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을 사퇴한 이남기 홍보수석비서관의 후임에 이정현 정무수석비서관을 임명했다는 소식이다. 이정현 정무수석의 후임으로는 김선동 현 정무비서관이 승진 임명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 3일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석이었던 청와대 홍보수석에 임명되었다. ⓒ뉴스1
이정현 신임 홍보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부터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며 사실상 박근혜 당시 의원의 대변인 역할을 도맡아왔다. 이정현 수석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는 박근혜 당시 후보 캠프의 공보단장을 맡았고 인수위에서는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지명되는 등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인물로 익히 알려져있다.

이정현 수석은 전남 곡성 출신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서구에 두 번 출마해 낙선한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19대 총선에서는 이 지역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39.7%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업무능력에 있어서도 이정현 수석은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대변인들과 소통이 잘 안 될 때 이정현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무수석이 사실상 공보업무 일부까지 커버했다는 이야기다.

당·청 관계, 유기적인 변화 기대

이것으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 맡게 되는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무수석은 업무의 특성상 의원 출신이 임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당·청 관계가 지금보다 유기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얼마 전 최경환 원내대표가 당·청 관계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 역시 이러한 변화의 맥락 안에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 달 31일 열린 당 워크숍에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정무수석, 조원동 경제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등을 앞에 두고 “청와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방침을 정하면 당은 따르라는 식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한구 원내대표 시절 정부조직법개정안을 둘러싼 협상 등에서 당·청 관계에 대한 불만이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을 반영한 발언으로도 보인다.

▲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또, 최경환 원내대표는 특임장관이나 정무장관의 부활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 역시 당·청 관계의 개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특임장관직의 부활과 관련해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야당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그것이 어렵다면 (대통령) 특보 등을 두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임장관이나 정무장관의 경우 전통적으로 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을 맡아 왔다.

최근 새누리당은 당정협의를 주도하고 정책을 조율할 6개 정책조정위원장을 새로 임명하기도 했다. 2일 새누리당은 최경환 원내대표 체제의 핵심 기구인 6개 정조위의 위원장으로 △제1정조위원장(법사·안행위)에 권성동 △제2정조위원장(외교통일·국방·정보위)에 조원진 △제3정조위원장(정무·기재·예결특위)에 나성린 △제4정조위원장(농림·산통·국토위)에 강석호 △제5정조위원장(보건복지·환노·여성위)에 김성태 △제6정조위원장(교문·미래위)에 김희정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는 원내사령탑이 교체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인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부처별 당정협의를 진행하는 정조위원장이 나중에 입각할 수 있도록 강력 추천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이 당정협의 등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인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보수석을 국회의원 출신인 이정현 수석이 맡게 된 것은 청와대 역시도 여당의 이러한 의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무수석이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의 협의를 주도하고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홍보수석이 공보의 수위를 조절하는 체제가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진주의료원 등 여권 내부의 혼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이러한 관계 설정은 오늘(3일) 시작된 임시국회에 있어서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이른 바 프랜차이즈법, FIU법,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민감한 법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여기에 진주의료원과 관련한 공공의료정상화 관련 국정조사와 국정원 선거개입 관련 공방 등도 예정돼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이러한 주요 이슈들을 다루는 데 일정 정도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시사평론가는 “경제민주화, 진주의료원 등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견이 제기되는 이슈”라며 “가만 놔두면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소속인 김세연 의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원내지도부에서는 12건의 법안을 중점추진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6월에 처리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실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면서 “최대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해야지 어떤 한두 개를 특정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최경환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 정책에 속도조절이나 우선순위 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밝힌 것과 상충되는 입장인 셈이다.

▲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등 관련 업계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뉴스1

진주의료원 문제 역시 새누리당 소속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다른 지자체 소속 도지사, 의원들 간의 신경전이 계속 이어져 왔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 3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홍준표 지사가 대표시절에 오세훈 시장에게 당과 협조도 안 되고 당의 이야기도 안 듣는다는 비판을 했는데, 본인도 그런 비판을 받아야 한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김문수 도지사 역시 경기도 공공의료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파주의료원 등의 예를 들며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파국을 만들어낸 홍준표 지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어느 때보다 노동 이슈에 강력한 야권도 고려해야

쌍용자동차, 통상임금 등 노동 관련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와 관련해 야권이 유례없이 강력한 진용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도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의 유기적 관계를 모색해야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3일 쌍용자동차범국민대책위원회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 홍영표 의원, 은수미 의원, 김기준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자동차 측의 회계조작, 기획부도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인 은수미 의원, 심상정 의원 등은 각기 노동관련 연구원과 노동조합 출신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야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당 우원식, 홍영표, 은수미, 김기준 의원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참석했다. ⓒ뉴스1

통상임금 문제에 있어서도 야권의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3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평균임금 개념에 대해서는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 데 비해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문제는 30년 동안 계속 문제가 됐는데 그 이유는 1996년 이후에 대법원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내렸는데도 노동부가 이것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께서 미국 순방 중에 GM에 데니얼 애커슨 회장에게 이 문제 해결하겠다고 답변을 함으로써 노동부가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상정 의원은 “결국은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고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될 필요성이 제기 됐기 때문에 저도 내일 이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 역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통상임금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정 대화를 제안한 것에 반발하며 “사법부가 결정한 것을 노사정 대화로 푸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면서 “입법이 필요한지, 다른 정책적 조치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노동과 임금 TF를 통해 논의를 해서 6월에 발표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여당의 내부적 혼란과 야권의 반격 등을 감수하면서 최대한 원내 상황을 청와대의 의도대로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여당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당·청관계의 일정한 변화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정현 홍보수석의 등장은 그런 차원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