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를 다룬 서사물을 무척 즐긴다. 영화, 드라마에서도 사극을 좋아하고 역사소설, 역사만화도 좋아한다. 실존 인물들이 실제 사건에서 특히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가. 그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거창한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즐길거리도 된다. 과학과 기술에 얽힌 역사도 마찬가지. 당대에 이미 종결된 것 같은 고리타분한 지식이 사실은 오늘날 내가 누리는 편안함과 즐거움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즐길만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하지만 역사서사물은 역사서나 다큐멘터리처럼 엄밀한 사실에 기반하지는 않는다. 즐길거리로서 또 상업적 성공을 기대한 매체로서 재미를 위한 픽션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물론 역사서나 역사다큐도 발굴된 사서나 유물이 밝혀주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은 소위 말하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 역사적 상상의 기반은 역시 사서나 유물 등이다. 하지만 창작물로서의 역사서사물은 재미와 상업적 성공을 위해 그 사서나 유물 등 팩트를 가공하기도 한다. 역사적 엄밀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독자나 시청자들은 이런 가공에 "역사왜곡"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 자신의 선조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는 이유로 작가나 제작측에 항의 혹은 법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가공의 사건이나 인물이 실제 역사에 개입한 역사기반 창작서사물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하고 역사적 사실을 준수할 것을 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창작 앞에서 역사적 사실 역시 창작의 재료가 되어야 하는가. 이 고민은 이제 독자나 시청자들의 수준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역사기반창작물을 역사와는 별개로 서사의 촘촘함과 참신함 서사로서만 즐기며 이것이 실제 역사와는 엄연히 다른 '창작물'임을 인지하고 실제 역사와 비교하는 것 역시 창작물을 쏠쏠하게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도. 이미 여러분들이 다 잘 알고 있는 것을 새삼 새로운 것처럼 이야기하자니 쑥스럽다.

대신 다른 부분에서 엄밀해졌다. 서사에서 가공의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는 것에 관대해진 반면 서사물이 다루는 당대에 대한 묘사에 민감해진 것이다. 다루는 시대의 미시적인 것들 이를테면 사상이나 관습같은 당대인들의 의식구조나 복식, 음식 등 생활사적인 것들.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읽은 책들에서 얻은 해당 지식이 즐겁게 보는 역사서사물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어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가 된다. 문득 이런 쾌감을 주는 역사 서사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로마>, <보드워크 엠파이어>, <보르지아>, <튜더스> 등 주로 미국드라마들이다.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되짚기는커녕 당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극적인 이야기에만 집중하여 보는 즐거움과 함께 시청자들로 하여금 당시를 호흡하게 하는 매력적인 드라마들. 자국이나 자민족, 선조의 역사가 아니라서 그런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역사 드라마들 중에서 최근 <바이킹>이라는 시리즈가 나를 사로잡았다.



드라마 <바이킹스>

드라마 <바이킹스>은 역사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인 히스토리 채널(캐나다)에서 제작한 2013년작 드라마로 시즌 1이 끝나고 2014년 시즌 2가 방영예정이다. 때로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약탈자로 때로는 유럽 각지에 흔적 이상의 궤적(유럽 각지에서 왕조를 개창한다던가)을 남긴 용맹한 모험가이자 정복자로 그려지는 바이킹들의 이야기를 여러 재미있고 참신한 역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했다니 흥미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 드라마는 바이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바이킹스>의 주인공 라그나 로스브로크는 역사와 전설 양쪽에 발을 걸쳐 놓은 9세기경의 바이킹 영웅이다.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모험담은 북유럽과 영국, 프랑스에서 다양하게 발굴되며 역시 수많은 바이킹 영웅들의 아버지로 거론된다. 하지만 라그나의 아들로 거론되는 이들이 대부분 역사적 인물인데 반해 라그나 로스브로크는 그 역사적 실존성이 불분명하다. 많은 무명의 바이킹 영웅들의 행적이 그 이름에 흡수되었다. 학자들은 덴마크의 왕 레긴프리드(?~813)나 홀릭 1세(?~854) 혹은 덴마크의 일부인 유틀란드의 왕 하랄드 클라크와 분쟁을 빚었던 무명의 왕을 비롯한 다양한 이들을 라그나 로스브로크의 후보 혹은 라그나의 전설을 만드는데 기여한 인물들로 거론한다.

드라마 <바이킹>은 이 라그나의 후보 중 793년 영국 북부 노섬벌 랜드의 섬 린디스판을 습격하여 바이킹의 유럽침공 서막을 알린 무명의 바이킹 지도자를 라그나로 설정했다. 이 린디스판 섬 습격은 영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다른 자연재해들처럼 신의 분노로 해석되었다. 영국인들 입장에서 교회를 무지막지하게 약탈하는 야만적인 이교도인들의 습격은 그러나 드라마 <바이킹스>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촌구석에서 그동안 금지되었던 서쪽으로의 항해방법을 터득하여 첫 영국침공을 성공리에 수행한 한 야심찬 사내의 성공신화의 서막에 해당한다.

하지만 드라마 <바이킹스>는 바이킹 지도자인 라그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해서 당시 바이킹들의 야만성과 잔인함을 부러 감추지 않는다. 라그나는 살육을 즐기는 잔인무도한 인물은 아니지만 당시 바이킹들처럼 자신이 목표로 한 재물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자신을 적대하는 자들에게 물리력을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생존과 번영, 풍요를 위해서 우리의 적대자들은 타도, 정벌, 제거되어야 한다"는 정복자들의 논리를 체화한 또 하나의 정복자이자 약탈자일 뿐이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허스트는 역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전설 속 인물을 끌어낸 이유를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누구도 당시의 암흑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에 역사로부터는 자유로움을 취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 암흑시대를 그대로 보기를 원한다. 바이킹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일 수 있다. 우리는 수백만이 이 드라마를 보기를 원한다."

따라서 <바이킹스>는 굳이 그 약탈자들 중에서 라그나가 정의로웠다는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 이전 중세 전설 속 영웅에서 견인해낸 주인공이기에 기민하고 교활하며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따라 공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라그나의 행적은 우리시대의 가치관과 선악관과는 별개로 당시 바이킹들의 행적과 가치관을 우리시대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당시의 것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재구성된 픽션일 뿐이다. 거기에 중세서사물 특유의 액션과 인물들의 갈등구조는 우리시대의 그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당시의 삶과 의식들과 함께 수백만이 시청하는 즐길거리가 된다.

비록 그 인물이나 사건 구성은 희박한 역사적 사료 때문에 픽션으로 재구성했지만 다큐전문인 히스토리 채널답게 당시의 역사적 디테일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당시 유럽의 문명 세계인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야만족이라 지칭되었기에 지저분하고 우악스러울 것만 같은 바이킹들도 약탈에 나서기 전에는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생활인들이며 산발한 머리에 개인위생이 엉망인 야만인이 아니라 짧은 머리에 깔끔한 위생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은 중세 유럽하면 기독세계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잔인한 야만인들로만 알려졌던 바이킹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자연스럽게 높여준다.

특히 오딘과 토르, 로키 등으로 알려진 북구신화를 기반으로 한 의식구조를 바탕으로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으면 최상의 쾌락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발할라로 간다는 북구인들의 종교관을 활자에서 영상으로 되살려 다큐멘터리에 준하는 당시에 대한 정보를 준다. 한 에피소드 전체를 할애한 바이킹들의 종교와 인신공양이 특히 그러한데 내세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부족과 가족, 친구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스스로 종교의식의 제물로 자원하고 그런 자원자를 용기있는 자로 기리는 북구인들의 모습은 인신공양이란 무릇 전쟁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에게 행하여지는 잔혹 행위라는 선입견을 깨뜨린다. 아울러 약탈대상이자 지배대상인 기독교인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기독신앙을 비웃으면서도 시나브로 영향을 받는 바이킹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당시 영국인과 북구인의 체격차이를 고려한 듯 배우들의 신장에 차이를 둔 깨알같은 디테일도 제작자들의 세심함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이다.

만화 <빈란드 사가>

드라마 <바이킹스>가 바이킹들의 서유럽 습격기 즉 바이킹 시대의 여명기를 다뤘다면 만화 <빈란드 사가>는 이미 서유럽, 특히 영국에 바이킹 정복왕조를 세운 크누트 대왕의 시대인 1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 만화가 유키무라 마코토(幸村 誠)가 2005년부터 지금까지 연재중으로 국내에는 12권까지 번역출간된 <빈란드 사가>는 덴마크의 왕자였던 크누트가 잉글랜드 왕이 되는 과정을 다루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크누트 왕자 한 명이 아니다. 아이슬란드 출신에 유럽인 최초로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원정대를 이끈 역사속 인물인 토르핀 카를세프니가 오히려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픽션이 가미된 역사서사물답게 <빈란드 사가>의 토르핀은 역사 속 토르핀 카를세프니와는 많이 달라 이름과 모티프만 빌려온 수준이다.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출신의 바이킹들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을 대규모 약탈하는 가운데 같은 바이킹들 사이의 세력 다툼 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바이킹 소년 토르핀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버지를 결투 중에 살해한 바이킹 용병대장 아셰라드 밑에서 소년병으로 싸우며 아셰라드와의 결투를 통해 복수의 기회를 노린다. 아셰라드의 바이킹 용병단의 행적을 통해 11세기 바이킹들이 영국에서 벌인 정복활동 즉 약탈과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잔인무도한 행적을 낱낱이 보여준다. 소년 만화치고는 잔혹한 수위 때문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빈란드 사가> 역시 <바이킹스> 못지 않게 작가의 바이킹 시대에 대한 취재와 성찰이 담긴 작품이다. 만화라는 매체특성상 드라마 <바이킹스>보다 더 자유로운 이야기 전개가 가능한 <빈란드 사가>에서는 작가 개인의 바이킹에 대한 시각과 판단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바이킹들의 삶과 약탈을 그 반대편에서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바이킹에 속한 소년 전사의 시각을 통해 정복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살육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그 폭력과 살육의 원동력이 가장 인간적인 욕망임을 드러내어 보여준다. "우리"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우리"가 아닌 자들을 약탈하고 살육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구도는 그 직접적인 폭력의 양상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칼과 도끼로 직접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여러 사회적, 법적 도구를 사용하여 강자들이 약자들을 약탈하고 생존을 위협하여 심지어는 죽음으로 내모는 모습은 여전하다.

그 가운데 <바이킹스>로부터 수백년 뒤를 다루는 <빈란드 사가>는 바이킹 사회에도 변화가 일어났음을 상기시킨다. 기독세계로부터 유입된 기독교. 서남부에서 잡아온 노예들을 동원해 개간한 농지에서 얻은 잉여농산물을 통해 얻은 풍요. 그리고 과거 바이킹 사회와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왕권의 등장. 그 속에서 자영농이 된 스칸디나비아 주민들은 과거 약탈을 일삼았던 바이킹의 후손답지 않은 삶을 계획하게 된다. 타국의 민간인들을 습격하고 약탈하고 살육하는 정복자의 삶보다는 자신의 땅을 일구어 평화 속에서 풍족함을 누리는 삶을. <빈란드 사가>는 이렇게 바이킹 사회가 변화의 바람을 맞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았지만 작가의 상상에 더 큰 빚을 진 두 주요인물의 변화는 이 변화의 바람을 가리키는 풍향계가 된다. 한때 소년병으로 약탈의 선두에 섰던 주인공 토르핀이 소년병 시절의 참혹함을 뒤로 하고 비록 노예의 몸이지만 농지를 개간하면서 스스로를 구입하여 자유민이 되고자 하는 모습. 그리고 바이킹의 잔인무도한 약탈에 몸서리치던 유약한 왕자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아버지와 형제에게도 잔인한 책략을 감행하는 등 마키아벨리가 그려낸듯한 군주가 되는 크누트 왕. 두 사람을 통해 변화된 사회를 갈망하던 이들이 어떻게 더 한발자국 나아가는지 그 서로 다른 결정과 행보들을 보여준다. 자유민으로서 자립하여 약탈과 살육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는 토르핀과 폭력을 독점하여 약탈과 살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군주로서 스칸디나비아 전체를 군림하려는 크누트의 발걸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록 역사속 실존인물들과 다른 묘사와 행보들로 인해 쉽게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을 받을 법하지만 드라마 <바이킹스>와 만화 <빈란드 사가>는 실제 역사속 인물과 사건에서는 자유롭지만 시대상을 그려내는 필치만큼은 세심하여 기독세계에 가려져 야만으로만 치부되던 스칸디나비아 바이킹들의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게 이끄는 작품들이다. 물론 픽션이 가미된 역사 서사물들이기에 이것으로 바이킹들의 역사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즐길거리이지만 즐길거리에 머물지 않고 한 시대에 대한 이해로 이끄는 작품들이니 중세 바이킹에 대한 흥미나 그들의 기저에 깔린 의식구조가 궁금한 이들이라면 시간을 들여 볼 만하다.

최원택

드라마 잡지 <드라마틱>과 장르소설 잡지 <판타스틱>의 기자를 거쳐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곧 자유낙하가 멀지 않은 자유기고가가 되었다. 허영에 휘둘려 책장을 넘기고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깜냥을 확인하는 것도 우직하게 반복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