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이 “대한민국 창조 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신문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했을 때, 결국 이 사건이 이렇게 정리되는가 싶었다. 의도는 간명했고, 겨냥점은 명확했다. 사주에 대한 수사를 앞두고 어디로든, 어떻게든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CJ그룹은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선언을 한 셈이었다.

이후 CJ는 똑같은 문구로 지상파 광고를 시작했고, CJ E&M의 자사 채널을 통해서는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30초 분량의 ‘스테이션 아이디’(station id, 자사 이미지 홍보 영상)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영상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은지원도 등장했다.

비단, 광고뿐만이 아니다. CJ그룹은 주요 계열사 소속 아르바이트 직원 1만 5000여명을 정규직 시간제 사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제일제당의 신문 광고 역시 ‘Re Start'란 이름의 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시간제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단 방침의 천명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고용형태에 CJ가 앞장선다는 선언이다. 아르바이트 정규직 전환에는 200억 가량의 자금이 필요하고, ‘Re Start' 캠페인으로는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박근혜 정부는 CJ에게 ’공로패‘라도 하나 줘야 할 판이다.

▲ CJ가 정부 '창조경제' 프레임에 맞춰 진행하는 리턴쉽 프로그램 (CJ 리턴쉽 홈페이지)

하지만 그렇지 않으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그리고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눈 밝은 시민들도 다 똑바로 보고 있다. CJ그룹이 지금 왜 이렇게 나서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 한 달여간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은 CJ그룹의 비자금과 이재현 회장의 탈세 문제를 그야말로 탈탈 털었다. 검찰은 해도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피의사실을 흘렸고, 검찰로부터 피의사실 공표를 협조 받지 못한 언론들은 ‘찌라시’에 의존해서라도 CJ를 조졌다.

이 조리돌림의 상황을 두고 여러 가지 설들이 나돌았다. CJ와 삼성 그룹간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뭔가 물 밑의 큰 권력이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적 해석도 있었고, 이재현 회장과 친이계 핵심의 친소 관계를 거론하며 결국 이 수사가 다른 곳을 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시각도 파다했다. 혹자는 ‘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CJ가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설명과 함께 윤창중 사건 등 갖은 악재에 시달리던 정권이 CJ 수사를 통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보태기도 했다. 검찰의 충성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는 개탄도 있었다. 언론계 한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청와대의 유력 인사가 “대선 기간 중 tvN SNL의 한 캐릭터와 그 내용들을 몹시 불편해했다”며, 이에 대한 보복을 “‘유사 보도 제재’라는 정책 수단으로 감행하고 더불어 대대적인 CJ 훑기로 정치 수사에 나선 것” 아니겠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하여간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CJ에 대한 수사 강도와 전파 속도는 이례적이었고 너무 일방적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단일한 이유가 아니라 몇 개의 이유가 겹쳐져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우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종편 4사의 ‘비밀TF' 회동 회의록이 공개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회의록에 따르면 CJ에 대한 압박은 철저히 종편에 의한, 종편을 위한, 종편의 ’작품‘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CJ를 진압하기 위해 종편은 정교하게 실행 계획을 짜고 구체적인 역할 분담을 통해 상황을 조율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CJ의 대응이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 내심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보도기능이 없긴 하지만 CJ는 유력한 ‘언론 기업’이다. 수 십 여개의 자체 채널을 갖고 있는 케이블 시장의 최강자이고, 조중동 종편의 편성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1위 방송사업자이기도 하다. 종편 4사가 “CJ를 무력으로 진압하자”고 결의하는 맥락에는 결국 CJ로부터 뭔가를 얻어내지 못하면 장기적 생존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판단도 깔려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된다.

상식적 수준의, 정공법의 대응을 기대했다. 사주의 혐의 사실에 대해선 그에 걸 맞는 사법적 판단을 받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선 잘잘못을 따지고, 일이 이렇게까지 된 맥락과 이유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비판하고 돌려줄 수도 있었단 생각이다. 자사의 이해관계를 위해 기꺼이 상황을 기만하는 언론 행위를 하는 ‘올드 미디어’들의 관행에 경종을 울려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CJ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엎드렸다. 조중동매의 방식이 ‘강짜’였다면 CJ의 대응은 ‘구태’이다. 사주의 문제가 터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정치권력과의 ‘코드’를 맞추기로 세상에 알리며 상황을 ‘봉합’하는 익숙한 길로 CJ가 들어섰다.

▲ 최일구 '끝장토론'은 녹화를 마쳤지만, 아직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 (사진=tvN 제공)

CJ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이후 공교롭게도 CJ는 대중의 지지를 받던 프로그램들을 가볍게 져버렸다. ‘여의도 텔레토비’가 퇴장했고, 예정됐던 최일구의 ‘끝짱 토론’은 녹화를 이미 마쳤지만, 편성되지 못하고 방송 연기만 지속되고 있다. 모두가 ‘재벌 방송이 그럼 그렇지’하고 씁쓸해하고 마는 분위기지만 이는 재벌 방송의 문제를 넘어 지상파 바깥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유료방송 생태계 전반의 위축과 퇴조로 귀결될 수 있는 위기적 상황이다. CJ의 위상은 어느새 그렇게까지 성장했고, 현실적 힘은 지상파의 그것에 견주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수준까지 진전해 있다.

CJ가 차라리 프로그램을 통해 더 신랄하게 자사의 문제를 반성하고, 사주를 포함한 재벌의 부조리와 비리가 왜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인지를 토론해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치기어린 낭만이라고 하더라도 ‘여의도 텔레토비’에 열광했던 대중이 원했던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약 CJ가 그 카타르시스를 고양해낼 수 있었더라면 CJ보다 더한 사주의 이해관계에 결박되어 있는 깡패 같은 언론들의 횡포 역시 대중의 힘으로 ‘쿨’하게 치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CJ는 한국 사회에서 여러모로 독특한 ‘포지셔닝’의 기업이다. 삼성에서 나왔으되 삼성과 가장 격렬하게 반목하는 그룹이란 점은 그 독특한 포지셔닝의 오늘을 설명하는 한 단서일지도 모른다. 유력한 언론 기업이되 보도기능이 없고, 10대 재벌도 아니지만 대중적 주목도는 재계 순위 상위 기업들을 능가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 독특한 포지셔닝 속에서 CJ는 지상파 방송과 불화했던 어떤 언론인들을 집결시키기도 했고, 정치권력의 눈초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발화를 통해 표현의 틈새를 개척하고 그 자체를 상품화하는데 성공하는 듯도 보였다.

이런 CJ의 독특함에 대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판 자체가 ‘좌파’라는 비아냥을 듣는 영화시장에서 CJ가 어찌되었건 수직계열화에 성공하고 이를 유지해 가고 있다는 것은 CJ가 이념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한국사회의 주류 가운데 거의 유일하다 싶게 이념의 문제가 아닌 문화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문화’란 아마도 상식일 것이다. 장삼이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 CJ그룹의 표현을 빌자면 ‘생활문화’의 보편타당함을 지배하는 합리성의 지칭이다. 하지만 CJ의 ‘코드 맞추기’ 광고는 이 보편타당함에 기대고 있지 않다. 정치권력에 철저한 굴종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하려면 별 수 없다’는 항복이자, ‘재벌은 다 똑같다’는 비난의 잣대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선택이다.

▲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던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 팬티만 입고 무릎을 조아리던 최철기 형사(황정민)의 모습은 권력의 위계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며, 절대 복종할 것임을 웅변하는 퍼포먼스였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해 흥행과 비평 모두를 사로잡았던 영화 가운데 ‘부당거래’가 있다. 현재 상황은 이 ‘부당거래’의 한 장면을 연상케도 한다. ‘부당거래’에는 경찰대 출신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뇌부와 직접 부당한 거래를 터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더 큰 권력의 집요한 방해로 곤경에 처하게 된 특수부의 에이스 최철기 형사(황정민)가 나온다. 상황을 돌파해보려던 최 형사는 그러나 결국 노골적으로 자신을 겁박해 들어오는 주양 검사(류승범)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의 앞에서 팬티만 입고 무릎을 조아리며 사죄한다.

논리적으로 상황을 들추고 인과관계를 따져 묻기 보다는 그저 상황을 봉합하는데 급급해 굴복하던 바로 그 장면이다. 최 형사가 옷을 홀딱 벗었던 것은 권력의 위계를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며, 절대 복종할 것임을 웅변하는 퍼포먼스였다. 대단히 소아적인 이 행위에 그러나 주양 검사는 매우 흡족해하며 최 형사에 대한 압박을 거둬준다고 약속했다. 그 장면이야말로 권력의 지배란 무엇이고, 세상이 어떤 질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인지를 신랄하게 잡아챈‘부당거래’의 정수였다.

그 영화의 결론은 모두가 아는 대로이다. 최 형사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고 동영상이 유출되 위기에 몰렸던 주 검사는 그러나 장인과 덕담을 나누며 결코 몰락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서울 시내의 전경 훑으며 ‘1등 신문’의 로고를 기어이 노출시키고 만다. 이 부당한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단히 폭발적인 은유였다. 느닷없이 ‘창조경제’를 응원하고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CJ를 보며, 지금 그 부당한 세계에 갇혀 ‘부당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 CJ E&M이 자사 PP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스테이션 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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