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크고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프로그램 중 하나로 <SBS스페셜>을 꼽을 수 있다. 매주 일요일 밤 방영되는 <SBS스페셜>은 올 초부터 야심차게 준비한 시리즈물과 개별 편을 방영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학교폭력의 실상을 드러내 화제를 모았던 ‘학교의 눈물’, 간헐적 단식과 1일 1식 열풍을 몰고 온 ‘끼니 반란’, 대화가 단절된 이 시대의 가족상을 보여준 ‘무언 가족’, ‘왕’인 고객 앞에서 모욕을 받아내는 쓰레기통 역할까지 수행하는 감정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가면 뒤의 눈물’… 모두 <SBS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것들이다.
<SBS스페셜>은 열 명의 PD들이 돌아가며 개별 편을 제작하고 있다. 그만큼 문제의식도 프로그램의 개성도 각각 다른 양상을 띠지만, ‘세상을 향해 화두를 던진다’는 목표는 같다. 하지만 매주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미디어스는 13일 SBS 사옥 부근 카페에서 <SBS스페셜>의 기획을 맡고 있는 박기홍 시사다큐팀장을 만나, 아이템 선정 방법을 비롯한 제작 과정 전반과 <SBS스페셜>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들어 보았다.
‘다양성 존중’ 위해 ‘지나친 간섭’ 안 하려고 노력
박기홍 시사다큐팀장은 <SBS스페셜>, <그것이 알고 싶다>, <일요특선 다큐멘터리> 등 SBS의 정규 다큐멘터리와 대기획,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출자들의 기획을 지원하고 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SBS의 경우 타사에 비해 다큐멘터리의 숫자가 많지 않지만, 시청자들에게 품질 좋은 다큐멘터리를 선사해야 한다는 마음에 언제나 조심스럽고 긴장이 된다”
▲ 박기홍 SBS 시사다큐팀장
시사 다큐멘터리 전반을 담당하다 보니 야근은 예삿일이 됐다. 각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취재가 밤까지 이어지면, 상황을 점검하고 제작진에 도움말을 주는 박기홍 팀장의 퇴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기자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취재진 이따금 걸려오는 취재진의 연락을 받느라 바빴다. ‘일정이 이렇게 빽빽한데 도대체 언제 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번 주는 토요일에 쉬기로 했다”며 웃었다.
<SBS스페셜>은 보통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3~4개월이 걸린다. 상황에 따라서 6개월, 1~2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박기홍 팀장은 이 과정에서 아이템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본래 기획의도를 얼마나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렇듯 <SBS스페셜>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으면서도 박기홍 팀장은 ‘지나친 간섭은 경계한다’고 밝혔다. 왜일까.
“<SBS스페셜>은 SBS 교양국에서 오랫동안 연륜을 쌓아 온 PD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중요한 줄기는 서로 협의하나 주제 확정 이후에는 세부적인 측면까지 협의하지는 않는다. 담당 PD와 작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팀장이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아마 모든 다큐멘터리가 비슷비슷해질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이 <SBS스페셜>에 기대하는 ‘다양성’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박기홍 팀장은 PD와 작가들에게 제작의 공을 돌렸다. “시사 다큐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작도, 끝도 같이 하기 때문에 연출자와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제작 과정에서 PD와 작가가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프로그램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훌륭한 작가로부터 새내기 PD들이 배우기도 하고, 훌륭한 PD로부터 새내기 작가들이 배우기도 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 선정의 비밀
<SBS스페셜>은 올해만 해도 많은 화제작을 낳았다. ‘학교의 눈물’은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에 불씨를 지폈고, ‘끼니 반란’에서 선보인 간헐적 단식과 1일 1식 개념은 출판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리더의 조건’에서 꿈의 직장으로 소개된 한 IT 업체는 방영 이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SBS스페셜>의 아이템 선정 과정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 SBS스페셜의 올해 방영작 중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학교의 눈물'과 '끼니 반란' 편 (SBS스페셜 캡처)
“다큐멘터리에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지만, 막상 제작하려고 하면 입맛에 꼭 맞는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나는 좋은데 시청자들은 많이 안 볼 것 같을 때도 있고, 어렵게 아이템을 정했는데 알고 보니 타 프로그램에서 이미 방영된 경우도 있다. 또 방송날짜가 잡혔는데 그 안에 도저히 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마주한다. 기획단계는 그만큼 어렵다”
“항상 아이템 선정에 대해 고민한다”는 박기홍 팀장이 밝힌 본인만의 목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다. 방영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다큐를 만든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시청자들에게 ‘할 말은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즉,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청자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원칙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다소 시행착오는 있더라도 결국 좋은 프로그램으로 정착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5백만명이 보고 있다”
트렌디한 소재를 잘 발굴해 시청자들의 흥미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SBS스페셜>의 강점으로 꼽힌다.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박기홍 팀장은 “동료 PD들에게 늘 말한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5백만명이 보고 있다’고. 개별 프로그램의 완성도만큼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연출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폭넓게 전해지려면 시청자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면 뒷심이 약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기승전결에서 ‘결’ 부분이 미흡하다는 이야기다. 박기홍 팀장은 결말 부분은 시청자의 몫일 수 있다는 답을 내놨다. “‘뒷심이 약하다’는 평가는 사람에 따라 ‘여운이 길다’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기승전결’이 다 갖춰지면 좋겠지만 ‘기승전’으로 끝나도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결’은 때에 따라 시청자의 몫일 수 있다”
지상파 다큐멘터리 다시 살아나 서로 좋은 자극 주길
SBS에는 <SBS스페셜>외에도 <현장21>,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시사 다큐멘터리가 있다. <현장21>은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이라는 특징이, 미스터리 다큐로 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회 고발 성격이 있어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SBS스페셜>은 어떻게 차별화를 꾀하고 있을까.
“<현장21>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 다큐멘터리 영역에 있지만 <SBS스페셜>은 사실 정통 다큐멘터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래서 소재 선택의 폭이 넓고, 형식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SBS스페셜>의 역할은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실험하고, 더 다양한 화두를 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방영됐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편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박기홍 팀장은 지난해 말에 방영됐던 ‘최후의 제국’을 꼽았다. “총 4부작으로 방영된 프로그램인데 ‘고장난 자본주의’의 모습을 담아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해 보게 하는 프로그램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올해 방영분 중에서는 “PD 개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돼 프로그램이 빛이 발한 경우”라며 ‘학교의 눈물’, ‘끼니 반란’을 추천했다.
SBS는 지난해 무거운 질문을 던졌던 ‘최후의 제국’에 이어 올해에도 창사특집 다큐멘터리로 ‘최후의 권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박기홍 PD는 “1%를 위한 권력이 아니라 99%를 위한 권력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라며 “깊고 다양한 취재가 이루어지고 있어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말미,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지상파 3사 다큐멘터리의 영향력 부활’이었다.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서 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MBC <다큐스페셜>, KBS의 4대 스페셜(현재는 <KBS파노라마>) 같이 과거 부흥했던 다큐멘터리들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서로 자극도 받고 ‘저런 것도 아이템이 되네?’, ‘저런 연출 기법도 쓸 만하겠네’ 등 잘된 점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박기홍 PD는 1992년 SBS에 입사해 <그것이 알고 싶다>, <SBS스페셜> 등 시사 다큐멘터리의 연출을 맡아 왔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SBS스페셜> '나는 가요 - 도쿄 제2학교의 여름'(2005년 9월 11일 방영)이 꼽힌다. 방송 사상 최초로 일본 내 조선 학교를 배경으로 해 통일과 교육권에 대해 이야기한 이 작품은 제11회 통일언론상, 제10회 올해의 좋은 TV프로그램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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