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지만, 누구에게나 문제인 건 아니다. 일상에서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회사 동료와 메신저로 간단한 업무를 진행하는 걸 글쓰기라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통 원고료가 있는 경우나 공개 지면에 올리는 경우, 나아가 출간을 염두에 둔 경우를 글쓰기라 따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지친 삶을 하소연 할 때는 내가 힘들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위로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깔려 있다. 회사 동료와 메신저로 농반진반 나눈 대화는 언제고 되돌아와 직장 내 여론이나 자기 위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겪어봤다면, 당신도 비즈니스 글쓰기 세계에 입장해야만 한다.

이 세계에서는 글쓰기가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문제다. 다행히 이 세계에는 한 가지 원칙만 존재한다. 목적과 상황에 맞는 정확한 글쓰기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일. 물론 원칙과 현실 사이는 멀지만, 이메일이든 보고서든 제안서든 기획안이든, 변호사든 회계사든 교육자든 회사원이든 같은 원칙을 적용받는다는 사실이 약간의 위로를 전한다. <비즈니스 글쓰기의 모든 것>에서는 “소설가나 칼럼니스트처럼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 모두를 비즈니스 라이터라 부르는데,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글쓰기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정도로 속 편하게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런 세계가 갑작스레 며칠 전에 만들어지진 않았을 테고, 수많은 비즈니스 라이터들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이 세계의 시민으로 오랜 기간 살아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도대체 이 세계에 어떤 지각 변동이 일어났기에 새삼스레 글쓰기 원칙을 확인하고 새롭게 적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아직도 자신에게 부여된 비즈니스 라이터 자격증을 열어보지 않은 이가 많다는 점이다.(필자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야 입사할 때 받은 먼지 쌓인 자격증을 꺼내볼 수 있었다.) 일종의 세계-자아 분리 현상이라 하겠다. 잠시 마음이 편해질 수는 있으나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적어도 이 책이 설정한 세계에서는 그렇다.). 두 번째 이유는 고속화, 디지털화로 대표되는 변화된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새로운 글쓰기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너무 빠른 변화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해 새로운 환경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는 점이다. 기술 발달로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여럿이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와 실수를 줄일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즉각적으로 의사소통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 영향을 받은 우리는, 우리가 사물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저자의 분석이 차곡차곡 쌓인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함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 이제 세계의 상황과 그 안에 놓인 우리의 운명을 확인했으니, 앞서 말한 하나의 원칙 ‘목적과 상황에 맞는 정확한 글쓰기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일’을 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저자는 ‘말하는 것처럼 쓰라’고 조언한다. 물론 읽기 편한 글, 소리 내어 읽는 데 걸림이 없는 글은 좋은 글의 기본 조건이다. 그런데 저자의 제안은 훨씬 깊은 통찰에서 비롯한다. 구어체 글쓰기는 글쓰기가 대면 관계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에 담긴 메시지뿐 아니라 개성과 인성까지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저자는 인쇄기가 발명된 이후 사라져버린 구어 중심의 글쓰기 시대가 돌아왔다며, 21세기에 걸맞은 효과적인 비즈니스 글쓰기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읽기 쉬우며,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글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글쓰기를 강조하는데, 이 역시 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만고불변의 진리라 하겠다. 다만 디지털 시대에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선 이메일을 보내거나 블로그에 간단한 내용을 포스팅하는 게 너무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대강 써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블로그야 그나마 수정이 가능하지만(물론 그 사이 수십, 수백만이 볼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 이메일은 보내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메일이 영원히 삭제되지 않고 손쉽게 복제되어 퍼져나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겉보기에는 즉흥적인 매체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정반대라고 하겠다. 더불어 몸짓이나 눈빛 같은 비문자언어가 개입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오히려 메시지를 전달할 공간이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더욱더 신중하고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풀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비즈니스 글쓰기라고 하고서 전혀 비즈니스 같지 않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이쯤에서 확실한 사례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글쓰기에는 글을 쓰는 목적과 의도가 중요한데, 업무 보고나 이력서 등 결정권자에게 상황을 전할 때에는 숨은 의도, 그러니까 ‘내가 이만큼 했다, 나 이런 사람이다’를 세련되게 드러내며 성취한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전 직장에서 한 일을 적을 때 “물류창고를 재설계하였음.”이라고 하는 건 효과가 전혀 없고 “잘못 설계되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물류창고에 대해 전면적으로 레이아웃 재설계를 시행하여 물류 운영을 효율적으로 전환시켰고, 이를 통해 보유 재고 기준으로 연간 5만 달러 정도의 추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음.” 같은 식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말이다. 비즈니스의 냄새가 확 느껴지지 않는가. 너무 속이 들여다보인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까 꺼내둔 비즈니스 라이터 자격증을 들어 가슴에 얹어보기 바란다.
이 책은 이렇듯 효과적인 글을 쓰는 오래된 방법을 변화된 비즈니스 세계의 방식으로 다시 정리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고쳐 쓰기의 방법을 들려준 다음에, 이메일, 보고서, 제안서, 웹사이트,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 앞서 설명한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 원칙을 확인하고 적용시키는 연습 외에도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팁이 곳곳에 숨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예를 들어 지금 사용하는 이메일 계정이나 아이디가 ‘guiyomi(귀요미)’나 ‘azumma(아줌마)’처럼 그다지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당장 바꾸라든지, 당신이 그러하듯 사람들은 이메일을 매우 빠른 속도로 읽는 데다 주의가 산만한 상태로 읽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메일에 여러 개의 질문을 쓴다면 한두 개 답변이 빠진 답장을 받기가 쉽다는 이야기는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이다. 아, 이메일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도 무서운 주의사항이 하나 더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당신의 상사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내용이나 세상의 다른 누군가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지 마라.” 상대방과 나만의 소통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이메일은 공식 문서로 언제든 상대방의 답장에 당신 팀장이 참조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간결하고 정확한 이메일을 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흔아홉 가지에 이르는 비즈니스 글쓰기 규칙을 이 글에서 세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고, 그렇게 한다 한들 당장 글쓰기가 확 바뀌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글쓰기에서는 규칙보다 사고(思考)가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문법, 구두법, 맞춤법 연습에 며칠이건 몇 주건 혹은 몇 년이건 시간을 들이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구를 하고 싶은데, 공을 잡거나 칠 수 없다면 야구의 규칙을 마스터해 봐야 소용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저자의 말처럼 글쓰기 현장에 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면 그걸 머릿속에 빼곡히 담아봤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 초반부에 나오는 ‘거의 모든 글에 적용 가능한 단계별 글쓰기 전략’에 대해 이 글을 적용해보면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아홉 가지 기준에 맞춰 답변을 정리해보니, 책을 읽으면 사람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글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역시 ‘규칙보다 사고’다.
[거의 모든 글에 적용 가능한 단계별 글쓰기 전략]
1.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라. 메시지는 무엇이며, 글을 통해 얻고자 한 바는 무엇인가.
글을 쓰는 목적 : 온라인 매체 미디어스 주말 서평 ‘세상의 어떤 책’ 정기 기고
메시지 : 세상이 바뀌고 글쓰기 방법도 바뀌었지만, 나는 하나도 바뀌지 못했구나.
글을 통해 얻고자 한 바 : 한윤형 기자의 신뢰, 책을 펴낸 출판사의 반응, 이런 식이면 글을 그만 쓰라는 독자의 비판. 아, 그리고 약간의 원고료.
2. 글을 읽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누가 독자가 될 것이며, 그 사람 혹은 집단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글을 읽을 대상 : 미디어스 사이트 방문자, 그것도 불금과 주말에.
독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 아마도 심심한 분들.
3. 1과 2를 고려하여, 어떤 어조를 사용하고 어떤 구성 방식을 택할지 결정하라.
어조 : 심심한 분들이니 가급적 즐겁게.
구성 방식 : 이 책을 고른 이유, 이 책의 차별점, 주요 내용, 재미난 예화, 약간의 자학과 반성.
4.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내용들을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하라.
구성 방식의 차례로 배치하되, 약간의 자학과 반성은 필요할 때마다 활용.
풍부한 예시를 보여주려 했으나, 수정 전 글과 수정 후 글을 동시에 보여줘야 해서 지면이 부족함.
5.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내용을 구성하라.
1번에서 정리한 글을 쓰는 목적이 ‘온라인 매체 미디어스 주말 서평 ‘세상의 어떤 책’ 정기 기고‘이므로 마감 시간 안에 원고를 보내는 게 중요한데, 마감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음.
6. 글의 첫머리는 강렬하게 시작하라.
“글쓰기는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지만, 누구에게나 문제인 건 아니다.”
이 정도면 강렬한 시작 아닌가.
7. 본문은 빠르게 써 내려가라.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이니 나름 빠르게 써 내려갔다고 할 수 있겠음. 게다가 업무 도중 전화도 받고 미팅도 하는 전쟁 같은 시간 속에서 원고를 마무리했으니 칭찬할 만함.
8. 본문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모두 아울러 결론을 내라.
본문에서 다룬 내용이 많지 않아 결론에서 특별히 빠지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함.
9.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평가하라. 버릴 부분은 버리고 수정하면서 내용을 신중하고 예리하게 다듬어라.
이렇게 하고 싶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부족함. 그래서 애초에 쓰면서 버릴 부분이 없도록 계속 앞으로 돌아가 읽어 내려오면서 덧붙임.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꾸며 삽니다. 공식 애칭은 서경식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바갈라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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