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다. 본격 도망길에 나선 탈주범이 편할 수는 없겠지만 덤프트럭에서 콜라를 훔쳐 먹은 후 빨대를 바라보며 장태산이 웃을 때 설마 흙에 파묻히지는 않겠지 했다. 그러나 진짜 파묻히면 대박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반신반의의 상황에서 이준기는 진짜로 생매장을 단행했다. 이건 진짜로 박수를 쳐도 모자랄 연기 이상의 투혼이다. 드라마 상으로 보기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촬영현장의 여건상 이준기가 흙 속에 잠겨 있는 시간은 상당히 길었을 것이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나 트윅스 같은 드라마는 개연성과 사실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나 연출하는 감독이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태산의 탈주 1일 그러니까 수진이 수술까지 남은 날 14일째는 한마디로 이준기의 개고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신 명장면을 수두룩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어지간한 영화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감나게 표현됐고, 시청자들은 그제야 왜 경찰이 탈주범을 잡지 못하는지를 이해하게 됐을 것 같다.

어떤 배우라도 고생 없이 연기하지는 않지만 탈주 첫날의 이준기는 그 고생의 수준을 많이 뛰어넘었다. 특히 단단하게 다져진 덤프트럭 흙더미를 뚫고 나올 때의 모습은 정말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사실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준기가 얼마나 오래 흙 속에 파묻혀 있었는지는 젖어있는 옷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왕의 남자에서 딸의 남자로 변신한 이준기의 각오가 느껴지는 숙연한 순간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절삭기를 훔쳐와 외딴집 헛간에서 수갑을 잘라내는 장면 또한 위험천만한 상황. 안전장치도 했고, 절삭기의 회전방향으로 인해 불꽃이 이준기 쪽으로 튀지는 않겠지만 평소 절삭기를 다룰 상황이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극도의 공포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준기는 겁도 없이 그 장면 역시 소화해냈다. 따로 연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절삭기에 수갑을 대기만 하면 저절로 그 두려움이 배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숱한 고생을 겪고 난 장태산 앞에 다시 수진이가 나타난 것은 절묘했다.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이기도 하며 장태산의 부정을 보여주는 내레이션이기도 하다. 수진이가 가뜩이나 작은 몸을 더 작게 쪼그리고 앉은 모습은 장태산의 고생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 그리고 장태산의 무사한 도망에 더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아무튼 이준기의 땀내로 가득한 도주 첫날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장태산이 도망을 시작한 가운데 검사 박재경은 국회의원 조서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고, 죽은 오미숙의 유품을 끌어안고 울다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사준 여성 속옷에 숨겨놓은 전당표를 찾은 것이다. 그것은 사건 당일 오미숙이 급하게 장태산에게 맡긴 것이고, 그 디카는 장태산의 고아원 동생 고만석이 여행에 들고 갔다가 사진인화를 위해 애인이 갖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알게 되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조폭 문일석도 알게 되는 것이 문제다. 문일석은 이미 장태산이 발견된 지역으로 킬러를 보냈으며 동시에 디카의 행방도 찾을 것이다. 아직은 경찰과 문일석 모두 그 디카가 고만석에게 가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디카는 장태산이나 박재경 모두에게 가장 결정적 단서인 동시에 탈주범과 검사가 절묘하게 의기투합하게 될 중요한 복선의 오브제이기도 하다. 이제 박재경과 킬러 둘 중 누가 먼저 장태산을 잡거나 혹은 연락하느냐에 14일의 방향이 결정된다. 아니 딸 수진이의 생명이 달려 있다.

그렇게 1회에 도망 하루를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의 첫 날이 지났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보면서도 모를 긴장과 속도를 보였다. 장태산의 숨 막히는 도주도 그렇지만, 박재경이 장태산의 살인동기에 의심을 품게 하는 빠른 전개 또한 속 시원했다. 사건을 빙빙 에둘러 분량을 잡아먹지 않겠다는 뜻이며, 14일간의 도주와 추적의 에피소드가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는 작가의 자신감 표출이기도 할 것이다. 소양의 투윅스가 점점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제 남은 날짜 13일.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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