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사보도 프로그램 <현장21> 폐지 반대 여론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SBS 기자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고, 29일 노사 편성위원회를 앞두고 피켓 시위를 준비 중이다. 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SBS 소속이 아닌 외부 기자들도 잇따라 항의 성명을 내어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 SBS 시사보도 프로그램 '현장21' (SBS '현장21' 홈페이지 캡처)
방송기자연합회(회장 김유석)는 28일 성명을 내어 “SBS의 <현장21> 폐지 움직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탐사보도 기능을 강화하고 외부 견제를 막아줘야 할 보도책임자가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방송기자연합회는 “<8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 전환 배치를 <현장21> 폐지 이유로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방송사 뉴스 경쟁력을 오로지 메인 뉴스 시청률 잣대로만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없애고 기자 몇 명을 메인 뉴스 제작에 투입한다고 경쟁력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우리는 탐사보도 기능을 축소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든 방송사들의 위상이 어떻게 추락했는지 알고 있다. 국민들에게 꼭 짚어줘야 할 사안을 대충 외면했을 때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는 더 심화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조세피난처와 관련해 ‘주류’를 자처하는 방송사들이 탐사전문 독립 언론 ‘뉴스타파’를 취재해야 하는 낯 뜨거운 일도 앞으로 더 자주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강성남, 이하 언론노조)은 27일 성명을 통해 “SBS도 권력 감시 기능을 포기하려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MBC에서는 ‘김재철 체제’ 인사들이 뉴스 보도의 핵심 보직을 다시 차지했으며, KBS에서는 ‘역사 왜곡’ 다큐가 버젓이 방영되고, EBS에서도 독립운동가 다큐 제작 중단 조치가 내려지는 등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는 행태가 횡행하고 있다”며 “SBS의 <현장21> 폐지 움직임도 최근 방송사들의 ‘권력 감시 기능 축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공영방송이 노골적인 편파 보도를 일삼다 보니 지난 정권에서 SBS 보도는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SBS가 언론 본연의 권력 감시 기능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려 한다면, 각계각층에서 SBS 소유와 경영의 실질적 분리 요구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SBS는 힘들게 쌓아온 긍정적인 평가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경고한다”고 말했다.
SBS 내부도 적극 대응 나서… 29일, 노사 편성위원회 개최
SBS 내부 기자들도 이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남상석, 이하 SBS 노조)는 28일 성명을 내고 사측에 <현장21> 폐지 시도 중단을 요구했다. SBS 노조는 “3년 전 사측은 <뉴스추적> 시간대를 밤 11시에서 9시로 옮기고 프로그램 이름과 형식을 변경했다”며 “당시 사측은 광고를 많이 팔 수 있는 ‘머니존’인 11시에는 예능을 편성해 수익을 높이고, 공적 기능 담당 프로그램은 ‘공영존’인 9시에 편성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SBS 노조는 “그때 <뉴스추적>의 브랜드 가치를 버리면서까지 시행했던 개편이 현재 어떤 득실을 가져왔는지 냉철한 평가와 책임 논의도 없는 것을 보면, 결국 시사보도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니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장21>의 존폐는 SBS 전체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인데, 일선 구성원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밀실에서 추진하는 것은 논리도,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졸속 추진”이라며 “누가 어떤 의도와 배경에서 <현장21>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인지 따져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SBS 노사는 29일 오후 4시 편성위원회를 열어 <현장21> 폐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날 편성위원회에는 사측에서 사장, 보도본부장, 편성전략본부장이, 노조 측에서 위원장, 사무처장,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이 참석하며 하현종 SBS 기자협회장도 자리할 예정이다.
신승이 SBS 노조 공방위원장은 28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7월 개편까지는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현장21>을 대체하는 안이 있는지조차도 불분명하다”며 “사측은 경제적, 상업적 논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시사 프로그램의 폐지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SBS 기자협회(협회장 하현종)는 27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현장21> 폐지 건을 논의했다. 하현종 기자협회장은 28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보도국 <8뉴스>가 인력이 부족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으며, <8뉴스>만의 경쟁력이 아닌 ‘SBS 뉴스’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현종 기자협회장은 “어제 전달받은 이웅모 보도본부장의 공식 입장은 ‘보도국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력 수급이 필요하니, <현장21> 관련 편성 의견을 편성팀에 요청했다. 편성팀 의견에 따라 임원 회의에서 프로그램 존폐 여부가 최종 결정될 것’이었다”고 말했다.
SBS 내외부에서 <현장21> 폐지 반대 목소리가 높은데도, 보도국 수뇌부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SBS는 7월 2째주 개편을 앞두고 있다. 4주 전까지 개편안을 확정해야 하므로, 6월 2째주 즈음이면 <현장21>의 존폐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BS 기자협회는 29일 편성위원회를 앞두고, 서울 목동 SBS 본사 1층 로비에서 <현장21> 폐지 추진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다. 피켓 시위는 오전 8시, 오전 11시 30분 2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