수 있을까’다. 이전에는 신문, 텔레비전, 잡지, 라디오, 전단지나, 가두 광고에 정보가 흘렀고, 사람들은 여기에 정보를 던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정보가 공유되는 권역이 인터넷의 영향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비오톱’이라고 부르며, 뻣어나가는 작은 비오톱(때로는 갑자기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우리는 이걸 SNS에서 ‘떡밥’이라고 부른다)을 발견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권한다. 단순히 정보의 질이나 역학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비오톱이 화제를 일으킬 때 소위 정보가 ‘터지기’ 마련이다.
비오톱을 정확히 찾아 맞춰서 정확한 정보를 정확한 장소에 내보내려면? 저자는 천부적 재능과 기량,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그마저 인지하지 못하면 정보의 바다에 빠져 표류하거나 잠식당한다. 큐레이션이 작용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흔히들 일본 사회를 우리보다 10~20년이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영화계와 음악계 모두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버블로 성공하고 쇠퇴했다. 이 시기 등장한 CD와 DVD는 저렴해졌고, 기기와 매체의 변화에 힘입어 버블이라 할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뒤따랐다. 저자의 말대로 이 시기 일본은 ‘콘텐츠 버블’ 상태였다. 이 때 등장한 아이튠즈는 온갖 콘텐츠를 평평하게 나열하고 쌓고, 콘텐츠 사이의 관계성과 감각까지 아우르며 편리성이 높은 공유 공간, 즉 ‘앰비언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레코드점 주인과 대화를 하며 음반에 대한 정보를 얻는 비오톱이 사라지자 음악은 음원화되었다.
그럼 기술과 환경의 변화가 아닌 인간 자체는 어떨까? 인간에게는 시선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2채널이 그런 예다. 또한 연결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소비 시장을 변화시킨다. 패키지, 매스미디어, 숨 막히는 집단 사회, 과시적 소비로 인한 소비 사회를 대체한 것은 ‘투명한 존재’를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응원 소비’도 그런 예다.
“상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신념에 동의하거나 구입을 통해 만드는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목적이 가미되어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112쪽)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한 광고에 참여하는 것일까? 답은 명확하다. 자기가 블로그에 좋은 음악을 소개함으로써 누군가가 그것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어필리에이트 광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블로그에 올린 것에 누군가가 기뻐해준다는 것.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아이튠즈의 어필리에이트 광고에 참여하는 것이다.” (113쪽)
첫 번째에서는 독자들에게 일 시키고, 펀드 자금을 동원하는 출판사 북스피어를, 두 번째에서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광고를 공유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취향’도 기업에게 돈으로 제공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세계문학전집 같은 광고는요,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기’를 하고 싶어요. 왜냐면 내 담벼락에 올려서 제가 그걸 본다는 품위를 드러내잖아요.”
재밌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격전지인 웹은 수평적이다. (소속을 주로 기재하는 페이스북보다는 트위터가 그런 경향이 강하다) 콘텍스트를 공유한고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며 그 안에서 ‘인게이지먼트’가 형성된다. 기업과 개인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셀레브리티와 일반인의 경계 외의 위계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트위터는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중시되는 세계다. 팔로어가 많고, 광고만 RT할 경우 우리는 이 계정들을 찾아내 ‘언팔’한다. 기존의 매스마케팅 기법을 도구만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사람들의 신뢰’라는 것이 가시화되고 금세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정보 그 자체의 진위를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 정보를 보내고 있는 사람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관점으로 하는 정보 유통은 압도적인 유용성을 가진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세계에는 수많은 큐레이터가 존재한다.
책이 주로 예로 드는 것은 음악이다. 또 책에서 언급되는 비오톱은 결코 온라인에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정확히 갖다 꽂는 정보는 무명의 화가를 스타로 만들고, 서브 컬처를 공략해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이끈다.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정보의 미래 비전’이다. 눈치 빠른 기업은 이렇게 행동을 바꾼다. 유저는 이 변화를 기다리거나 혹은 떠밀려간다. 그럼 궁금해진다. 좌파는, 소위 진보는 이 변해가는 환경에서 ‘정보와 신뢰’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럴까? 우리가 지금 담벼락에 공유해야 하는 정보가 과연 영국에 간 동양 여성 정치 지도자의 사진일까.
“매스미디어를 경유하여 정보를 통제하는 종래의 ‘광고’는 소멸된다. 매스미디어의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홍보’도 비오톱이 무수히 생겨나는 와중에 의미를 잃게 된다. 광고도 홍보도 판매 촉진도 드디어 일체화되어 ‘어떻게 적합한 비오톱을 찾고 유용한 정보를 발신할까?’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짜고 분산시키고 적합한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는 광고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맺음말)

미스김

블로그를 운영했던 흑역사를 지닌 미혼의 직장인. 현재 글밥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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