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강동원의 참석 문제로 떠들썩한 화제가 불거졌었습니다. 진위여부는 차치하고 이 해프닝은 그만큼 스타가 가진 파워가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좀 아쉽죠. 영화제에서 영화보다 배우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말입니다. 비단 영화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영화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항상 대중의 관심이 필요한 세계에는 늘 스타가 있고 그 스타를 필요로 하기 마련입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수영의 박태환, 피겨 스케이트의 김연아, 리듬 체조의 손연재 등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것은 스타가 있어야 해당 종목의 인기가 덩달아 상승하는 생리 탓에 발생하는 구조적인 모순입니다. 어디에서건 늘 같은 패턴으로 일어나는 안타깝고도 자연적인 현상이죠. 때때로는 그 열기를 부추기고자 선수의 자의와는 전혀 별개로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도 합니다. 론 하워드 감독의 신작인 <러쉬: 더 라이벌>에서는 마이클 슈마허로 대표되는 F1 무대에서 일찍이 라이벌이었던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가 그랬습니다.

아마도 <러쉬: 더 라이벌>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F1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가 1976년에 겪었던 사고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페라리 소속이었던 니키 라우다는, 극 중에서 나오다시피 드라이버들에겐 '무덤'으로 불리는 극악의 코스인 '뉘르브르크링'에서 참혹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머신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은 물론이고 폐에 유해 가스가 차는 바람에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이 사고도 사고지만 더 놀라운 건 니키 라우다가 그로부터 불과 6주 후에 트랙으로 복귀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불굴의 집념을 주입하고 언제 사선을 넘을지 모르는 F1 경기에 다시 발을 들이도록 했을까요? <러쉬: 더 라이벌>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분노의 역류>부터 <아폴로 13, 파 앤 어웨이, 뷰티풀 마인드> 등에 이르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따뜻한 인간애와 굳은 의지를 능숙하게 다뤘던 감독입니다. 레이싱 영화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는 조금 의아했으나 막상 <러쉬: 더 라이벌>을 보니 그에게 충분히 흥미로웠을 이야기더군요. 론 하워드는 니키 라우다가 사고로부터 완전히는커녕 제대로 회복하기도 전에 F1 경기에 나선 것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면서 팽팽한 경쟁을 펼쳤던 제임스 헌트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두 선수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러쉬: 더 라이벌>은 둘의 관계를 미묘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실화를 모델로 삼은 거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러쉬: 더 라이벌>도 허구의 설정을 가미한 각색이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는 한때 룸메이트였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저는 두 선수를 라이벌이라는 관계구도보다는 좋은 친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니키 라우다 스스로 라이벌이었다곤 했으나 상대적으로 제임스 헌트는 F1에서의 경력이 짧고, 문제의 1976년에 니키 라우다가 사고로 빠진 사이에 월드 챔피언에 딱 한번 오른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거칠고 저돌적인 주행성향과 드라이빙 스킬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니키 라우다는 1980년대 중반까지 활동하면서 월드 챔피언을 세 번 차지한 것을 포함해 탑 5에 네 번 포함됐습니다.

라이벌보다는 친구이자 동료에 더 가까운 두 사람은 서로 지극히 다른 면도 갖고 있었습니다. 론 하워드는 <러쉬: 더 라이벌>에서 이것을 적절하게 섞었습니다. 니키 라우다와 제임스 헌트의 관계를 라이벌 구도로 집중시키면서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과 그에 따른 성향을 대비시킨 것입니다. 상류층 자제인 것은 같으나 외골수 기질이 강하고 모범적이며 어쩌면 보수적인 니키 라우다에 반해, 제임스 헌트는 모든 면에서 자유분방하고 천하의 바람둥이인 데다가 열정적입니다. F1으로 좁히면 니키 라우다에게는 머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면, 제임스 헌트는 그 머신을 활용하는 방면에서 최고의 솜씨를 발휘합니다.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두 선수에게서 과연 론 하워드는 무엇을 이끌어냈을까요?

<러쉬: 더 라이벌>은 자신을 제임스 헌트와 라이벌로 만드는 데 왜 이리 소란인지 모르겠다는 니키 라우다의 음성으로 시작합니다. 뒤이어 제임스 헌트는 바람둥이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들이 레이서를 좋아하는 건 우리가 죽음과 그만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익스트림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걸까요? 어쨌든 그래서 레이서가 여자에게 인기가 높다면, 그 레이서는 어째서 자신의 말마따나 사선에서 펼치는 F1 경기에 몰두할까요? 특히 죽음 따윈 아랑공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매번 경기를 앞두고 구토하는 제임스 헌트를 보면, 무엇이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트랙으로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인지 궁금하게 합니다.

결말에 이르면 이것을 직접적으로 밝힙니다. 제임스 헌트가 말하는 걸 들으면 조금 전까지 삐딱하게 또는 불성실하게 보던 시각이 금세 다르게 변합니다. 그가 가진 재능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걸 저지하고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드물죠. 반면에 니키 라우다는 그런 제임스 헌트가 부러웠다고 합니다. 타고난 환경을 버리고 스스로 가고자 했던 길에서 정진하여 성과를 거뒀던 그가, 다른 방식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제임스 헌트를 부러워한 것입니다. 아울러 마지막 경기에서의 니키 라우다는 목숨을 건 성취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택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니키 라우다의 사고와 그것으로부터의 복귀에 집중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의도가 담겼습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러시: 더 라이벌>에서도 쏠쏠한 재미를 추구하면서 인물에 대한 사려 깊은 관찰과 이해를 간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멋진 영화였습니다!

★★★★

덧 1)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에 내내 집중했다는 걸 제외하면 <러시: 더 라이벌>은 실화에 아주 충실합니다. 경기 상황이나 사건 등을 거의 있는 그대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각색은 있지만 나름의 해석이 좋아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덧 2) 당연히 자동차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봐야 합니다. 엔진과 배기 사운드만 듣고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덧 3) 북미에서의 부진한 흥행은 일면 이해가 갑니다. F1 경기 자체가 북미에서는 타 스포츠에 비하면 인기가 낮죠. 대신에 북미에서는 픽사 애니메이션 <카>의 무대이기도 했던 나스카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참고로 혼동하기 쉬운데 실베스터 스탤론의 <드리븐>에서 보여주는 경기는 F1이 아니라 챔프카입니다.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보안에 막혀서 촬영이 불가했다고 합니다. <러시: 더 라이벌>에서 두 배우가 실제로 탔던 것도 F1 머신이 아니라 F3 머신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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