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영화를 보는 듯한 상황 전개였다. 이렇게 극적인 반전을 보였던 사례가 얼마나 있었을까. 지난 20일, 인터넷 커뮤니티는 정부에 대한 성토로 가득했다. 그날 오후부터 갑자기 애플 앱스토어 개발자들에게 사업자 등록번호와 통신판매업 등록번호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영리적 목적의 유료 어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무료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개발자에게도 동시에 요구해 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러한 정책 변경에 대해 많은 추측과 가설이 제기되었다. 가장 신빙성 높게 제기된 가설은, 정부가 애플을 압박해 세금을 더 뜯어내기 위해서 이러한 정책 변경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특히 ‘루리웹’이나 ‘클리앙’ 같이 필연적으로 어플리케이션 개발자가 많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이일수록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IT 산업을 망치려 든다면서 정부를 비난했다.

▲ 지난 21일 디지털데일리 기사 화면 캡쳐

반전은 그 다음 날 일어났다. 그 시작은 <디지털데일리>가 21일 3시 무렵에 게재한 <애플, 개인 개발자 사업자 등록 강제…왜?>라는 기사부터였다. 추측으로 일관하던 다른 기사들과 달리, 처음으로 정부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해당 기사에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모두 전혀 애플 측에 개발자에게 사업자로 등록할 것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 앱스토어가 다시 개발자에게 사업자-통신판매업 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게 되도록 시스템이 바뀌면서, 정부를 비판하던 여론은 급속도로 바뀌어 애플을 비판하는 형국이 되었다. 여기에 어떤 블로거가 ‘애플이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이러한 개편을 단행했다’는 주장이 담긴 글을 올리면서 상황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이후 누리꾼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 소강되고 <블로터닷넷>에서 <앱스토어 개발자 등록 해프닝, 원인은 ‘전자상거래법’>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해프닝의 원인이 세금 회피가 아니라 전자상거래법 상 판매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어 이에 맞춰 시스템을 수정하다 큰 문제를 낳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다시 정부 책임론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이 문제는 정부의 문제인가, 아니면 애플의 문제인가? 아직 애플코리아에서 자세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기에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20일 저녁부터 21일 오후까지 애플은 한국 개발자 정책 변경에 있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또한 <블로터닷넷>의 주장대로 전자상거래법을 준수하려다 벌어진 해프닝일 수 있지만, 구글이 자사 어플리케이션 마켓을 관리하는 한국 자회사 ‘구글페이먼트코리아’를 단순히 어플리케이션 수익을 해외 본사로 송금하는 형태를 취하는 동시에 세금 처리를 개발자가 하게 만드는 편법으로 부가세를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은 그러한 편법도 하지 않고서 대놓고 부가세를 내지 않았던 정황 등을 고려할 때 세금 회피를 위한 부분도 동시에 봐야만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 21일잘 블로터닷넷 기사 화면 캡쳐

그러나 이 글에서는 애플이 저지른 해프닝 대신, 그 해프닝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인터넷 상의 여론은 너무나도 급속하게 변했고, 그 과정 속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관계자’에는 실체가 없고, 여론 속에는 불신만 있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앞서 언급한 <디지털데일리>의 기사가 나오기 전에 애플의 해프닝에 대해서 다뤘던 기사들이다. 이 당시 나왔던 기사 대부분은 기사의 말미에 ‘애플코리아의 관계자’ 인터뷰를 삽입하면서 “정부의 요구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와 같은 말을 했다고 적었으나, 정작 <디지털데일리>의 기사에서는 애플코리아 측이 “공식적으로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서 자세한 답변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대체 그 전의 기사들에서 정부의 압력을 이야기했던 ‘애플코리아의 관계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애초에 그 기사들을 작성했던 기자들은 정말로 애플코리아의 관계자와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는지도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된 사실 확인도 없이 기사를 작성했다는 뜻이다. 함량 미달로 작성된 기사는 SNS와 커뮤니티를 타고서 확산되며 활발하게 재생산되었다. 논란이 크게 커진 것에는 이러한 기사들도 한몫을 했던 셈이다. 언론의 역할이 단순히 소식을 빨리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면이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의 다수 언론들은 언론의 기본적인 수칙조차도 지키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애플의 정책 변경에 대한 인터넷 상에서의 반응 양상들이다. 처음 애플이 개발자에게 사업자 등록번호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SNS를 비롯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누리꾼들은 바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바로 ‘정부가 또 한 건 저질렀다’는 비난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소식은커녕 관계자의 해명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다수는 이 문제가 정부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사업자 등록번호나 통신판매업 등록번호 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문제로 파악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반응이 보여주는 것은 이미 누리꾼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주지 않는 현실이다.

IMF 이후로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이로 인해 사회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한국 사회를 사는 대다수 시민의 삶은 불안정하게 된 지 오래이다. 서서히 ‘이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다’와 같이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 돌리는 양상이 서서히 벌어지다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곧바로 벌어진 촛불시위 등으로 인하여 정부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등 정부의 신뢰를 곤두박질치게 만들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들이 한데 뭉쳐 정부에 대한 불신을 깊어지게 만들었으며, 사실 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마당에서도 정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비난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 애플 개발자 등록 사이트 (관련 화면 캡처)

장기적인 관점에서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번 사건의 여론 양상은 몇 달 전에 있었던 조세 제도 개편안에 대한 반응과 비슷했다. 중상위층의 세금을 더 많이 거두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개편안은 곧 몇몇 언론들과 시민들에게 ‘서민 증세’라는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얼마 후 정부는 조세 개편안을 철회하게 되었다. 개편안 자체는 비난하던 내용과 거리가 멀었으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조금만 민감한 내용을 건드렸기에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난 양상 자체를 마냥 어쩔 수 없다며 방기할 수는 없다. 무조건적이며 부적절한 형태로 퍼지는 정부에 대한 비난은 제때 펼쳐야 할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인 동시에 명확한 분석 대신 편견에 기초한 비난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불신을 단순히 불신을 펼치는 이를 다시 비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는 노동 문제 등의 적극적인 해결로 삶의 평균적인 수준을 개선하는 한편, 적극적인 소통과 시민들의 요구에 화답하는 움직임을 통해 불신을 차츰차츰 없애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어느 한쪽의 문제로 현재의 정부 불신에 대한 책임을 몰 경우, 오히려 불신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확대되어 모두를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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