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대 대선안내문 (중앙선관위)

민주주의의 축제

선거를 두고 민주주의의 축제라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를 겉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권자 모두의 의지에 의해 권력의 행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이 원하는 것의 분포를 아는 것은 우선이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적 절차가 작동되기 위한 첫 조건이며, 대중이 어떤 지향성을 품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민주주의의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화려한 상징이라는 점에서, 선거는 축제다.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선거를 축제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젊은시절 미국의 선거를 몇 번 지켜보면서 '이건 그냥 마쓰리(=축제)고, 아무리 해봐야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저 겉모습 이외에는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는, 화려한 상징만 남은 껍데기라는 의미에서도 선거는 축제가 되어버릴 수 있다.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선거라는 축제가 요구되는 이유는, 정치가 개인들, 구성원들 사이의 대립과 적대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 갈등은 늘 생겨난다. 인간이 이런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상, 민주주의에서 전체의 의사를 측정하기 위해 선거는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제도다.

▲ 2013년 AKB48 총선거 1위 사시하라 리노. (ネトスポ.com 화면 캡쳐)

아이돌 그룹의 선거

그러나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 나타난 것이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 의도하지 않던 영역으로 용도가 확장될 수 있다. 사람과 싸우기 위한 기술이었던 검술이나 격투술이 무도, 스포츠가 된 것처럼 말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토요일(6월8일),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의 5회째 '총선거'가 있었다. 그저 멤버들의 인기를 확인하고 끝나는 1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1위에서 16위까지는 '선발'로 다음 싱글 타이틀곡에 참여할 수 있으며, 각자 순위에 따른 혜택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높은 순위에 뽑혀야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고 아이돌로서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그러한 것처럼) 처음에는 인기와 장래성 등을 보고 기획사 측에서 '선발' 멤버를 정했지만, 2009년부터 팬들의 선호를 직접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총선거'다.

순위는 64위까지 발표되지만, 64위도 결코 쉽지 않다. 도쿄 아키하바라의 전용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AKB48을 비롯해 자매그룹인 SKE48, HKT48 등의 멤버들,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연구생까지 합하면 후보가 되는 넓은 의미의 '범AKB48 그룹'의 인원수는 200명을 가볍게 넘는다. 투표권은 총선거 전에 발매되는 싱글 음반에 동봉된다. 보통 1500엔 정도이며 투표권이 여러 장이라면 그만큼 여러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매해 '총선거철'에는 투표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싱글 음반을 수십 장, 수백 장씩 사재기하는 팬도 적지 않아, CD가 처치곤란으로 시장에 넘쳐나는 게 '선거철' 풍경이다.

지상파 방송이 생중계하며 높은 시청률을 얻는 이 축제는 AKB48을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자국의 걸 그룹만으로도 포화상태인 국내의 대중과 미디어가 그래도 이맘때쯤에는 ABK48에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총선거'가 갖는 위력 덕분이기도 하다.

▲ 이런 물건도 나온다. (AKB48총선거 공식가이드북2013)

취향이 출마하는 이유

위에서 선거를 두고 일종의 축제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를 겉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였다. 따라서 본래의 의미인 정치적 목적의 선거는 '축제적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KB48의 총선거는 정반대로, 아무런 필연적인 이유도 없으면서, 선거의 형식만을 축제에 가져왔다는 점에서 '선거적 축제'라고 부를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축제는 왜 하필 선거가 되었을까? 선거는 대립하는 구도를 전제한다. 선택, 후보 사이에 모순이 있고 적대가 있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이용하는 도구가 선거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의 인기에 그러한 대립이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인기라는 개념은 수동적인 것으로, 인기를 부여하는 주체인 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취향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것이 적대적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아이돌 가수는 기본적으로 소모성이 없는 '문화 상품'이다. 아무리 많이 좋아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도 다른 소비자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요컨대 총선거는 충분히 공존할 수 있는 복수의 취향을 대립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이벤트에 의해 취향 사이에는 인위적인 적대가 생겨난다.

따라서 왜 하필 선거인가라는 의문은, 취향이 대립되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 그런 이유 따위는 본래 없다. 누가 무엇을 좋아하든 말든,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결론이다. 하지만 입장을 ‘문화상품’의 생산자 쪽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컨대 다양화, 세분화된 취향은 돈이 안 된다. 문화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쉽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조악한 비유지만, 중국집에서 음식을 자장면으로 통일시키면 빨리 나오는 원리와 비슷하다. 가수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클지 몰라도, 일단 인기를 얻어 자리잡은 아이돌은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오랜 기간 무한정 상품화해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반대로 여럿으로 퍼져있는 취향에 모두 맞춰서 상품화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 방법이다. 수십 수백 명을 균등하게 미디어에 노출시켜봤자,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그 중 아무도 팬의 뇌리에 남지 않을 것이다. 소수를 전면에 세우고 밀어주면서 나머지를 '병풍'으로 세우는 전략이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셈이다.

따라서 취향은 본래 대립적이지 않고 공존 가능한 것이지만, 산업의 논리가 거기에 반영될 경우 경쟁을 요구 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KB48의 경우, 총선거 제도는 뭔가 거창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외관을 보이면서도, 각각의 취향이 산업적으로 가지는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이다. 투표권이 1인1표가 아닌 상품구매력에 따라 주어진다는 점은, 더더욱 이 취지에 부합한다. 이 맥락에서 상품을 두 배 구입하는 사람의 취향은 정확히 두 배의 가치를 지니는 취향으로 측정된다.

▲ 도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AKB48 전용극장. 관광가이드북에도 실려있다.

그래도 취향은 평등하다

앞에서 선거가 축제인 이유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를 화려하게 드러내는 상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AKB48의 축제가 선거의 형태를 띠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것이 '선거적 축제'가 된 이유는, 그 축제가 여러 취향을 대립시키고 승패우열을 가리는 과정을 전제하는 문화산업의 필연적인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을 들이고, 매스미디어에 의존하는 현대의 문화산업은 이미 취향을 끊임없이 '선출'하고 있다. 수지가 맞을 만한 콘텐츠, 장르, 캐릭터, 외모 등등. 그리고 상품성이 적은 소수의 취향은 산업의 관점에서 탈락된다. 즉 정치적인 목적의 선거가 민주주의의 민낯이라면, AKB48의 '총선거'는 아이돌 산업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노골적인 민낯인 것이다.

사실 AKB48도 초창기에는 그룹 이름처럼 '아키하바라(AKihaBara)'의 오타쿠(물론 이는 아키하바라의 전통적 애니메이션/게임 오타쿠와 완전히 겹치지 않는 집단이다)를 공략대상으로 출발했다. 그룹 자체가 비주류/배제된 취향에 기반해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룹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올라가고 멤버의 수도 수백 명이 단위가 되어가면서, 그 스스로가 비주류/배제된 취향을 '정리정돈'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한 정리정돈의 필요성이, 이토록 노골적인 취향의 상품가치 측정 이벤트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언론에서는 AKB48 총선거를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운운에 연결시켜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필자는 모르겠으나 총선거의 상업적 효과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두 마디는 언급하고 싶다. '센터'가 될 수 있는 것은 전체 1위 한 명, 그룹의 얼굴이자 상징인 '카미7'은 상위 7명, 타이틀 곡에 목소리라도 한마디 실을 수 있는 1군격인 '선발'은 상위 16명, 총선거에서 그나마 결과라도 발표되는 것은 64명이다. 이들을 포함 총선거에서 후보가 되는 '범 AKB48 그룹'의 인원수는 앞서 말했다시피 200명을 가뿐히 넘는다. 극소수의 인기멤버 이외에는 나머지는 거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병풍'이 되는 구조다. 취향이 선거에 오른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이 바닥의 유명한 격언으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는 말이 있다. AKB48의 총선거는, 산업의 논리가 취향의 완전한 존중을 늘 방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의 취향, 취미가 많은 부분에서 문화산업에 의존하지만, 동시에 그것과 늘 긴장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문화산업적 관점에서 당신의 취향이 버림받았다는 것이, 결코 당신의 취향이 '비천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문화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취향에는 귀천은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선출'될 뿐이다.

▲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
'잉여'나 '덕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감격스러운 일이다. 주류 언론에게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잉여/덕후의 정치적 가능성,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만 쏠려있을 뿐, 정작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위문화(sub-culture)에는 무관심하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비롯해 하위문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의 위치를 넘보고 있지만,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문화에도 왕후장상에 씨는 따로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연재에서는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나 유의미한 향유집단을 가지고 있는 하위문화 콘텐츠 등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편파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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