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해보자. 소위 ‘자칭 좌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취했던 몇 가지 ‘기믹’들이 있다. 좀 다른 인디음악을 찾아듣거나,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나만의 홍대 카페 리스트’ 정도는 머리에 늘 있어야 하고, 영화를 좀 알고 와인 대신 맥주 브랜드를 읊어대는 그런 것들 말이다. 여기 하나가 추가된다. 성적으로 좀 주체적이어야 했다. 눈앞의 남자를 꼬시지는 못해도 가벼운 밀당이나 스킨십 정도는 즐겨야 했고, 19금 콘텐츠도 좀 알아야했다. 나는 10대 때 ‘잘 나가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따라서. 찌질하지 않으려면 빼지는 말았어야 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망해버린 좌파 판이니 ‘(외모가) 조금만 멀쩡한 여자면’ 쉽게 ‘공주’가 될 수 있다고, 이 판 여자들을 걱정(?)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노선을 선택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자칭 좌파’ 남성들 또한 성적으로 개방(‘문란함’으로 대체해도 좋다)적이고, 섹스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하며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때로 그런 이야기는 술안주로 오르내리며, 모두를 즐겁게 하며, 당사자에게는 영광으로 재연되기도 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맞먹는 ‘정치적 섹슈얼리티’였다.

왜 좌파들은 섹스를 밝힐까?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사실이라도 그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단지 ‘개방적이라 여겨지는 이미지’를 즐기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왜 어떤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매력 자본’을 끝없이 강조해야할까? 왜 나는 나에게 있지도 않은 ‘매력 자본’을 박박 긁어서 나를 꾸며낼까?

부르디외가 간과한 제4의 자본, 매력자본

▲ 매력자본, 캐서린 하킴 지음, 이현주 옮김, 민음사, 2013. 2. 1.
<매력 자본>의 원제는 매력 자본을 Erotic Capital로 쓰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라는 뜻의 魅力은 원래 저자의 뉘앙스와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이것은 ‘에로틱’과 ‘매력’이라는 단어를 누구에게 쓸 수 있는가를 따져본다면, 명료하게 와닿는다.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특히 성적인 매력의 측면으로, 책에는 ‘에로틱 파워’라는 표현이 빈번히 등장한다.

지은이 캐서린 하킴은 영국 사회학과 교수로, 원래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교 저널에 실린 동명의 논문이며, 이후 단행본으로 고친 것이다. 따라서 도입부에서는 기존의 페미니즘의 논의와 방향을 비판하며, 부르디외의 사회 자본 등의 이론들을 살피며 최신의 성 의식 보고서등을 상세히 인용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돈과 같은 경제 자본, 교육 정도와 특정 계층의 취향, 억양, 수준 등을 포함하는 문화 자본, 소속 집단이나 인맥 등을 의미하는 사회 자본의 개념을 정의했다. 저자는 여기 더해 ‘매력 자본’을 네 번째 자본이라 정의하며, 그동안 이 매력자본이 간과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매력 자본이 풍부하다. 저자는 ‘매력 자본이 무시되어온 이유’로 그 자본을 독점할 수 없는 엘리트층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매력 자본을 하찮게 여기고 열외로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추리는 어떨까? ‘좌파’가 ‘엘리트층’은 아니지만, ‘매력 자본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 자본의 획득을 추구할 수 없는 집단’에게 ‘매력 자본’은 상대적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즉,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매력 자본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사실은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면, 좌파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다른 자본들을 메꾸기 위해 상대적으로 매력 자본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아도취와 성적결핍을 오가는 남자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남성과 여성의 ‘성욕의 불균형’을 상세히 밝히는 2장 ‘욕망의 정치학’이다. 여자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것과 달리, 남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멋있다고 착각한다는 말이 있다. 이 책에서도 “모든 국가의 남성은 모든 연령대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조직적으로 과대평가한다. 반면 여성은 현실적이다(42쪽)”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아도취된 남성들이 ‘성적으로 결핍된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주목한 남자들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절대 도덕적 비난이 아니다) ‘매력 자본’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남녀 사이의 성욕 불균형으로 인한 ‘남성의 섹스 결핍’ 때문에 현실에서 보다 크게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책에 인용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에서 절반이 넘는 여성들이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은 섹스를 둘러싼 감정 게임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들은 성행위를 부부 관계의 협상 도구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연령대의 남성은 자신이 갖는 성관계보다 훨씬 더 많은 성관계를 원한다. 여성은 성 활동이 적을 뿐 아니라 성욕 또한 훨씬 낮게 표현한다. 따라서 남자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정도는 다르지만 성적으로 좌절한 상태로 보낸다. (53쪽)

섹스에 대한 여성의 관심은 적고 매력적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수요는 과다하다는 원칙은 여성의 매력 자본의 가치를 크게 높여준다. 성적 관심의 불균형은 사적인 관계에서 여성에게 중대한 이익을 제공한다. 여성이 그 이익을 인지한다면 말이다. (54쪽)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 해방이 이루어졌는데도, 왜 여성은 여전히 외모를 꾸밀까? 여성의 매력이 사회적 산물의 결과라기보다는 인간은 본래 매력 자본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성들이 더 많은 매력 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이것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매력 자본을 쓸모없다고 설득해왔으며 따라서 여자들은 매력자본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성녀와 창녀의 구분, ‘예쁜 여성은 멍청할 것이다’와 같은 수사가 그것들이다.

경제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과 달리 매력 자본은 다른 자본과 동일하게 교환할 수 있는 가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왜 매력 자본은 왜 비난 받는가?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매력 자본을 경제 자본으로 전환하는 여자는 ‘꽃뱀’으로 낙인찍힌다. 아래 문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된장녀’ 논란이 사실은 어떤 시선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비난의 근저에는 남자는 여성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 특히 섹스를 공짜로 얻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남자는 돈을 목적으로 일해도 되지만,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 여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무상으로 해 줘야 한다.(102쪽)

물론 그 원인을 전적으로 섹스만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남성이 여성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상당 부분이 공적인 생활과 사생활에서 여성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반면 남성은 통제력을 상실한 데 대한 반응”이라며 진화론적인 여지도 남겨두고 있다. 다만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이란 “아름답고 성적으로 흥분을 주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려 들지 않으며, 남성의 의견을 따르고 그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여성”인 것이다.

반대로 포르노는 남녀의 성적 특징이 일치하는 ‘성적 욕망의 과다 상향화’ 상태만을 묘사한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이 ‘섹스의 무상 제공 = 사랑’이라는 도식을 전혀 깨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저자는 앵글로색슨계의 급진적인 페미니즘 이론이, 능력을 가진 여성과 매력 자본으로 평가받는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백만장자와 결혼한 여성을 무능한 여성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현실적으로 매력 자본이 중요한 자본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 이를 애써 무시함으로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현대적인 의미가 없는 사회운동으로 간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21쪽).

이 책에서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남녀 사이의 성욕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저자의 해결책이다. 이 말대로라면, <섹스앤더시티>의 여자들은 뉴욕에서 만큼은, 많은 남자들의 섹스 결핍을 채워줌으로서 여성의 매력 자본을 정당하게 평가받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 마침내 그것을 여권 신장으로 구현해낸 여성들이 되는 것이다. 과연 더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자준다면’, ‘된장녀’ 논란이 사라질 수 있는 걸까?

남성의 섹스 결핍에 대한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은 성 산업을 전면적으로 합법화하여 다른 레저산업처럼 번창하도록 허가하는 것이다. 성적 관심의 불균형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남녀 관계에서의 여성의 힘은 증가할 것이다. (126쪽)

후천적으로 획득가능한 매력 자본?

우리는 본디 매력 자본에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정의하는 매력 자본은 외모 지상주의와는 달리, ‘성취된 특징’이며 발전시킬 수 있는 자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매력자본이란 1) 아름다운 외모 2) 성적인 매력 3) 사교술 3) 활력 4) 패션 등의 사회적 표현력 6) 섹슈얼리티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정의한다. 저자가 사는 영국은 모르지만, 한국은 매력 자본의 첫 번째 요소인 아름다운 외모조차 ‘놀라운 발전’을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지 않은가?

매력 자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자본이 순전히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를 지닐 수 없고 지녀서도 안 된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지능은 대체로 타고나는 것으로 인정되지만 곧바로 가치를 부여하고 보상받는다. 미소와 훌륭한 예의범절, 사회적 기술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발전시킬 수 있다. 실제로 매력 자본의 요소들은 지능처럼 키울 수 있다.(169쪽)

책에서도 강조되지만, 배운 남자들은 여전히 자기표현과 구애라는 당당한 의식의 형태로 섹스가 이뤄져야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좌파라면, 따라서 자신이 가진 매력 자본을 강조하는 것 뿐 아니라, 더 많이 성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종종 (음담패설과 달리) ‘매력 자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몇 가지 현상들을 우리는 주목해볼 만하다. 매력 자본은 높은 수준의 경제적, 문화적, 사회 자본과 관련해 실제로 가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가난한 후진국에서는 배우자 선택에서도 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어른들과 성장한 아이는 ‘후광효과’에 힘입어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자신의 장점을 더 잘 파악해 ‘매력 자본’을 더 많이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 다른 자본을 가진 상류층일수록 우월한 매력을 가지게 된다는 우울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최고의 매력 자본을 갖춘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는 지위와 재산뿐 아니라 평균 이상의 매력 자본까지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매력 자본의 계층 간 차이는 커질 수 있다. 이 논제는 아름다운 외모와 성적 매력이 세대에 걸쳐 상위 계층으로 서서히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38쪽)

우리는 ‘매력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감탄을 하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나은 보상을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과도기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적용시킨다면, ‘성형 미인’에 대한 반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출산을 통한 외모 유전’을 약속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계층 상승을 확고하게 해주지 못하는 ‘유전되지 않는 매력 자본’은 교환가치를 상실한 자본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섹스는 가장 저렴한 오락

물론 저자의 말처럼 섹스는 인생에서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오락 중의 하나이긴 하다. (결단코 내가 만든 표현이 아니다) 심지어 섹스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은 성적 매력 역시 낮은 대상과, 부자는 성적 매력이 높은 상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매력 자본’이 계층과 계급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과 지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는 그 나름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영리한 젊은 여성들이 구시대의 페미니즘과 어떻게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들의 후천적 매력을 확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동시에 남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좌절된 섹스 결핍’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하며, 그 분노가 여성을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경계심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이 던지는 ‘매력 자본’의 정의와 남녀에 대한 지나친 설정이 다소 무리하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스타일과 패션만이 나날이 강조되는 시대에 ‘매력’의 구체적인 양태를 살펴보고 그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책이라 할 수 있다.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서 한국의 부모들은 10대 때부터 남녀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죽어라 공부 시킨다. 그런데 모두 대학에 가는 시대에는 그 방법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애당초 ‘매력 자본’의 가능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였다. 설령 그렇게 생각해도 꺼내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자녀를 아이돌 가수로 키우겠다는 부모가 늘어나고, 수능 시험을 마친 여고생들에게 쌍커풀, 앞트임, 뒷트임, 코 성형, 양악이나 교정, 라식 정도는 필수로 해주는 강남의 부모들을 ‘매력 자본’을 이해하는 선구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 여고생들이 대학생이 된다면 마주할 세상이란 아직은 이런 것이다.

젊은 여성들은 단지 자신이 ‘보통의’ ‘정상적인’여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섹스를 해야 하는 새로운 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56쪽)

매력적인 젊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품는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격렬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원치 않는 접촉은 맹렬하게 거부하지만, 우아한 칭찬엔 미소로 보답해준다. 그들은 자부심과 사회적 자신감을 갖추고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만족한다. (61쪽)

미스김
블로그를 운영했던 흑역사를 가진 미혼의 직장인, 현재 글밥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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