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연기하는 앵커 윤영화는 어느 날 라디오 진행을 하다가 질문과는 상관없이 뜬금없는 답변을 받는다. 윤영화는 라디오 방송의 원활한 흐름을 잇기 위해 동문서답하는 청취자의 사연을 무시하고 끊어버린다. 하지만 청취자의 전화는 끊긴 것이 아니었다.
끊기지 않은 청취자의 전화는 이내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협박 전화로 바뀐다. 윤영화는 이를 장난전화로 치부한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마포대교가 폭발한다. 그 청취자는 테러리스트였고,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윤영화의 태도에 대한 보복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를 자행한다.
방송은 시청률에 목을 맨다. 시청률이 높으면 해당 프로그램의 광고 단가와 광고 편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반대로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아도 시청률이 안 나오면 해당 프로그램은 조기 종영하거나 폐지된다. 광고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라는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매스미디어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꼬집는다. 미디어의 생리를 잘 아는 윤영화는 이 청취자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했다가는 테러리스트의 전화 통화를 단독 생중계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기에 그렇다.
그리고는 테러리스트와 계약을 맺는다. 다른 방송사와는 통화하지 않는 단독 생중계의 조건을 내걸고 윤영화는 테러범과 위험한 생중계를 시작한다. 시청률 확보를 위해서라면 온갖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이는 요즘 방송사의 황색 저널리즘의 행보를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범과 앵커의 생중계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꼬집는다.
<더 테러 라이브>는 방송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얼굴 하나 보여주지 않는 테러범과의 밀고 당기는 전화 통화를 <폰 부스>처럼 강도 높게 보여준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전화 한 통으로 윤영화의 일상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하는가를, 그리고 방송의 주도권을 놓지 않던 윤영화가 어떻게 테러범에게 끌려 다니게 되는가 하는 변화를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테러범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함으로 테러범이 경찰에 체포당하는 극적인 순간을 전화 통화로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윤영화와 방송국 국장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테러범은 이런 윤영화의 계획을 넘어서는 계획을 갖고 윤영화를 쥐락펴락하기 시작한다. 테러범이 바라는 건 고액의 협상금이 아니라 고위층의 속죄라는 내용은 얼마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일용직 근로자의 소모품화에 대한 정부의 반성과 보상을 촉구하는 설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최근 불거진 노량진 배수관 근로자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크랭크업한 영화다.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근무 조건에서 일하다가 침수 통보를 받지 못해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노량진 상수도관 공사 현장의 수몰 사고 인부들의 희생은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이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설정과 너무도 닮은 것이 사실이다.
애꿎은 인명이 희생되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극 중 정부의 처사는 <더 테러 라이브>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노량진 배수관 인부 수몰 사고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일용직 근로자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피값조차 제대로 보상하지 않으려는 위정자를 향한 날선 비판이 서려있는 영화가 <더 테러 라이브>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