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음에게 놀랐다. 그가 비밀을 택한 것이 단지 이미지를 바꿔 보겠다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그럴 준비가 돼있었고, 그만한 각오가 있었음을 증명해보였다. 비밀이란 드라마는 황정음이 시트콤에 적격인 귀엽고 발랄한 배우가 아니라 뭐든 다 할 수 있는 팔색조 연기자로 성장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강유정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가장 먼저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아들은 이미 세상에 없었다. 세상 모든 엄마에게 가장 견디지 못할 슬픔이 자식을 잃는 것이다. 품안에 키웠어도 그 가슴이 남아나질 못할 것인데 수감생활로 인해 강제로 떼어놓은 아들이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는 현실은 너무도 잔혹할 뿐이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연기하는 황정음의 여윈 모습이 가을을 닮아있었다. 몸부림을 치고, 오열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격정의 앞뒤로 황정음이 감정을 끌어올리고 다시 정돈할 때의 표현이 대단히 섬세하고 치밀했다. 사실 그런 연기는 연습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자칫 목이라도 쉬어버린다면 다음이 더 문제기 때문이다. 거의 이미지로만 연습하다시피 하고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데 결국은 그 순간의 감정을 얼마나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고, 황정음은 아무 문제없이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것은 연기가 아닌 연기를 했을 때 가능하다. 우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울 때 느껴지는 것이다. 아픈 척이 아니라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파할 때 전해지는 감동이다. 절대로 예쁘게 울지 않는 진심의 연기였다. 황정음에게서 그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황정음이 울 때 자신도 모르게 따라 울게 되는 흡입력이 느껴졌다. 황정음이 이 정도였나.
작가와 연출도 황정음이 제대로 연기에 빠질 수 있도록 준비를 많이 한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한밤중에 강가에 케이크에 불을 켜고 아들과 혼자 대화하며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에는 가슴이 메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의 플롯들이 진부하다고 혀를 찼던 내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드라마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존중을 표하게 된다.
어쩌면 그런 호된 경험이 슬픔을 딛고 세상을 향해 나가려는 유정에게 약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렇게 다짐을 할 유정이다. 아들을 잃고 그 슬픔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어미가 겪는 어떤 자학이 숨어있는 결심이다. 엄마란 이름은 자신에게 참으로 가혹하다. 그 이름을 이토록 절절하게 연기해내는 황정음이 정말 대단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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