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수 헤어의 여동생이 입원한 병원의 밤에 아픈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쓰레기' 오빠가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소녀를 안아주었을 때, 순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둠이 거뭇하게 찾아온 계절의 밤 하얀 셔츠 위에 도드라지게 드러난 그의 어깨 근육과 구불구불한 머리의 말괄량이 소녀가 소란을 멈추었을 때, 지나간 회상이 선사한 이 드라마의 반전은 그가 바로 친오빠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터져 나온 한숨 같은 멜로디. "너의 말들을- 웃어넘기는..."
정말이지 이 시리즈가 선사하는 탱탱한 90년대 감수성의 재현은 그야말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데, 어쩜 이렇게 러브라인마저 9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저격하고 있는지. 사랑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넌 언제나 나에게 우정 이상도 아닌 이하도 아닌~ 그즈음에 서 있던 그 시절의 필수 클리세. 우정 이상 사랑 이하의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섰던 서인국과 정은지. 그리고 3년 전, 이번에 선택된 90년대의 러브라인이 그야말로 눈물겹게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오빠와 여동생의 사랑. 드라마 느낌이나 이은혜의 점프 트리 에이플러스를 보고 자란 우리들이니 어찌 아니 열광할 수 있으리오.
이름부터가 냄새나는 쓰레기인 그에게서 무슨 순정만화풍 매력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하시겠지만, 그러니 더 놀라운 것 아닌가. 유통기한이 한참 넘은 우유를 마시고선 멍한 얼굴로 "괜찮은데." 중얼대던 것이 바로 그의 첫인상이었는데 이런 그가 멋있고 듬직하며 심지어 처연하고 섹시해 보이기까지 하니, 이거야말로 작가의 농간이다. 마치 추리닝 입은 폐기물처럼 뒹굴다 여동생에게 치이던 모지리 오빠를 백의의 천재 의대생으로 둔갑시키다니.
이토록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팬심의 연정이다. 부산 양아치들의 생생한 일상을 그려놓은 영화 바람에서 주인공 정우의 팬이 되었다는 제작진은 오래전부터 그를 섭외하고 싶어 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시리즈로 재탄생된 응답하라 1997에서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고 그를 끌어들인 응답하라 제작진. 이토록 짙은 애정과 관심이 있으니 예상하지 못한 부분의 매력마저도 세심하게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우의 캐스팅은 그 자신에게만이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제작진에게도 신의 한 수가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멋진 남자의 멋진 로맨스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설렘일 테니까. 하지만 이 남자의 매력은 발굴하지도 못했기에 무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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