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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김미숙, 미저리 이후 처음 느끼는 오싹함[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3.07.24 09:59

전 남편을 죽게 한 원한이 27년이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그 원수와 한 침대를 쓰면서 보낸 세월이라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건 알 수 없다. 사람이 집착의 노예가 되면 상식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패망 이후에도 혼자서 수십 년간을 항거한 일본군 사례도 있으니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비현실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흘을 넘기지 못할 거란 주치의의 사형선고에 김미숙은 오히려 더 독해졌다. 안타깝게도 그런 반전의 빌미는 박근형이 제공했다. 스스로 마지막을 예감했던지 박근형은 성진그룹 지주회사인 성진시멘트의 주식을 차명계좌로 숨겨왔던 사실을 김미숙에게 알렸다. 물론 이요원에게 전달하라는 뜻이었지만 김미숙에게는 3년 전 유상증자 때 포기해야 했던 복수, 즉 성진그룹을 차지하는 욕망의 스위치를 누른 결과가 돼버렸다.

김미숙은 박근형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켰다. 자식들에게는 아버지가 허약해진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을 거란 그럴싸한 핑계를 대서 병문안을 막았고, 주치의에게는 회사 보안이라는 이유를 댔다. 하필 이요원은 부도 처리된 제철회사 합병건으로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또 고수와 손현주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아버지 박근형에게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었다.

   
 
황금의 제국을 세운 황제지만 병과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그나마 김미숙 아들 성재(이현진)에게 자기 자식이 아닐 걸 알고 있었다는 고백이 마지막 반전을 위한 실마리로 남겨졌으나, 박근형에게는 지금 당장의 상황이 눈앞의 죽음보다 더 두렵기만 하다. 자신이 숨을 거두자마자 그룹을 통째로 빼앗길 두려움이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 술에 취한 장남 원재(엄효섭)이 찾아왔다. 이 못나고 밉상인 장남은 끝까지 아버지 박근형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병실을 찾은 것부터가 장남이라는 작자가 할 행실은 아니었지만, 술김에 병실문을 잠근 것까지는 박근형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술과 자기감정에 취한 장남은 박근형이 힘겹게 이요원을 불러달라는 말을 무시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들 뿐이다.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일 수도 있는 말을 김미숙의 달콤한 말에 무시해버리고 만다. 병석에 누운 박근형으로서는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없다.

그런 장남의 한심한 작태도 꼴사나웠지만 그보다는 김미숙이 너무 무섭다. 27년 동안이나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두 인격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김미숙 본인에게도 고통이었겠지만 27년만에, 그것도 죽음을 목전에 둔 박근형은 놀라서 죽다가도 깨어날 지경일 것이다. 그러나 놀란 기색도 할 수 없이 숨을 죽이며 오매불망 딸 이요원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일 뿐이다. 그런 박근형을 보면 잔인한 웃음을 보이는 김미숙의 표정은 영화 미저리 이후 처음 느끼는 오싹함이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 프롤로그에서 나왔던 것처럼 성진그룹은 안전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두려움의 강도가 다소 줄어들기는 한다. 또한 엄마 김미숙과 달리 그룹 쟁취에 관심이 적은 성재를 흔들리게 한 것이 반전의 복선이었다. 고수의 언론플레이로 제철회사를 합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요원은 동생 성재 방에 들어와서 잠시 하소연을 하고 나간다. 그때 성재는 더 못 참고 이요원에게 아버지 박근형의 위독함을 알린다. 27년 간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엄마 김미숙을 배신하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이요원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박근형이 온전히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다. 아니 버티더라도 문제다. 이요원으로서는 아버지도 죽는 마당에 거의 평생 의지해왔던 엄마도 잃게 되는 것이다. 황금의 제국 사람들은 위기를 넘기더라도 행복해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보는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는 어렵지만 그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을 꼽으라면 김미숙일 것이다. 이미 복수에 매달린 27년이 불행하고, 유일하게 믿었던 아들 성재의 흔들림 때문에 복수마저 이루지 못한다면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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