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중계보도’를 지시한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4일 입장을 내어 “물 먹었으면 부끄러워하고 상사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규에도 없는 보도국장 평가를 할 경우, 엄정 처벌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달 30일 TV조선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임모 씨의 가정부 발언을 토대로 ‘채 전 청장이 아이아빠가 맞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KBS <뉴스9>는 TV조선발 뉴스를 톱으로 배치했고, 이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의 반론을 함께 묶자던 취재기자들의 의견이 묵살돼 논란이 됐다. 이후 KBS기자협회는 긴급 총회를 열어 보도 책임자인 김시곤 보도국장에 대한 신임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 지난달 30일 뉴스9 1~2번째 보도 (화면 캡처)

김시곤 보도국장은 4일 오전 사내게시판에 입장을 내놨다. 특히 이번 보도에 항의하며 신임투표를 결정한 기자협회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종편보도라고 해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정보라고 판단되면 받을 수 있다”며 “(TV조선 보도는) 진보매체인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받았다는 점에서 아이템의 뉴스가치가 높았다고 판단해 높아서 톱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지난 6월 3일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단독보도를 받은 사례를 들며 “(타 매체 보도를) 이번 경우처럼 메인뉴스에서 톱과 세컨 아이템으로 받았던 전례가 있다”면서 “종편보도를 받았다고 문제 삼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적 프레임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도 이번 인용보도를 하며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고 자괴감이 들었다. 물을 먹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기자들은 타 매체 보도를 왜 받았냐고 보도국장을 탓하고 있다. 물 먹었으면 부끄러워하고 상사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기자들이 물먹은 것을 왜 적극적으로 받았냐고 보도국장을 탓하며 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잘못돼도 심히 잘못된 것”이라며 “사규 어디에도 평기자들이 보도국장을 평가하거나 불신임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고 밝혔다. 김시곤 보도국장은 기자협회를 ‘임의 단체’로 규정하며 “어떤 근거도 없이 보도국장을 평가해 조직 근간을 흔든다면 사규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기협 성명 발표 등 기자들 반발 확산

기자협회를 ‘임의 단체’로 규정하고, 신임투표를 진행할 시 사규에 따라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보도국장의 ‘전면전 선언’에 기자들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같은 날 KBS전국기자협회(이하 전국기협)는 성명을 내어 “기자협회를 겁박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일선 기자들과 소통해 KBS뉴스가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기협은 “소스가 어디에서 나왔든 뉴스가치가 있고 시청자가 궁금한 사항이라면 인용보도를 할 수 있지만 너무 지나쳤다는 게 문제”라며 “조선일보 이중대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는 비난의 소지가 충분했다”고 말했다.

전국기협은 “MBC, SBS 가정부 폭로 아이템을 5번째 순서로 채 전 총장 반론 포함해 한 꼭지만 다룬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다수의 기자들이 MBC, SBS 편집방향이 옳다고 보는 것에 대해 지금이라도 보도본부 수뇌부는 기자적 양심을 걸고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사건, 촛불집회, 삼성 자녀특례입학 부정에 대해서는 소극적 편집으로 일관해 놓고, 이번 채 전 총장 사건은 당사자 간 법적 공방을 벌이는 중인데도 타사 보도를 검증 없이 재방송 수준으로 보도했다”며 “(보도국 간부들은) 그 과정에서 출입기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편집권이 간부들의 전유물인 양 휘두른 데 대해 후배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기협은 “만일 이번 일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더 많은 기자들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도본부 수뇌부들은 명심하길 바란다”며 성명을 맺었다. 이번 전국기협 성명에는 부산지회, 울산지회, 대구·안동·포항지회, 광주·순천·목포지회, 창원·진주지회, 제주지회, 대전지회, 청주·충주지회, 전주지회, 춘천·원주지회, 강릉지회가 참여했다.

이번 보도국장의 입장표명을 두고 KBS의 한 기자는 “국장의 글은 이미 2일 총회에서 다 나온 얘기이고, 기자들이 그에 대해 반박도 끝난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뉴스타파>는 정보가 어디서 왔고 어떤 확인과정을 거쳤는지 공개했고 KBS 기자들이 추가 취재도 했다”며 “하지만 TV조선은 채 전 총장 진위여부 다툼의 당사자인데다, 당장 그 가정부가 실제 가정부인지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보도본부장이 아닌 보도국장에 대해 신임투표를 할 수 있는 회사 규정이 없고, 회사가 여기에 징계를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기자협회원들의 요구가 강하고 그만큼 이번 보도에 대해 심판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일 총회에 참석했던 이 기자는 “최근 몇 년간 열린 총회 중에서 이날 가장 많은 기자들이 참여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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