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꿈의 자동차는 전격 Z 작전에 나오는 키트였다. 주인공 아저씨가 손목시계에 대고 “나와라 키트.”하면 달려나오는 검정 자동차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시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는 키트가 아니라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 붕붕이었다. 나는 엄마가 있는데, 붕붕은 엄마가 없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동네 문방구 앞 조그만 오락기에 앉아서 동전도 넣지 않고, 붕붕이 움직이는 대로 조이스틱을 따라 움직이며 시간을 보냈다.

▲ 행사가 열리는 서울광장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출처-http://hope.jinbo.net, 정택용 작가)

H-20000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바로 꼬마자동차 붕붕이 떠올랐다. 4년 동안 스무 명이 넘는 동료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며 거리에서 싸운 해고자들의 얼굴을 봤을 때 내가 느낌 감정이 슬픔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민 2만 명이 부품 2만 개를 모으고, 해고자들이 그 부품으로 자동차를 만들어서 예술가들이 아름답게 꾸미는 H-20000 프로젝트의 과정을 상상해보면서 꼬마자동차 붕붕이 엄마를 찾아 가는 과정을 떠올렸다. 많은 시련에 부딪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으로 그 시련들을 이겨나가리라 생각했다.

6월 7일 서울 광장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저 아름다운 자동차가 우리 앞에 나온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처음 제안된 아이디어는 2만 개의 부품을 하나씩 모아서 넓은 공터에 펼쳐놓고 공개적으로 조립을 하는 거였다고 한다. 결국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완성된 차를 사서 그것을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4년 동안 공구 대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던 쌍용차 해고자들은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반대하기도 했다. 4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는데, 과연 조립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머리로 외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지만, 몸으로 배운 것은 잊을 수 없는 법. 온 몸의 근육이 감각을 찾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 지난 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노동자 H-2000 프로젝트 모터쇼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완성차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출처- http://hope.jinbo.net, 정택용 작가)

완성된 차를 꾸미는 일은 판화가 이윤엽이 맡았다. 유독 굴곡이 심한 코란도 자체인지라 이윤엽 작가는 다른 코란도를 빌려서 실제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윤엽 작가의 화려한 색감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고 예쁘게 꾸미는 동안 희망지킴이들은 자동차 부품비를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날마다 대한문에서 모금을 하고, H-20000 작업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신이 만드는 기적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한 일들이겠지만, 인간이 만든 이 기적은 우리 모두의 연대와 노력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H-20000 프로젝트 모터쇼는 이 기적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변영주 감독의 사회로 다채로운 발언, 공연, 영상들이 펼쳐졌고, 서울 광장 잔디밭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만든 기적을 만끽했다. 희망지킴이 박래군은 이 기적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해고자들이야 말로 길바닥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라 공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했다. 실제로 공구를 손에 쥐고 자동차를 조립하는 해고자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고, 그 표정이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를 매우 강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영상집단 자코가 만든 조립 과정 전체 영상은 그 해고자들의 표정과 날렵한 몸동작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줬다.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자동차의 최종 주인으로 선정된 노래패 '꽃다지'(출처- http://hope.jinbo.net, 정택용 작가)

이날의 하이라이트, 자동차 전달식이었다. 자동차를 받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행사 시작 전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자동차를 신청한 단체나 개인은 모두 17곳이었는데, 하나 같이 자동차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연들이었다고 한다. 박재동 선정위원장을 비롯한 선정위원들은 모두에게 자동차를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꽃다지를 최종 선정했다. 22년째 노동현장을 찾아가면서 노래로 연대한다는 점, 꽃다지의 재정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에서 MR이 아닌 직접 연주를 하고 싶다고 한 점, 비정규직 투쟁에 소극적인 노조가 차를 기증하겠다고 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H-20000 프로젝트는 6월 7일 행사로 끝이 났다. 자동차의 주인도 정해졌다. 하지만, 시민과 해고노동자가 함께 만든 희망은 이제 시작이다. 쌍용차가 정리해고 당시 감사조서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쌍용차 사측이 정리해고를 단행하는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던 것이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다. 6월 7일 행사에서 문기주 쌍용차 정비지부장의 말처럼 국회가 국정조사를 안 한다면 시민들이 직접 국정조사라도 해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쌍용차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우리는 H-20000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잠시 동안 볼 수 있었던 해고노동자들의 활짝 핀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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