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이의 가족 여행을 테마로 한 MBC <일밤-아빠! 어디가?>(이하 <아빠! 어디가?>)는 그동안 '복불복' 게임버라이어티에 적잖은 피로감이 쌓인 시청자들이 간만에 편안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훈훈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아빠! 어디가?>에서도 게임과 미션을 통해 한 가족을 차별 대우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발견되고 있다. 임의로 하룻밤 묶을 집을 정하고, 일찍 일어난 순서대로 아침 식사 재료가 달라지는 것은 양반이었다. 지난번 학교 캠핑에서는 윤민수, 윤후 가족이 옥상 위에 올라가 힘겹게 텐트를 치더니, 21일 방영된 태안 갯벌 캠핑장에서는 김성주, 김민국 가족만 캠핑카에서 취침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가족 수에 맞게 캠핑카 다섯 대를 준비했지만 제작진은 끝내 김성주 가족에게 캠핑카 탑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은 모두 캠핑카에서 잘 수 있는데, 자기 가족만 캠핑카가 아닌 텐트에서 자게 된 것이 못내 속상한 민국이. 특히나 캠핑카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던 민국이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 컸을 법도 하다.
결국 오랜만에 눈물을 뚝뚝 흘린 민국이.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나간 직후, 수많은 네티즌들은 1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복불복에 승복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민국이의 의젓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아빠! 어디가?> 첫 회부터 연이어 다른 가족보다 좋지 않은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 민국이는 눈물을 흘렀다. 그런데 민국이의 눈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상당한 거부 반응을 모를 리가 없는 <아빠! 어디가?> 제작진은 구태여 또 다시 민국이의 눈물을 화면에 내보냈다.
<아빠! 어디가?> 제작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어른들과 달리 서운한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캠핑카가 다섯 대가 마련되었음에도 '재미'를 위해 김성주 부자를 텐트로 보낸 제작진의 발상 때문에 민국이는 동생들보다 더 징징거리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작진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단 명분으로 '복불복' 놀이에 열중하는 것 같다. 그날 아빠들의 달리기 시합에서 진 이종혁은 가슴 위를 제외하곤 몸 전체가 모래에 파묻히는 벌칙을 받아야 했다. 게임 전부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아들 준수. 아빠 이종혁이 다른 아빠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는 동안, 준수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파묻힌 이종혁 앞에서 수박을 먹으며, 이종혁 옆에 씨를 뱉겠다는 삼촌들의 짓궂은 농담도 준수로선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는 장난이 아니다.
결국 자신의 아빠의 얼굴에 씨를 뱉겠다는 삼촌들로부터 아빠를 지키기 위해, 모래에 묻힌 이종혁 앞에 올라탄 준수. 아빠를 지키겠다는 준수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도 여기서 준수를 놀래킬 장난을 멈출 아저씨들이 아니다. 농담 삼아 "수박 껍질을 한 장소에 모아놓으라"하며, 장난스레 수박껍질을 이종혁 앞에 살짝 던지는 성동일의 움직임에, 아빠 지킴이 준수는 바로 아빠 앞에 있는 수박 껍질을 멀리 던지는 반격을 시도한다.
인간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대적 빈곤과 비교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이다. 만약 혼자서 여행을 와서 사정상 허름한 숙소에 묶게 되었다면 기꺼이 잠시의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은 다 좋은 숙소에서 묶는데 자신만 야외취침, 혹은 그보다 허름한 숙소라면?
제작진과 주요 출연진이 바뀌기 전 <1박2일>의 '복불복'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성인 어른 또한 게임이나 미션에서의 불운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메라 앞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불운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1박2일> 출연진의 의연한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과 동시에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아빠! 어디가?>는 다 큰 성인도 감내하기 어려운 복불복의 불운을 어른보다 더 상처받기 쉽고 경쟁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지난주 단순한 가위바위보 게임에도 아이들이 서운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장면을 본 <아빠! 어디가?> 제작진은, 그 다음 주 태연히 한 가족 캠핑카 낙오를 계획하고야 말았다.
그날따라 유독 아이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 설정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지던 '태안 갯벌 체험'을 살린 것은 역시나 <아빠! 어디가?> 일등 공신 아이들이었다. 한 살 동생 준수를 끔찍이 아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후의 자상한 준수 앓이와, 자신이 손수 잡은 맛조개를 방생하는 민국이의 따뜻한 마음씨는 꼭 누군가와 경쟁구도를 못 만들어 안달이 난 어른들이 간과할 법한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삼촌들의 장난도 머쓱하게 만든 아빠지킴이 준수는 오늘도 수많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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