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사이트를 찾아 봤지요. 정말 너무하더군요. 데자뷰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재특회’가 만들어지기 직전의 일본 인터넷 게시판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씨는 ‘너무하다’는 말에 특히 힘을 주었다. 일본 ‘넷우익’의 첨병 노릇을 하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과 한국의 ‘일베’는 약 10년 정도의 격차를 두고 각각 등장했다. 이들은 재일 조선인과 여성, 외국인, 장애인 등에 비해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며 약자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퍼붓는가 하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자신들만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무척 닮은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야스다 씨는 이들을 ‘반사회적’이고 ‘예외적’인 집단으로 규정해 정상성을 박탈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그는 ‘일베’와 ‘넷우익’ 모두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빚어낸 결과물이며, 극우의 준동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야스다 씨는 오래 전부터 일본 사회에서 암약하기 시작한 ‘넷우익’을 추적·탐구해 왔다. 저널리스트가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넷우익에 반대하는 각종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일본에서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쫓아서>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 일본의 '넷우익'을 십여 년 간 탐구해 온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씨(왼쪽)가 한국을 찾았다. 야스다 씨는 3일 오전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성공회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초청 특강 ‘인터넷과 행동주의적 우익의 출현’에 참석해 “넷우익은 결코 특수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을 만든 것은 일본 사회”라고 전했다.ⓒ미디어스

“사회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재특회’ 나타난다”

야스다 씨는 3일 오전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와 동아시아연구소 주최로 성공회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초청 특강 ‘인터넷과 행동주의적 우익의 출현’에 참석해 “많은 시민들과 함께 앞으로도 재특회에 대해 결연한 태도로 마주하려 한다”며 “동시에 재특회를 만들어 낸 일본 사회의 불관용도 충분히 의식해야 한다”고 전했다.

야스다 씨는 “언론은 (넷우익 창궐 당시) 그들을 무시하면서 ‘소수의 바보가 떠들 뿐’이라고, ‘어디까지나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다”며 “결과적으로 넷우익은 큰 세력이 되었고 이는 언론으로써 무척 후회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많은 일본인들의 속마음을 대변했고, 결코 ‘소수의 바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넷우익은 결코 특수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을 만든 것은 일본 사회’라는 사실을 자각하려 노력하면서, 야스다 씨는 넷우익과 꾸준히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재특회를 위시한 넷우익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왜 이런 운동에 참여하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야스다 씨는 “그들이 없어지면 건전한 일본 사회가 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며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재특회가 없어진다고 해도 제2, 제3의 재특회가 나타난다. 증오의 연쇄를 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분 캡쳐. 사쿠라이 마코토 재특회 회장은 일본의 인터넷 커뮤니티 '2CH'에서 한국, 북한, 중국, 재일 조선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급기야 2007년 재특회를 결성해 오프라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에 이르렀다. (SBS 화면캡처)

실제로 연간 1천만 엔에 다다르는 재특회 운영 자금이 소액의 개인 헌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재특회가 결코 소수의 일본인만을 대변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야스다 씨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재특회의 운영 기금 통장에는 매일 천 엔에서 수백 엔 가량의 소액이 입금된다. 가끔 십만 엔 정도가 한꺼번에 입금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결국 소액 지원을 하는 다수의 시민이 재특회의 활동을 지탱하는 셈이다.

야스다 씨는 재특회를 ‘진정한 풀뿌리 조직’이라 칭했다. 그는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돈으로 움직이는 운동 따위는 금방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다”며 “(재특회는) 일본 사회 그 자체라서 무섭다”고 우려했다.

“법적 규제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 함양”

일베의 5.18 비하 논란 이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 논의가 촉발되었듯, 일본도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혐오 발화를 법적으로 제재하자는 공부모임이 시작되었다”고 야스다 씨는 전했다.

그러나 야스다 씨는 “증오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법적 규제에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며 “현재 일본 정권하에서 가장 먼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저 자신일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혐오 발화와 표현의 자유’ 문제에 있어 야스다 씨의 화두는 ‘표현을 규제하는 권리를 권력에 주어도 되는가’이다.

야스다 씨는 “법적 제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인 죽여라’, ‘조선인 꺼져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제재해야 한다고 하나, 저는 ‘주일미군은 일본에서 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조선인은 꺼지라’고 하는 사람만 제재하고 ‘미군은 꺼지라’고 하는 저를 가만히 두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야스다 씨는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를 해야 한다는 논의 이전에 할 일이 있다”며 “시민의 힘으로 넷우익을 무너뜨리고, 재일조선인을 죽이라는 이들의 목을 조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어도 그런 폭언을 용납하지 않기 위한 시민운동은 앞으로 활발해질 것입니다. 일본에는 하시모토나 아베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넷우익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이 매주 함께 항의 시위를 합니다. 국가 권력이 나서기 전에 어떻게 시민의 힘으로 넷우익을 억누를 수 있을지 여러분이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 MBC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캡쳐. 야스다 씨는 "일본에는 하시모토나 아베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며 "넷우익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이 매주 함께 항의 시위를 한다"고 전했다.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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