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에서 원자력까지. 애매하고 모호하다고. 그렇다면, 벤처 1세대 재기 프로그램에서부터 방송 프로그램 투자 유치 설명회까지라면 어떤가. 더 광활하기만 할 뿐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맞다. 그게 바로 지금 미래창조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가 관장하고 있는 업무 영역과 행정 범위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한 부처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들이 맞는 것인지 당최 이 일들이 한 부처에서 관장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 정도다.

미래부의 난맥상 그대로 보여주는 미래부 보도자료 메일

18일 아침 미래부는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를 발송하며, 4개의 자료를 첨부했다. ‘벤처 1세대 활용 및 재기 프로그램 추진 계획’, ‘’13년 제작지원 방송프로그램 투자유치 설명회 개최‘의 건, ’IAEA 안전조치 담당 사무차장 원자력硏 방문‘ 알림 그리고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 공청회 개최‘의 건이었다.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이 보도자료들은 그러나 지금 미래부가 마주하고 있는 어떤 난맥상들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벤처 1세대 관련 건은 산업 담당 기자들이 챙기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방송프로그램 투자 유치 설명회의 경우 기존 방송통신위원회를 담당하던 기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IAEA건은 또 아예 계열이 다르고, 기초연구진흥종합계획 역시 별도의 과학 담당 기자들에게 가야 할 자료이다. 얼핏 나눠도 4가지가 모두 다른 영역의 문제인데, 이 통념과는 상관없이 미래부는 이것들을 같이 처리하고 있다. 이걸 굳이 ‘창조적’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그냥 ‘잡탕’이라고 보는게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진흥하겠다며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부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가치를 간단히 ‘창조’라는 단어 안에 우겨 넣을 것이 애당초 문제였는지, 아직 시너지보다는 업무적 난삽함이 그리고 인과관계로 맺어지지 않는 행정 영역 중첩의 억지가 더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이는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현재, 미래부가 마주하고 있는 쟁점 현안들이 부처 간 업무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힘겨루기이거나 혹은 업무 조정이 원만히 되지 않아 표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며칠 사이 미래부를 둘러싼 쟁점들은 미래부 내부의 복잡함이 그대로 외부로 표출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부는 현재 산업부와 불편한 관계이고, 방통위와 호시탐탐 영역 다툼을 벌일 기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안행부와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관가의 사람들은 미래부의 ‘완장’이 언제까지 갈지 지켜보잔 냉소를 보내고 있다.

▲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뉴스1

“미래부는 실력도 없으면서 내줄 수 없는 것을 내달라는 불청객”

미래부는 현재 ICT특별법을 놓고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다투고 있다. 최문기 장관은 “문화와 과학기술 그리고 ICT 기술을 융합하는 창조경제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꽂 피우겠다”고 말했었는데,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미래부는 ICT연구개발을 총괄하는 ‘정보통신기술진흥원’을 설립해야 한단 입장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산업부는 자신들이 관할하고 있는 부서와 체계에서도 충분히 해당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미래부가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말한다. 내심에는 미래부의 비대화를 초장에 견제하겠단 어깃장도 보인다. 이에 미래부는 최대한 조율해 6월 국회에서 ICT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단 입장이지만, 아직 부처 간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정이 준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조직과 예산의 문제이다. 미래부의 계획대로 정보통신기술진흥원이 설립될 경우 산업부는 ICT 관련 예산과 조직을 미래부로 이관해야 한다. 미래부의 설립 취지와 박근혜 정부의 아젠다를 감안할 때, 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는 미래부의 주장대로 되는 것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행정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문제이다. 미래부가 부처 간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현실적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구체적 비전과 실행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하지만 미래부는 이런 돌파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오로지 ‘컨트롤 타워’가 되겠다는 선무당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모양새다.

전체 ICT R&D 예산의 30% 수준을 운용하는 산업부 입장에서 불과 2000억 수준의 ICT R&D 예산을 가진 미래부가 ‘컨트롤 타워’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라고 보고 있다. ICT 예산을 국가 전체 예산의 약 0.5%에 불과한 1조 8천억원 규모 밖에 만들지 못한 실력의 미래부가 ‘컨트롤타워’를 운운하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조롱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산업부 관계자는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정무직이나 부처 고위 관계자들이야 어쩔 수 없이 ‘칸막이를 낮추자’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부의 변천과 상관없이 조직과 예산을 지켜야 하는 실무진 입장에선 미래부는 도저히 내줄 수 없는 것을 내달라 하는 ‘불청객’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는 형편이다.

업무영역 해석 조차 합의되지 않는 방통위와의 불안정한 동거

그나마 산업 관련 정책에 있어서의 미숙함이 아직 익숙치않은 점에서 발생하는 혼선이라고 한다면, 주요 방송 정책과 관련해 방통위와 맞서는 미래부의 모습은 이 부처의 성공 가능성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한다.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방송 정책을 둘러싼 미래부와 방통위의 불안정한 동거는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문제라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전망이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모두 케이블 업계 규제 완화와 관련된 정책을 포함해 보고했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SO를 자신들이 관장하는 것이니 규제 완화 대책 역시 자신들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SO의 허가와 재허가에 관해선 방통위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하니 그와 관련된 사안은 방통위의 업무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사전동의제’는 향후 미래부와 방통위의 불꽃 튀는 ‘혈전’을 예고하는 문제다. 사전 동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따라 주도력이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다. 타협적으로 만들어진 정부조직법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IPTV는 미래부 관할로 지상파 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은 방통위에 남겨두었다. 다만, SO의 허가와 재허가에 대해서는 미래부가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구하도록 했다. 다소 포괄적이고 맥락적으로 구성된 이 조항을 두고 미래부와 방통위가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이 14일 업무보고에서 확인된 셈이다.

케이블 규제 완화를 업무보고에 포함한 미래부는 기본적으로 SO의 허가·재허가를 결정할 때만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구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허가·재허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안들까지 협의해야 한단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규제 문제 역시 방통위의 주요한 업무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더라도 물론 규제에 관한 입장이 같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케이블 가입자 규제를 두고 미래부와 방통위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 지 의심된다는 점이다. 현행, 케이블 가입자 규제를 두고 미래부는 현재 이중 규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SO와 IPTV에 대한 가입자 규제를 동일하게 맞춰야 한단 입장이다. 이는 미래부 창설 이전의 방통위 입장이기도 했지만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생각이 다소 다른 것 같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이후 매출 규제 완화에 대해 “공정성이 우려된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이며 당분간 규제를 유지할 방침을 시사했다. 이를 두고 이 위원장이 ‘공정성’을 명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내심 'CJ를 견제'하려는 종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케이블 가입자 규제 완화는 SO의 문제이니 미래부가 결정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허가 사안과 연계된 문제이기도 하니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KT와 CJ 그리고 조중동을 비롯한 종편사 전부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해 미래부가 어떤 조정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뿐만 아니라 쟁점이 되고 있는 700MHz 주파수 대역을 놓고도 미래부는 ‘통신용’으로 써야한단 입장이고, 방통위는 아직 구체적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미래부에 호락호락 따를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분위기인데, 미래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 업무 협의 일정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부의 가장 핵심적인 ‘미션’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경제’가 무엇이냐를 두고 정부 출범 100여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정리해내지 못했다. 미래부의 난맥상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미래부는 업무를 장악할 실력도 아젠다를 주도해갈 능력도 이해관계를 조율할 추진력도 보여주지 못한 채 여전히 모호한 슬로건만 앞세우며 대통령의 의중만 붙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 사이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고, 핵심 법안의 입안에 실패하는 모습이며 업무 영역조차 제대로 확정짓지 못했다. 미래도 창조도 과학도 그냥 죄다 답답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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