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배우들이 한국을 찾는 빈도가 다른 해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윌 스미스 부자의 방한이나 꽃중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방한에 이어 ‘빵오빠’ 브래드 피트가 얼마 전에 내한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한국 방문 빈도가 느는 이유는 단 하나다.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브래드 피트가 방한한 이유 역시 본인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월드워Z>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월드워Z>는 미국 필라델피아만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이스라엘, 그리고 맨 처음에는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본 레거시>엔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토탈 리콜>은 한글로 된 ‘이십오’ 혹은 ‘리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영화에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나 방한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증가 추세에 있다는 건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 산업계에서 한국 시장의 비중이 커졌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제리가 방문하는 한국 땅은 서울이 아닌 평택이다. 평택에 미군 기지가 있어서다. 이곳에서 탈영한 헌병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를 진찰하던 군의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헌병에게 물려 감염자가 된다는 설정 가운데서 평택 미군 기지가 등장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의 주적으로 등장하던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미국에 대적하는 러시아와 탈레반의 계보를 잇는 요즘의 차세대 주자는 북한이다.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 북한 요원에게 백악관이 접수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처럼 <월드워Z>에도 북한이 등장한다.

<월드워Z>에서 묘사하는 북한은 남한과는 사정이 다르다. 영화가 남한을 묘사하는 장면이 최초 감염자에 대한 상황적 묘사라면, 북한에 대한 묘사는 좀비 바이러스보다도 무서운 것이 북한의 전체주의라는 측면으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북한이 좀비 바이러스의 청정 국가가 된 이유에 대해 북한이 24시간 안에 모든 사람들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려서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설사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이빨이 없는 좀비는 정상인을 감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좀비보다 더욱 무서운 건 북한 인민의 이빨을 하루 만에 모조리 없애버리는 가공할 전체주의였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보자. <월드워Z>에서 한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마냥 반길 일은 아닌 듯하다. 주인공인 제리(브래드 피트 분)가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제일 먼저 찾는 외국이 한국이다.

만일 한국에서 바이러스가 만연하지 않았더라면 제리가 한국을 찾는 일은 없었을 텐데,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 가운데서 중국이나 일본, 대만이 아닌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하는 건 많은 외국인 관객에게 한국이 좀비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듯한 인상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이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으로 나왔다고 해서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한국을 어떻게 묘사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좀비 바이러스 조사를 위해 찾아간 맨 처음 국가가 한국이라는 <월드워Z>의 설정은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한 <폴링 다운>에서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비하하는 방식으로 묘사한 연출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한국 관객이 <월드워Z> 가운데서 한국이 등장한다고 마냥 반길 일은 아닐 듯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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