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제4회 아시아 미래포럼에서 지난 10월 28일 2013년 동아시아 사회책임경영 30대 우수기업을 선정했다. 일본기업이 17개, 한국 8개, 중국 5개 뽑혔다.

한국 사회책임경영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삼성 SDI가 포함돼 있었다. 진보지식인들은 한겨레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 삼성계열사에게 사회책임경영 상을 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29일자 한겨레 2면 기사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장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도대체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떻기에 삼성전자와 삼성에스디아이가 '사회무책임'경영 우수 기업이 아니라 '사회책임'경영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것일까”라고 비판했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역시 <매일노동뉴스>에서 아시아 미래포함의 기준인 거버넌스·환경·사회 분야를 두루 훑어봐도 삼성이 높은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지원 실장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역할의 실제 변화보다는 치부를 가리기 위한 홍보효과 역할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대규모 정리해고로 문제를 일으킨 한진중공업의 지주회사 한진중공업홀딩스를 한 CSR평가전문기관이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강제노동으로 악명을 떨친 아이폰 제조업체 폭스콘은 노동자 집단자살 사건 이후 오히려 CSR 평가점수가 더 높아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취지, 평가기준을 이해하지 못해 나온 비판"
하지만 한겨레경제연구소 측은 이러한 비판이 조사의 취지와 평가기준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왔다는 입장이다. 본지와 통화한 한겨레경제연구소 이현숙 소장은 “사회책임경영(CSR) 우수기업을 선정하는 취지는 그 기업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게 CSR의 기준을 일깨우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CSR이 담론적으로 논의된지는 몇 년이 지났으나 기업들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아직도 CSR이란 이름을 단 부서를 갖춘 기업도 별로 없고 사회공헌팀 등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한다. 또 사회책임경영이란 명칭을 쓰는 경우라도 그 조직 내부에서 한직이라는 인식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또 “언론이 현실적으로 기업의 CSR 실무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수기업선정이라도 하면서 그들을 불러내 인식의 전환을 꾀하려는 것이다. 또 조직내부에서 그들의 위상을 높여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사회책임경영이란 게 내부에서 실무자 한 명이 착한 사람이라고 잘 실행이 되는 게 아니고 경영진과 실무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데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작은 노력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제4회 아시아 미래포럼의 소식을 다룬 29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한국 전문가위원회는 4대강 사업과 원전 비리, 대주주 일가 횡령 등에 연루된 기업들은 배제했다고 밝혔다”고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배제의 조건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겨레 경제연구소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선 ‘평가 기준의 측면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다’라는 반응이다. 이현숙 소장은 “한·중·일 사회책임경영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조직인 전문가위원회가 평가를 한다. 나라별로 3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사람들이 환경, 사회, 거버넌스 3개 분야에서 20개의 지표의 가중치를 결정한다. 올해의 경우 환경이 35점, 사회가 35점, 거버넌스가 30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단은 정량적 평가를 하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120여개 기업 중에서 30개를 골라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거버넌스에서 약한 점수를 받았지만 환경이나 사회, 특히 임직원 복지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노조활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지만 삼성은 그 부분에서 점수를 얻지 못할 뿐 따로 점수가 깎이지는 않는다. 지표를 평가하는 자료는 기업에서 제공한 것이 아닌 공개된 자료를 쓰며 2012년의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4대강 사업, 원전 비리, 대주주 일가 횡령 등에 연루된 기업을 배제했다고 설명한 것처럼 정성적 평가도 한다. 하지만 정성적 평가에 의한 ‘네거티브 스크린(Negative Screen)’의 기준은 현실적 한계 때문에 금년 5월까지 보도된 내용들을 토대로 한다. 최근 공개된 삼성의 노조 탄압 문건은 5월 이후의 상황이니 아직 반영이 안 된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삼성 계열사는 평가 대상에서 빠지게 되느냐”라는 질문에 이현숙 소장은 “법원 판결에 나오게 된다면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정성적 평가의 기준은 불법행위에 있는 셈이다. 이 소장은 “3국에 동등한 ‘네거티브 스크린’ 기준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상대적으로 나은 기업'인 씁쓸한 현실 드러내
한겨레 경제연구소 측의 설명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삼성이 법원까지 주무르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 실정에서 불법행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삼성에게 대단히 유리한 기준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 역할의 실제 변화보다는 치부를 가리기 위한 홍보효과 역할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란 비판이 유의미해지는 지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기업들이 사회책임경영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고 우수기업 선정이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다. <한겨레>가 잘못된 길을 간다고 전적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한중일 3국에서 30개의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을 선정할 때 삼성이 그 범위 안에 들어가는 씁쓸한 현실을 인지해야 할 필요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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