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의 발단은 사소했다. 어느 날 아침 회의에서 미디어스 김완 기자가 느닷없이 “포스트시즌에 미디어스만이 할 수 있는 기획 기사를 내자”고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호구슬 인터뷰”라는 답이 왔다. ‘호구슬’은 1991년생 부산 거주 여성 넥센팬의 트위터 아이디이며 그녀는 트위터상의 야구팬들에게 상당히 유명한 이다. 최근에는 ‘구슬’이란 아이디로 모바일 야구 웹진 <야구친구>에서 ‘오늘의 야구 역사’를 연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미디어스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건 미디어스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 아니라 미디어스나 할 기획이 아니냐”라고 항의를 했다. 하지만 김완 기자는 재차 “호구슬을 본 적이 있는 한윤형이 그걸 추진하라”고 업무지시했다. 미디어스는 대단히 위계서열이 강한 직장이기 때문에 기자는 그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9위팀인 한화 이글스의 팬이다. 망한 팀 팬이 가을야구 팀 팬을 만나러 가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포스트시즌에 눈을 돌리지 않았고 준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 넥센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넥센이 플레이오프에 나갈 거 같아 플레이오프 때 취재를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넥센이 3,4차전에서 연달아 패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의 마음이 급해졌다. 넥센의 포스트시즌이 종료되면 호구슬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터였다. 그녀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예매하였지만 팀이 패배한다면 플레이오프 예매는 자동 취소되고 낸 돈도 환불되는 것이다. 급히 호구슬 측에 접촉했다.

호구슬은 “넥센이 패배한다면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5차전이 펼쳐지는 내내 팔자에도 없는 넥센 응원을 간절히 할 수밖에 없었다. 초반 경기진행은 굉장히 빨랐다. 두산 투수 유희관의 노히트노런이 진행 중이었고, 기자는 8시에 부랴부랴 목동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8회 3대0, 넥센의 패색이 짙었다. 오목교역에 도착하자 넥센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 두 세명이 지하철로 들어가는 모습마저 보였다.

기자는 “패배한다 하더라도 인터뷰에 응해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8회에 그런 얘기를 하면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데 벌써 우리가 졌다는 거냐?! 인터뷰 거절!!!”이란 반응이 나올 것 같았다. 기자는 전전긍긍하여 목동 야구장 3루 쪽 게이트에서 넥센팬의 함성으로 경기 향방을 가늠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DMB로 보다간 핸드폰 배터리가 금방 달고 녹취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회말 투아웃,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퍼졌다. 넥센 히어로즈 4번타자 박병호가 두산의 에이스 니퍼트를 상대로 스리런 홈런을 친 것이다.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날 넥센은 두산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 홈런 한방으로 기자는 호구슬에게 인터뷰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 14일 오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 경기가 열렸다. 넥센 9회말 2사 주자 1,2루 상황 박병호가 동점 스리런 홈런을 날리고 있다.(뉴스1)

-넥센 히어로즈의 첫 번째 가을야구에 대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란 속담이 있잖아요? 비슷하게, ‘3패를 하고 물러나더라도 가을야구는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경기 결과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세요?

돌이켜보면 우리가 더 전력이 약했어요. 준플 경기 내내 주어는 두산이지 넥센이 아니었습니다. 1,2차전도 두산이 못해서 이긴 상황이었죠. 어쩌면 우리는 3패할 전력인데 두산 감독 덕에 2승이라도 거둔게 아닐까 해요. (일동 웃음) 시리즈 내내 우리는 끌려다녔는데, 우리가 주어가 된 사건이 두 개가 있었죠. 그게 김민성 스리런이랑 박병호 스리런이었다고 봐요. 그것들이 다른 계기를 줄 수 있는 모멘텀이었다고 보는데, 결국은 그게 나온 두 경기를 모두 졌죠. 그러니 이길 수가 없었죠.

-사실 어째서 1991년생 부산 거주 여성이 넥센팬인지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나이로 볼 때는 현대 유니콘스 시절을 기억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네, 현대에 대한 기억은 없죠. 사실 저는 현대 유니콘스가 쌍방울 레이더스가 몰락하던 시기에 선수를 빼가고 했던 일들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아서 현대에는 별로 좋은 감정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삼청태현’(삼미-청보-태평양-현대)이란 계보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다른 기억을 가진 분들이 그 계보를 말하거나 ‘V5’를 말하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는데, 제 정체성은 아닌 거죠. 사실 그 시절부터 응원해온 팬들은 몰라도 구단 차원에서 넥센의 역사를 두고 ‘삼청태현’을 말하는 건 일종의 ‘환빠’(<환단고기>빠. 한국이 고대사에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고 믿는 초현실적 역사학을 신봉하는 이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임)질과 비슷하다고 봐요. 가끔 얘기할 수야 있겠지만, 사실은 아니죠.

저는 신생팀으로서의 넥센의 정체성이 좋거든요. 부산에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구라는 게임을 알게는 되었어요. 그런데 부산 사람이면 다 롯데를 응원해야 하는, 그런 집단주의가 싫은 것도 있었고, 롯데란 모기업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롯데 자이언츠란 구단이 선수들이나 팬들에게 그리 좋지 않은 일을 해왔다는 인식도 있었어요. 그래서 롯데를 응원할 수는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 넥센이었던 걸까요?

서울팀인데, 원래부터 서울팀이었던 건 아니죠. 신생팀이 생기면서 서울로 흘러들어간 거죠. 뭐랄까, 근본이 없다고나 할까요? 그게 감정이입이 잘 되었어요. 마치 지방의 서민이 자기 고향을 떠나 서울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요. 돈 없는 구단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모기업이 없는 구단이 운영능력으로 살아남으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뭔가 혁신성 같은 것도 느꼈어요.

▲ 당일 목동야구장 3루 쪽 게이트에 서 있었던 넥센 히어로즈 선수단 버스의 모습 ⓒ미디어스

-혹시 <천리마 축구단>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나요?

아뇨 그건 못 봤는데요.

-그 영화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 대표팀을 따라다닌 영국 소년들 얘기에요. 그때 북한이 미들스브러 경기장에 입성해서 축구를 했는데, 미들스브러도 중소도시고 자기 팀이 약팀이잖아요. 그래서 그 도시 사람들이 대단히 생소한 약팀인 북한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했어요.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올라가자 북한팀 응원하러 십대 소년들이 막 따라나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포르투갈에 3대5로 패한 경기까지 응원하게 되죠. 이렇게 포개면 혹시 기분이 나쁠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그런 심리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어서요.

아뇨 비슷한 거 같아요. 제 인생이 별로라서 넥센이 더 정이 가고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정치성향으로는 노동당(구 진보신당)원인데, 넥센팬이 된 이유와 노동당원이 된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창단될 때부터 넥센팬이었나요?

아뇨 저는 2009년부터 좋아했어요. 2009년이 엄청난 타고투저 시즌이라서, 넥센이 약팀이었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그 시즌에 넥센에 20홈런 타자만 네 명인가 그랬어요. 잠깐 6위로 올라가 4강 다툼에 합류했던 적도 있었고, 뭔가 희망을 봤던 거 같아요. 그런데 2009년 시즌이 끝나자 1선발에서 3선발까지 모두 팔아치웠고, 이택근도 팔았죠. 그렇게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죠.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2010년 시즌이 끝나고 고원준을 팔았을 때요. 그때는 정말 팀의 미래를 판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팀은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니구나, 심지어는 승리를 원하는 팀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서 견디기 힘들었죠.

-SNS를 보면 호구슬은 넥센 히어로즈를 흔히 ‘거지팀’이라고 비하합니다. 그런데 ‘미국 거지’와 ‘일본 거지’도 말하던데, 이 팀들은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제가 ‘미국 거지’라 부르는 팀들은 메이저리그에 있는 오클랜드, 피츠버그, 템파베이 이런 팀들이구요. ‘일본 거지’라 부르는 팀은 NPB에 있는 히로시마 카프죠. 여긴 심지어 시민구단으로 출발했어요. 지금은 도요라는 기업구단이 최고 주주인데, 두 번째 주주는 히로시마 어시장입니다. 대단히 지역사회에 친화적인 구단이죠. 이렇게 국제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세계의 모든 거지팀이 포스트시즌서 탈락했습니다. (일동 웃음)

-그런데도 약팀을 계속 응원한다는 행위의 보람 같은 것은 있었나요?

약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왜 제게 물으시죠? 그렇게 따지면 기자님도...

- 저기요, 제가 초등학생 때 빙그레 이글스는 강팀이었습니다...

보람이라? 보람을 느끼려고 응원을 시작한 건 맞는데, 사실 올 시즌 전까진 별로 보람을 못 느꼈어요. 작년 시즌에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을 때는 잠시 보람을 느꼈지만요. 뭐랄까 이제 스포츠에서 영웅을 바라는 그런 나이는 지난 거 같아요. 그냥 가족처럼 응원하는 거죠. 못한다고 욕을 하지만, 호적에서 파낼 수는 없는 그런 자식을 보는 심정이랄까요?

▲ 당일 연장전 당시 넥센 히어로즈 팬들의 응원. 기자는 연장 11회 때 사람들이 무료 입장할 때 경기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디어스

-4강 싸움을 못할 것 같은 팀과 4강 싸움을 하는 팀을 응원하는 건 어떻게 다르던가요? 의외로 후자에도 고통스러운 부분은 있었을 거 같아요.

있었죠. 1경기 마다 일희일비하게 되는데, 이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죠. 시즌 중반에 저희가 8연패를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5위 롯데와 0.5게임까지 좁혀졌었어요. 정말 죽을 것 같았죠. 더 기분이 나빴던 건 그 기간 동안 우리가 못해서만 진거라면 상관없었겠는데, 오심이 두 개가 있었어요. LG전 박근영 오심이 있었고, NC전 태그업 오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패가 길어졌죠. 뭐랄까 KBO와 리그 전체가 자신들의 흥행을 위해 넥센의 가을야구를 바라지 않는구나, 뭐 그런 기분이 들어 대단히 침울했죠.

-올 시즌 4강 싸움을 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나요?

예상하지 않았고, 큰 기대를 갖지 않았어요. 전력면에서는 4강싸움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감독이 전격교체되었고 신임감독이라 큰 기대가 없었어요. 그리고 사실 박병호나 서건창은 2년차 징크스를 겪을 거라고 예측했거든요. 서건창은 부상 전에도 실제로 2년차 징크스를 겪었다고 봐야겠지만, 박병호가 그렇게 더 잘할 줄은 몰랐죠. 내년에는 5위 정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구단주에 대한 감정은 어떤가요? 넥센팬으로서 그에 대한 양가감정이 대단히 클 거 같긴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양가감정이 있죠. 그래도 이제는 좀 더 객관적으로 평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예전에는 선수 팔아먹는다고 무턱대고 욕했다면, 이제는 이 사람이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건 인정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특히 최근에 화성시와 협상을 해 2군팀을 ‘화성 히어로즈’로 만든 것에서 희망을 봤어요. 한국 사회에서 모기업 없이 야구 구단을 운영하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구나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야구친구>에 ‘오늘의 야구 역사’를 연재하고 있잖아요. 연재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원고는 어떤 방식으로 쓰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야구친구 하시는 분들이 트위터에서 친했던 분들이라서요. 접촉을 하셔서 청탁을 하신 거죠. 사실 리그 역사가 30여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쓰기가 쉬워요. 대신 리그 역사가 30여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뭐가 없는 날도 가끔 있어서, 그럴 때엔 적당히 끼워맞춰 쓰느라 고생을 좀 합니다. 매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쓰고 있는데, 검색을 꾸준히 돌리구요. 빨리 쓰는 날은 한 시간 정도에 완성되지만 오래 걸리는 날은 네 다섯시간까지도 써본 거 같아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 1루 쪽 두산 베어스 팬들의 열기도 굉장했다. ⓒ미디어스

-야구팬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명합니다. 제가 호구슬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하자 한 스포츠언론 기자가 “내가 팬이다.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유명한데 구단이나 선수들 쪽에서 어떤 접촉을 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접촉은 없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기가 잘 안 풀리는 날은 막 SNS에서 선수들을 욕하잖아요. 선수라는 게 뭐 욕먹는 직업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얼굴도 본 사이에서 그렇게 욕하는 건 도의적으로 좀 아닌 거 같아요. 팬은 팬으로서 남는 게 더 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슬 끝맺어도 되겠네요. 사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질문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첫 가을야구를 경험한 넥센 히어로즈의 팬으로서,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는 대체 언제 끝날지 의견 말씀해 주세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하고 돌아오면 끝나지 않을까요? 류현진이 세 번째 시즌 정도부터 헤매기 시작하고 재계약이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막 30승하고 그러지 않을까요? 그때까진 좀 기다려 보시죠.

-음 저는 지금 분위기로는 실패해도 4년 시즌 보낸 후 다년계약까지는 맺은 후에 실패할 것 같아서...

한국 야구에서도 용병이 3시즌 연속 잘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전 유먼도 내년 시즌은 좀 힘들 거라 생각하는 편인데요. 저번에 “류현진이 가져본 가장 준수한 원투펀치가 문동환이었다”라고 푸념하시는 걸 들었는데, 돌아올 때는 그보다야 상황이 낫겠죠.

올 시즌 한화에서 한상훈 스탯을 보면, 사실 9위팀이 아니라면 리그에서 준수한 2루수라 평가받을 수 있었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망하는 시즌에 약팀에선 그렇게 뜬금없이 커리어 하이를 찍는 선수가 한둘 나오는 것 같아요. 2010년 시즌 넥센에선 그게 유한준과 장기영이었는데, 올 시즌 한화에선 한상훈과 고동진인 거 같아요. 암흑기에 9구단과 10구단이 창단되는 바람에 재능있는 선수수급에 어려움이 있고 좀 재수가 없는 케이스인데, 2천년대 중반에 선수를 워낙 안 뽑아서 생긴 일이니 한 동안은 인과응보다 생각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술집에서 찍은 호구슬의 모습. 당일 입었던 유니폼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디어스

*기자가 호구슬에게 ‘힐링’을 받으며 이날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인터뷰는 넥센팬 사장님이 운영하는 홍대 모처의 술집에서 호구슬을 비롯한 넥센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진행되었다. 경기가 늦게 끝났고 이동도 했던 탓에 술자리는 12시 넘어 시작되었고 2시도 넘어서 끝났다. 그들은 내년 시즌 야구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