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동을 시작하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두렵고 긴장 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크로스핏 박스로 들어가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리둥절한 표정과 겁먹은 눈빛으로 박스(box)에 들어온다. 그리곤 박스 안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이상한 용어들을 써가며 대화를 하고, 코치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상황에 더 자신감을 잃곤 한다.

“오늘 WOD는 AMRAP 12분짜리 Power Snatch와 Box Jump야. 8라운드까지 했는데 Second Pull을 아직 잘 못해서 그냥 팔로만 들었지 뭐야”
“???????????????????????”

이번 다이어리는 이제, 막 크로스핏을 시작해 보려는 당신에게, 조금 더 용기를 주고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련했다. 적어도 처음 간 박스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지 않도록 말이다.

▲ 크로스핏 박스의 흔한 풍경.

크로스핏 입문 1단계, 그들만의 언어를 극복하자!

크로스핏은 운동을 꽤 했던 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접하게 될 단어는 아마도 WOD(Workout of the Day)일 것이다. 발음 상으로는 ‘와드’와 ‘워드’의 중간 정도 되는데, 보통은 ‘와드’라고 읽는다. WOD는 ‘끊임없이 다양하게’ ‘기능적인 동작들로’ ‘고강도 훈련’ 하는 것 즉, 선수를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점점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크로스핏 철학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 밖에 다른 주요 크로스핏 용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밖에도 ‘Girl’s Name‘ WOD란 것이 있다.(한국의 어떤 크로스피터들은 이를 ’소녀시대 와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3년, 크로스핏의 창시자인 Greg Glassman은 크로스핏 저널에 ‘여자’이름을 붙인 WOD들을 소개하며 불리게 된 이름이다. Greg Glassman이 이 WOD들을 ‘Girl’s Name WOD‘라고 묶음지은 까닭은 다른 이유가 아닌 좀 더 쉽게 불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컨대, ‘Thruster와 Pullup을 21, 15, 9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Fran” 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쉽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여자 이름이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Glassman은 “모든 WOD는 끝나고 난 뒤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고통스러운 순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연히 여자 이름을 붙이는 게 마땅하다”고 답했다. 마치 태풍에 여성 이름을 붙이듯 말이다.

▲ 한국의 어떤 크로스피터들이 '소녀시대 와드‘라고 부르는 'Girl’s Name‘ WOD들이 있다.

여자이름의 와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Hero’s WOD도 있다. 이것들은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붙여 만든 WOD들이다. 그리고 한국에도 Hero’s WOD가 있다. 바로 천안함 사건 당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한주호’를 기리는 Hero’s WOD의 이름이 바로 ‘한주호’ WOD이다. ‘한주호’ WOD는 7라운드 동안 7개의 Thrusters(95/65lb)와 7SDHP(95/65lb)를 반복하는 구성이다.

▲ 천안함 사건 당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한주호’를 기리는 Hero’s WOD의 이름이 바로 ‘한주호’ WOD이다.


http://youtu.be/4ZJMblG5apg


크로스핏 입문 2단계, 강도(Intensity)를 올리고 싶다면!

크로스핏의 대략적인 개념과 용어들에 익숙해지면, 이제 슬슬 운동의 강도를 높여가고 싶어질 것이다. 이때는 딱 3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바로 ‘Mechanic, Consistency, Intensity’이다.

크로스핏은 고강도 훈련을 통해 피트니스 레벨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운동이다. 모든 WOD들은 시간과 싸우며, 같은 박스 멤버들과 경쟁하며 수행되는데 이 전 과정은 동작을 더 빠르게, 더 무겁게, 더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을 통해 달성된다. 이것이 바로 Intensity, 즉 강도이다.

그러나 아직 초보자라면 강도 높은 훈련에 노출 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크로스핏은 그 어떤 피트니스 레벨의 사람이라도 맞춤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운동 프로그램이 디자인되어 있다. 강도를 약하게 하는 대신, 우선은 Mechanic. 즉, 좋은 ‘테크닉’을 익히는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크로스핏에서 말하는 좋은 테크닉이란,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효과적인 동작으로 자신의 체중과 외부의 물체를 이동 시킬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Consistency, 즉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두 가지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매 훈련 마다 좋은 테크닉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WOD를 매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고 빨리 크로스핏을 소화해 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당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좋은 점은 우리의 신체는 우리가 눈치 채기도 전에 정말 빠르게 적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피곤하고 아팠던 운동들이, 단 몇 주만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음을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 이제 Intensity 즉 강도이다.. 크로스핏을 통한 결과물은 모두 ‘강도’에서 비롯된다. 좋은 테크닉으로, 지속적으로 크로스핏을 할 수 있다면, 이제 강도를 높여 운동을 해야 한다. 강도를 높인다는 말은 같은 양의 Work를 더 빠른 시간 안에 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설명한바 있는 ‘출력’의 개념이다.) 스쿼트 50회를 천천히 하는 것 보다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더 강도가 높은 것이며,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는 것이 더 강도가 높은 것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강도’에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굉장히 빠르게 적응한다는 점이다. 한번 겪은 수준의 강도는 이후에는 더 이상 힘들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크로스핏의 WOD가 언제나 기록을 재고, 이 기록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것만이 더 높은 수준의 피트니스 레벨로 가는 유일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의지로 강도를 높일 수는 없다. 우리가 함께 모여 크로스핏을 하는 이유이다. 분명, 박스의 멤버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나라도 더 반복 할 수 있도록 당신을 응원해 줄 것이고, 그 순간 당신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더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로스핏 입문 3단계, 당신의 박스(box)를 선택하라!

크로스핏 탑 선수이자 유능한 코치 중 한명인 Zach Forrest의 말을 빌리자면, “전 세계에 똑같은 크로스핏 박스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박스를 선택하는데 참으로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든다. Zach Forrest는 자신의 박스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코치진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새로운 멤버가 방문 할 때 마다 같은 지역 내 6개의 다른 박스도 가보라고 권한다고 한다. 그는 “코치가 테크닉 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멤버가 그 코치의 스타일에 전혀 반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코치의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박스는 초보자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용 하고 있다. 어떤 박스 오너도 자신의 새 멤버가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환불 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검색해 보았건, 누군가에게 크로스핏을 소개 받았건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 운동이 무섭고 힘들고 위험해 보인다는 느낌을 갖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당신이 ‘검증’된 박스에 들어섰다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앞서, 말했듯 크로스핏은 누구에게나 맞게 축소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고, 경험이 많고 유능한 코치라면 당신의 피트니스 레벨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며, 어떤 위치와 레벨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선택한 코치는 당신에게 최고이어야 하며, 당신은 코치를 통해서만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운동을 하는 순간만큼은 코치가 당신에게 ‘신’이어야 한다.

Rule No.1 “코치는 언제나 옳다.”
Rule No.2 “만일 코치가 틀렸다면, Rule No.1을 한번 더 읽어보자”

크로스핏과 박스에 관한 문제에 있어 어떤 이들은 크로스핏이 Reebok(리복)에서 만든 프로그램인 것처럼 알고 있기도 하지만 오해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연히 좋은 크로스핏 박스냐 아니냐는, Reebok이냐 아니냐 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크로스핏은 1974년에 시작 되었고, Reebok이 스폰서가 된 것은 2010년부터였다. 보스턴 Reebok 본사에 첫 번째 Reebok 스폰서쉽 박스가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두 번째로 대한민국 서울에 ‘Reebok CrossFit 투혼’이 오픈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 Reebok 간판을 단 크로스핏 박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크로스핏 불모지였던 한국을 비롯하여 몇몇 도시에 Reebok과 크로스핏에 대한 괜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Reebok이 붙지 않은 박스들에 대한 오해 역시 함께 생기고 있는 형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Reebok이건 아니건 크로스핏 박스 라는 사실은 다 똑같다. 마찬가지로 Reebok이 붙어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박스일 것이라는 것도 오해일 뿐이다. 위에 언급 했듯이, 세상에 똑같은 크로스핏 박스란 없으며, 각각 박스들들의 특성과 Reebok이란 브랜드는 별개의 문제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서 크로스핏 박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각각의 박스들은, 그리고 코치들은 저마다의 노하우를 가지고 크로스핏을 통해 여러분들의 피트니스 레벨을 올려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떤 박스가 자신과 잘 맞는지만 선택하면 된다.

▲ 크로스핏에서 박스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박스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의 형성은 크로스핏을 다른 운동과 차별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 좋은 크로스핏 박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쪽부터 투혼(은평), 제스트(양재), 지존(대전), LOL(삼척), 페인스톰(강남) 박스.

크로스핏을 다른 종목의 운동과 차별화하는 것이 바로 박스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커뮤니티이다. 크로스핏의 가장 큰 특징 중 한가지가 바로 탄탄한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끈끈한 네트워크로 그들이 소속된 박스를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있는, 어느 크로스핏 박스가 잘 운영되고 있느냐 아니냐는 커뮤니티의 활성화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박스는 당신에게 대회를 열고,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며, 더 재밌고 신나게 운동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물론,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로 으스대거나 잘난 척 하는, 허세 부리는 멤버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간단하다. 어디서 운동을 했든, 얼마나 근육이 잘 발달 되었든 항상 겸손한 태도와 예의를 지킨다면 당신이 선택한 박스의 커뮤니티는 훨씬 더 당신을 환영할 것이다. 이제 됐다. 3, 2, 1 go!

http://youtu.be/EHuJsw5OXFI

이근형

리복 크로스핏 마스터 트레이너로 크로스핏 박스 ‘투혼’의 대표.
아시아에 단 3명 뿐인 국내 유일 크로스핏 레벨2 자격 보유자이다.
한국에 크로스핏을 소개한 그를 국내 크로스피터들은 '조상님' 혹은 '두목'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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