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인 신경민 최고위원(왼쪽 세번째)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특위-법사위원단 국정원 검찰수사결과 발표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확인된 사실 하나, 국정원 직원이 업무의 일환으로 특정한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덧글을 달았다. 확인된 사실 둘, 야당이 대선과정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했을 때 경찰 측은 사실을 은폐하는 거짓수사를 했다. 전자는 경찰이, 후자는 검찰이 확인해준 사실이다. 여기엔 천안함 사건이나 광우병 논란을 둘러싼 복잡한 진실공방이나 과학담론도 없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이른바 ‘역공’을 취한다. "민주당이 국정원을 선거에 이용하는 국기문란 행위"를 했으며 전 국정원 간부에게 자리를 약속하는 ‘매관매직’을 했단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새누리당의 주장이 옳다고 치자. 그럴 경우 민주당의 행위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 외에도,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민주당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불만이 있다. 국정원 사건으로 정권을 빼앗겼다고 믿는 안이한 인식에 대해서다.
보수정권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선거를 치렀다는 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점이 윤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규탄되어야 하며 시정되어야 할 일이라 하더라도, 대선 이전에도 어느 정도 예측된 바였다. 상수는 아니라 해도 염두에 두고 대비했어야 했다.
국정원 사건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말이 맞다면, 이는 민주당이 다른 방법으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 대선의 맥락을 보건대, 상황이 그렇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보수정권이 국가권력을 중립화하지 않고 사유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권교체를 절박하게 열망하고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고, 그 때문에 패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국정원 몇 개 팀이 수십개 게시판에서 ‘일베’질을 했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 때문에 대선을 졌겠는가? 문제제기에 대한 수사를 경찰이 은폐한 것이 분통이 터지겠지만, 그렇다면 경찰이 민주당 편을 들어주기를 바랐는가? 민주당은 다른 이슈에서 역량을 보여 이 선거를 이기고 국정원과 검찰들을 개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민주당은 지금보다 국가권력이 훨씬 노골적으로 여당 편을 들었을 1997년의 선거에서만큼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물론 1997년의 정권교체는 정말로 여러 개의 우연적 변수 때문에 가능했지만, 2012년의 정권교체엔 그 정도의 행운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민주당은 최선을 다했는가?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한 번 제대로 안 해보고 여론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그에 입각하여 선거를 치른 문제가 없는가? 그러한 민주당의 ‘무능’을 ‘국정원 동원한 불법선거’라는 프레임 속에 감추려는 의도는 없는가?
▲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특위-법사위원단 국정원 검찰수사결과 발표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진 의원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증거인멸을 하고 수사축소, 은폐, 불법적 중간결과 발표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원인이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며 "경찰 지휘라인이 혐의사실 확인했음에도 아무 혐의 적용않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뉴스1)
그러나 민주당의 무능에 대한 비판은 정치평론가나 그 지지자가 취할 수 있는 것일 뿐 새누리당이 가져다 쓸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이 사안의 엄중함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새누리당이 집권하면서 한 일이 무엇인가? 총리실은 민간인을 사찰하고, 교장 교감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출세를 위해 새누리당에 후원금 내는 것엔 눈감으면서 공무원과 교사가 진보정당에 당비를 내는 것을 적발하고, 코드가 맞지 않는 시간강사나 연구원이나 방송인 등을 일터에서 내쫓기 위해 노력했다. 국정원이 5년 내내 ‘일베’질을 하다가 선거에도 개입했고 그 사실이 고발당하자 경찰이 사실을 은폐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들은 정권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세상, 1997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1971년 김대중을 상대했던 박정희의 마지막 직선제 대선에서처럼 선거에 국가 예산의 10%를 써서라도 여당의 승리를 지키는 것을 국가안보라고 믿는다.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을 보라. 그게 어떻게 봐서 ‘대북심리전’인가? 차라리 ‘대남심리전’이나 ‘대민심리전’이란 표현을 써야 할 게다. 여당을 편들어서 문제가 아니라, 야당 후보들을 비방해서가 아니라,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친북세력이라 믿는 어떤 협소하고 강박적인 정치성향을 연기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구별조차 못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도 완전히 깨끗하지는 않았겠으나, 이건 정말이지 정도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문제제기에 ‘역공’까지 취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 아닌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검찰이나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해주지 않으면 이 사건을 제대로 캐낼 역량이 없다. 그런 민주당이 장님 코끼리 더듬듯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증거 내놔’로 일관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국가 권력이 모조리 작당하여 여당을 편들고 있는데 야당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런 경우 민주당에게 남아 있는 무기는 ‘한때 정권교체를 해봤던 경험, 또 다시 정권교체를 할 수도 있는 가능성’ 밖에 없다. ‘매관매직’이란 것의 맥락이 그런 것이다. 내부고발을 그냥 받을 수가 없으니 회유의 수단으로 정권교체 이후의 자리를 약속한 것일 게다. 실제로 그랬다 한들 ‘고육지책’에 해당할 텐데, 이걸 두고 ‘매관매직’이니 ‘국기문란’이니 하는 말로 비난하면 어쩌잔 말인가?
새누리당은 행정부와 구별되는 입법부의 일원이다. 제아무리 집권여당이라도 행정부 견제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잊으면 안 된다. 아니면 그들은 대체 자신을 뭐라 생각하는가? 일당독재 방식으로 국가를 지도하는 공산당, 혹은 조선노동당이라 생가하는가?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서기장이었나?
국가 권력이 대선과정에서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미 검경에 의해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충분히 그렇다. 마땅히 새누리당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말고 검찰에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며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할 경우 이에도 협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다음 대선에도 이런 식으로 하겠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허탈하겠지만 민주당도 차제에 더 심도 깊은 문제의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권을 잡았을 경우, 대통령이 권력을 놓아버리는 것을 개혁이나 탈권위주의라 치장하지 말고, 국가권력이 특정 당파를 지지하는 정략적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자기들끼리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주정부 십 년 동안 국가권력의 중립화를 위해 취했던 노력들,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대못’들을 그들이 너무 쉽게 뽑아내 버렸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그런 부분까지 고민해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수권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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