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아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과 언론이 나서서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을 평가 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일부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등을 들어 그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비판받을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로부터 비교적 우호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민주당은 인사문제부터 남북관계에 이르기까지 잘한 게 하나도 없는, '낙제점 정부'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사실 출범 100일을 맞이한 시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역대 정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박한 평가'에는 100일이라는 시점이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 애매하다는 측면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100일이라는 시점의 애매모호함

새 정부가 출범하면 보통 이전 정부로부터 업무를 넘겨받고 새 정부 구성의 밑그림을 확정하며 각 부처의 실무력을 장악하는 데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인수위 활동을 고려하더라도 이 작업이 완료되는 데에는 예정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 출범 100일이라는 시점에서 새 정부는 실제로 추진하려 한 것들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주변 정리만 하고 있는 상황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과정을 진행하는 중에 뭔가 새로운 국정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추진력을 발휘하는 경우에도 정부 출범 100일이라는 시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들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했더라도 효과가 나타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 독이 된다. 정부를 지지하는 측으로부터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불평을 듣기 일쑤이며 정부를 반대하는 측으로부터는 새로운 정책 방향에 대한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어느 측으로부터도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적 상황일 수도 있다.

물론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국회와의 갈등, 윤창중 스캔들, 남북관계 파탄 등의 문제에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 출범 100일이라는 시점 자체가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실기'만을 부각시키는 상황에 주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가진 박근혜 정부 100일 평가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장 의장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 100일의 총평은 '공갈빵'"이라고 밝혔다. (뉴스1)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부 출범 100일의 시점에서 불통, 인사 사고, 남북관계 파탄 등의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의식들이 가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윤창중’으로 대표되는 어떤 돌발적인 사고의 연속들,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북한의 낭떠러지 외교 전술 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 과연 박근혜 정부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일까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100일만에 단언하기 어려운 박근혜 정부

이를 고찰해보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키워드들을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만한 것들에 특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공약가계부'이다. 공약가계부는 '증세를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재원을 마련해 공약을 지키겠다'는 취지를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재정계획이라는 점에서 선거 기간 동안의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사문제도 그렇다. 비록 검증과정에서 낙마한 인사들이 많긴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인물을 요직에 앉히려고 했느냐의 문제는 이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있는 문제다. 이를테면 윤창중 대변인 같은 문제는 해서는 안 되는 인사가 확실했다. 하지만 낙마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당시 후보자와 같은 경우는 청와대와 보수진영 일각에서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종종 제기되기도 한다. 부적절한 처신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용병술에 대해서는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 언론에 의해 대북 비둘기파로 분류된 바 있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 (뉴스1)

인사문제를 좀 더 파고들면 박근혜 정부가 가진 속성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비둘기파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비하자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그야말로 완고한 대북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한 정부에서 이렇게 상반된 성향의 인사들이 각 부처의 책임자로 배치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각 부처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부가 들어선 시기라고 해도 통일부의 역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기 통일부는 존치논란에 휩싸였다가 존재감이 전혀 없는 부처로 방치되고 말았지만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최소한 그 업무에 맞는 장관을 임명함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시기 대통령의 측근 중 하나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기관의 기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원세훈 원장은 밥을 혼자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으로 평가받는 대북강경파를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앉힌 것은 앞서의 사례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현실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

▲ 전임 정부에 그것에 비하면 위세가 다소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신제윤 금융위원장. (뉴스1)
박근혜 정부의 이런 예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상주의에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현실주의다. 구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가 아니라 상황을 관리하고 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정부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주의일 것이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외환위기를 보며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국민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즉,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해보자면 현실주의를 통해 국가주의를 구현하는 체제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성향은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가 국가 발전 전략에 있어서 다소 모험적이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참여정부는 '동북아금융허브론'과 '한미FTA'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과 '메가뱅크론'을 통해 각기 모험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는 (여전히 그 내용이 애매하지만) 오히려 고부가가치제조업, 지식산업, 서비스업 등 실물경제를 중심으로 한 다소 안정적인 모델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구상은 아마도 외부의 작은 충격에 직접적인 위기를 맞게 되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고려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즉, 창조경제는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에 고통 받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포함하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며 이는 야심차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출하려고 했던 과거 정부에 비하면 차라리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하려했는지를 따져야

박근혜 정부는 어쨌든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표면적인 것이 아닌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다면 국민들은 정권이 실제로 제시하는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인사에 실패하지 않고, 공약을 더욱 잘 지키며, 우연히도 북한이 핵 실험을 하지 않는 시기에 집권할 수 있는 대통령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현실주의의 알리바이가 될 것이다. 정치는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고 국민들은 고통을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거나 정치에 대해 냉소하며 그저 좌절할 것이다. 국민들의 대다수는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들이 보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며 오로지 돌발적인 '사고'에 대해서만 호들갑을 떠는 언론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근본적 통찰도 제공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에 대한 평가로서 필요한 것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무엇에서 실수했느냐가 아닌 실제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여기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엘리트주의에 기반 한 현실주의적 통치론인지, 갈등에 기반 한 대중적 민주주의의 구현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특히 언론이 중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더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