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로부터 촉발된 판타지 영화의 붐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을 필두로 하여 <나니아, 퍼시 잭슨, 트와일라잇, 헝거 게임>까지 죄다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할리우드라고 해도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자니 창작력이 소설가에 비해 부족한 걸까요? 하긴 같은 조건에서 보면 한 핏줄이라고 할 수 있는 SF 장르도 소설을 발판으로 삼는 경우가 많군요. 어쨌든 이런 판타지 영화는 이미 베스트셀러로 독자의 인증을 받은 이야기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수 창작보다는 흥행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걸 의미하죠. 영화로 옮기면서 남은 관건은 소설과 달리 한정된 시간 내에 전달해야 할 의무를 가진 각색과 시각적으로 그럴 듯한 설득력과 몰입을 창출해야 하는 연출입니다. 뭐 다 아시다시피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으니 영광을 누리려다가 몰락하는 영화가 속출하지만요.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 역시 카산드라 클레어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았습니다. 주인공인 클레리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10대 소녀(왜 아니겠어!?)'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것만 같던 날에 어머니가 사라지는 사태를 맞이합니다. 설상가상 외모를 제외하면 평범하게 보이던 클레리는 알고 보니 자신이 악마를 쫓는 사냥꾼인 '섀도우헌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와중에 먼저 섀도우헌터로 활동하고 있던 제이스, 클레리스의 절친인 사이먼과 함께 악마들이 드나들 수 없는 성소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어머니가 클레리의 기억을 일부러 지우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차츰 본분을 각성하고, 아버지가 누군지와 함께 비극적인 관계마저 밝혀집니다.

이 정도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를 영화로 옮기게 된 의도와 목적은 노골적으로 <트와일라잇>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 영광을 뒤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어여쁜 10대 소녀가 주인공이고 잘 생긴 남자 둘에 의해 사랑을 받으면서 삼각관계에 빠진다는 것까지 <트와일라잇>과 동일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의 클레리는 <트와일라잇>의 벨라보다 적극적이며, 허구한 날 연약한 척하면서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장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어쨌든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가 <트와일라잇>의 아류로 치부될 수 있다는 건 일찌감치 예고편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탓에 이 영화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기대라곤 눈곱만큼도 할 건덕지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좀처럼 애정을 줄 수 없는 철저한 소녀 판타지였다고 치부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한눈에 제 2의 <트와일라잇>을 표방하는 게 분명한 영화를 좋게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극장으로 가면서도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는 릴리 콜린스를 보는 재미로 견디자는 각오를 가졌었는데, 오호~, 이거 걱정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해리 포터>부터 여타 판타지 영화를 모두 포함하더라도 1편으로서는 그나마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캐스팅과 연기가 나쁘지 않았고, 진부한 설정에서 출발하여 흥미는 떨어지지만 각색과 연출이 지리멸렬한 수위를 비켜가고 있었습니다.

상영관에 무심하게 들어갔다가 조금은 집중하게 됐던 계기가 각색이었습니다.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는 전개가 예상 외로 빠릅니다. 보통은 주요 캐릭터를 포함하여 부모님과 친구 등의 주변인물까지 소개하고, 그들과 주인공의 관계까지 가볍게 그린 다음에야 사건을 펼치지 마련입니다. 말 그대로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이 어떤 일이나 인물로 인해 확연하게 변한다는 걸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역효과가 발생하면 "아~ 뭐야!? 서론이 왜 이리 길어"라는 투정도 나오지만 대개 고집스레 이것을 먼저 제시합니다. 반면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는 과감하게 생략했습니다. 도입부에서 이미 소녀에게 뭔가 있다는 것을 깔고, 이것이 수면으로 드러나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 생략이 참 맘에 들더군요. 어차피 소녀에게 특단의 사건이 벌어질 것이란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걸 가지고 만든 게 소설이자 영화일 테니 구태여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런닝타임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급기야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는 어머니가 사라지는 과정도 빠르게 처리하고 모든 포커스를 콜레리에게 집중시키려고 합니다. 물론 부작용은 있습니다. 워낙 전개가 빠른 탓에 구멍도 보이고 허술한 짜임새가 종종 드러납니다. 방금 보니 북미 평론가들이 집중적으로 까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이것이던데, WHATEVER!!! 저는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판타지 영화에 비하면 오히려 구멍이 좀 뚫려도 시원시원하게 나아가는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가 더 좋았습니다.

빠른 전개에는 삼각관계의 묘사와 같은 로맨스도 포함이 됩니다.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만 <트와일라잇>과 달리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의 그것은 양념 수준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인 제가 봐도 인내하고 넘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대도시 중 대도시인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에 이어서 콜레리의 친구인 사이먼을 집어넣어 현실감각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액션의 비중도 훨씬 크고 화려합니다. 다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막장스런 관계정립은 김이 확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세기의 음악가가 섀도우헌터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도 썩소만 짓게 했으나, 몇 가지만 보완해서 속편을 제작하면 아주 나쁘진 않겠네요. 북미에서 흥행은 거의 말아먹었지만...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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