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이야말로 ‘인서울’의 첫 번째 승부처지”

동명의 일본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은 시작부터 발칙했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대신 현실을 직시했고, 낭만을 노래하기보다는 잔혹한 경쟁사회의 이면을 들췄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는 이 정글 같은 현실에 학교라고 예외일 순 없었다. 6학년을 잘 보내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하나 엄마(이아현 분)의 대사는 그래서 치맛바람이라기보다는 푸념에 가깝게 들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떤 참고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중학교 성적이 좌우된다는 광고가 버젓이 공중파 TV를 통해 방영되는 현실에서, 하나 엄마의 푸념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왕의 교실>은 분명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은 아니다. 입학 첫 날부터 아이들에게 쪽지시험을 실시하여 성적순대로 자리배치를 하고, 꼴찌 두 명에게 학급의 온갖 궂은일을 시키는 모습은 다소 과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학생의 질문대로 선생님이 대놓고 이렇게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과연 어떤 교육적 철학 아래 이뤄지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실 속 우리가 불합리한 구조와 현실에 빠르게 적응하듯, 드라마 속 6학년 3반 아이들 역시 독재교사 마여진(고현정 분)의 학급 운영 방식에 자신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불평등이란 것은 차별과 동시에 특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꼴찌를 하게 되면 ‘반장’을 맡아 온갖 궂은일을 해야 하지만, 또 반대로 1등을 하게 되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대형 사물함을 사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차별받긴 싫지만 특혜받긴 원하는 우리의 이중적 태도를 불과 일주일 만에 마여진 교사의 방식에 적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이 드라마 속 6학년 3반 교실은 마치 현실의 축소판으로 다가온다. 물론, 누구나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남을 밟고 일어선 1%의 소수에게 주어지는 말 그대로 ‘특권’이다. 99%가 차별에 저항하지 못할 때, 1%가 누리는 특혜의 달콤함은 더욱 짙어진다.

물론, 독재가 길어지면 반란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 반의 꼴찌 오동구(천보근 분)는 쪽지 시험에 참석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만의 저항을 택했고, 이 반의 일등 김서현(김새론 분)은 심하나(김향기 분)를 위해 선생님의 정한 원칙에 반기를 들었다. ‘사람보다 위에 있는 원칙은 없다’며 배가 아파 시험을 치를 수 없는 하나를 위해 마여진 교사에게 융통성을 발휘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대가를 수반하는 법. 김서현은 100점으로 1등을 차지했음에도 불구 ‘꼴찌 반장’을 맡아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김서현의 시험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마여진의 모습은 마치 ‘실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1%가 될 수 있다‘고 믿는 현실 속 우리들의 순진한 발상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차별과 특혜라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며, 그것마저도 결국은 그런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이 드라마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스로가 부조리한 사회의 권력자가 돼 아이들을 궁지에 내모는 마여진과 이에 굴하지 않고 대항하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장해 가는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교육과 행복이 무엇인지 전달하려는 게 기획의도다. 전형적인 아이들의 성장스토리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다소 불편하고 과장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인성교육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 교실을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냉혹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고,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때리고, 6학년 입학과 동시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는 장면들에서 보이듯, 지금 우리 초등학교 교실은 인성교육의 시작점이 아닌 학원 폭력과 입시 경쟁의 출발점일 뿐이다. <여왕의 교실> 속 6학년 3반 교실이, 그리고 마녀라 불리는 마여진 교사가, 언젠가는 드라마 속 설정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결국 <여왕의 교실>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갑자기 살이 찐 고현정의 외모나 그녀의 연기변신이 아닌, 6학년 3반 교실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이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일 게다. 그 생생한 현실묘사야말로 3년 만에 후덕해진 모습으로 안방극장에 돌아온 고현정의 비주얼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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