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은 신 지도부 출범과 함께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정치·경제·사회분야 및 통일·안보분야를 중심으로 <정책비전과 의제>를 제안하는 세 번에 걸친 연속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제분야 토론회가 열린데 이어 28일 사회분야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민주당 김용익 의원,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주당 은수미 의원, 최영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이 토론을 위해 참석했다.
신광영 교수는 “사회정책 비전: 21세기 불안사회를 넘어서 미래 한국 사회정책의 모색”이란 발제로 토론자들로부터 사회 곳곳의 문제들에 관한 자료와 통계들을 두루 섭렵해서 만들어낸 짜임새있는 총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광영 교수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경제위기, 고용위기, 사회해체의 위기, 인구위기 등 복합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며 이 복합위기가 삶의 질을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지적했다.
▲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책비전과 의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복합위기'는 삶의 질을 어떻게 낮췄나
고용위기의 측면에서 볼 때는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격차가 근 십년 동안 커지고 있고(정규직 월평균 임금대비 비정규직 취업자 월평균 임금이 2002년 67.1%에서 2012년 56.6%로 변동) 여성 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보다 훨씬 높다(2012년 여성 취업자 비정규직 비율 41.5%, 남성은 27.3%).
사회위기의 측면에서 볼 때도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쳐 형사범의 증가는 인구증가나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돌고 있으며 (1986년부터 2000년까지 형사범과 재산범은 2배, 강력범죄는 6배 증가) 1970년대 서구 이혼율의 1/3 정도에 불과했던 한국의 이혼율은 2003년에는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아졌다. 특히 20년 이상 결혼 생활한 부부 이혼이 급증하면서 이혼한 중년 여성들이 근로 빈곤층에 편입되는 추세가 늘고 있다. 자살률은 2000년대 들어 OECD 평균의 두배 정도에 노인자살률은 극단적으로 늪은 수준이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도 소득격차와 성별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인구위기의 측면에서 보면 청년들은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되어 출산율을 낮추고 인구고령화 진전현황은 다른 선진국의 속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늘어난 노인의 빈곤율은 2012년 현재 50.1%로 절반 이상의 노인이 빈곤층으로 조사됐다. 신광영 교수는 “노년이 불행한 사회, 장수가 피하고 싶은 사회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밖에도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면서 저소득층은 계층상승을 꿈꾸지 못하게 되는 희망격차도 생겨나고 있고 이러한 4대위기의 결과로 한국 사회가 제도와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대단히 낮은 '저신뢰사회'가 되었다는 진단도 제기됐다.
신광영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형 사회정책 모형이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유연화’-‘포괄적인 생활보장’-‘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삼각형으로 하는 ‘한국형 유연안정 모델’을 통해 생활보장국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주거, 교육, 보육, 의료 등의 영역에서 공공성의 확대를 추구해야 하며 복지국가의 수혜자의 가족 모형을 맞벌이 부부로 상정하여 현재 여성들의 ‘저출산-저(경제활동)참가 모형’에서 ‘고출산-고참가 모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연안정 모델의 한계…사회안전망이 갖춰진 서구사회에서나 가능해"
토론자들은 신광영 교수의 발제 가운데 ‘유연안정 모델’의 한계를 지적했다. 은수미 의원이 유연안정 모델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다. 최근까지 한국노동연구원에 있었던 은수미 의원은 “유럽의 유연안정성 전략이란 건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유연성을 재고하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은수미 의원은 "유럽의 유연안정성 전략이 실행되는 방식은 가령 독일의 경우 특정 상황에서 노동법을 회피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고, 네덜란드에선 25세 이하에겐 최저임금 이하를 주는 것"이라며 "덴마크의 경우도 원래는 실업급여가 7년 보장되었는데 이제는 2년은 보장하고 나머지 5년은 구직활동을 해야 주는 식"이라고 밝혔다. 이어 은수미 의원은 "ILO는 이에 대해 ‘한계유연안정성 전략’이라며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면서도 "(서구사회의 유연안정 모델은) 적어도 이렇게 하면 한정된 영역에서 유연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경우 26세 이후 갑자기 임금이 오르는 등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은수미 의원은 "(서구사회와 달리)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유연안정성 전략은 유연성만이 강화되는 전략이었고 사회투자국가론과 연결되어 있었다"며 "이것이 신광영 교수가 말씀하신 복합위기를 낳은 원인 중의 하나다. 그래서 감히 유연안정성 전략의 폐기를 제안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역시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연성을 감내하자고 하는 것이 받아들여질지 의문이 든다”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김용익 의원도 “유연안정성이란 말은 안정성이란 대야 안에 물이 담겨있는 것과 같은데 지금 한국 상황은 물을 바닥에 뿌려버린 것처럼 되었다”면서 “(그래서 한국 실정에서) 슬로건의 차원에서 유연성이란 말을 내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용익 의원은 “한국 실정에서 유연성 문제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용익 의원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가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라며 "양극화는 산업구조조정을 통해서, 고령화는 인력재배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유연화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명 교수는 "한국의 상황에서 유연안정성 이데올로기는 극심한 노자간의 권력구조의 비대칭성 때문에 ‘유연화’는 강화되나 ‘안정성’은 그에 상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은수미 의원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김연명 교수는 "유럽의 스웨덴 네덜란드 등 소규모 경제는 규모의 경제를 위해 수출지향적인 개방경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세계경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수행해야만 했고 그렇기에 보편주의적인 복지체제를 성립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개방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사회안전망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이 어려워지고 갈수록 글로벌화되는 세계경제에의 적응도가 낮아진다"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사회의 경우에도 강력한 보편주의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영준 교수는 민주정부의 복지확대 정책이 복지악화의 딜레마를 낳게 된 이유를 인과적으로 분석하고 유연안정성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영준 교수는 정책의 인과관계에는 효과가 금세 나는 ‘토네이도’ 스타일의 인과론이 있고 효과가 느리게 나타나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인과론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자유화나 노동유연화는 ‘토네이도’ 인과론을 따르는 반면 복지정책의 발전과 확대는 ‘지구온난화’ 인과론을 따르기 때문에 민주정부가 두 가지를 모두 추구했어도 시민들의 삶의 질이 더 악화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유연안정성 모델과는 다르다는 반론도
한편 최영준 교수는 한국 사회의 실정에서 "시간의 유연성은 더 진행될 필요성이 있는 반면, 계약의 유연성에 대해서는 더 엄격해질 필요성이 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모델에서 안정성만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이를테면 전일제 노동이 아닌 다양한 시간의 노동형태가 필요하지만 계약관계에서 파견노동이나 비정규직노동의 파행은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국 실정에 걸맞는 새로운 유연안정성 모델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토론자인 신광영 교수 역시 비판적 지적에 대해 "참여정부는 유연화 모델일 뿐 유연안정 모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신교수는 "안정이라면 고용안정이 있고 생활안정이 있는데 유연안정 모델은 고용안정을 주지 못하는 대신 생활안정은 줘야 한다. 즉 고용보험을 확충하고 실업급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던 참여정부의 유연안정 전략은 노골적인 유연화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신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급여 격차 등의 차별을 줄이는 것"이라며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는 어떤 이상적인 대안을 따라가기 보다는 당장의 질병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본다"면서 유연안정 모델이 당장의 질병에 대처하기 위한 의미있는 모델임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세 번째 정책 토론회는 정치분야를 주제로 오는 31일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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