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시간제도 좋은 일자리”라는 발언이 화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용률 70% 달성과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가 중요한데, ‘시간제 일자리’라는 표현에서 편견을 쉽게 지울 수 없으니 공모 등을 통해 이름을 좋은 단어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박근혜 대통령의 "시간제도 좋은 일자리"발언을 보도한 한겨레의 28일자 기사.

<한겨레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고용의 질이나 노동환경 개선은 언급하지 않은 채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 전환만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 것”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현실적으로 시간제 일자리가 ‘아르바이트’로 통칭되는 불안정 노동으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노동유연성을 강화하자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발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의 포인트다.

한겨레신문의 오버?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노동유연성 강화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다루면서 이와 관련한 정부의 방침을 추가로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고육책으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간제 일자리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로드맵을 발표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개념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도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 앞서 <한겨레신문>과의 해석과는 배치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파트타임 정규직’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호의적 해석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시간, 하루 종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지 않느냐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있는데, 선진국을 보면 그런 일자리가 많고, 그 일자리들도 좋은 일자리들”이라고 발언했다는 게 근거다. 이를 보면 노동유연화보다는 ‘잡셰어링’등의 방식에 가깝고 이는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으로써 노동계 일부에서 주장하기도 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 "좋은 시간제 일자리"라는 표현에 중점을 둔 경향신문의 28일자 기사.

유럽 일부 선진국에는 ‘파트타임 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실제로 존재한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1982년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ccord) 이후 노동시간 단축과 파트타임 근로에 대한 규범화가 진행돼 오늘날에는 파트타임 근로 비중이 2006년 기준 45%에 달할 정도로 커진 상황이다.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일자리는 늘어났기 때문에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도 비약적으로 커졌고 이것이 다시 사회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게 됐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의 파트타임 고용 실태는 성공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 전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긍정적이라는 평가만을 내릴 수는 없다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모델이 무엇이든 결국 노동시간 단축과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에서 자본이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으나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구조적 틀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로드맵도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단으로 평가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구조가 바꾸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만 봐도 오늘날과 같은 체제가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원인이 뭐였든 기업의 일정한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세나르 협약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른바 ‘폴더(Polder) 모델’은 기업이 고용을 확대하고 노조를 인정하며 주요 현안을 노조와 협의하도록 하고, 정부는 이를 통해 발생한 기업의 비용 상승을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경감해주는 유도책을 쓰며, 노조 측은 임금인상 요구를 위한 쟁의 등을 자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위해 사회경제협의회(SER), 노동재단(The Labor Foundation)등을 만들어 노·사·정이 상시적인 협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었다.

물론 박근혜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롤모델이 네덜란드 모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네덜란드식 노사관계 모델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 논란이 된 바 있으며 당시의 논의는 결국 파탄적인 결말로 이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정부 인사들이 연구하고 있는 것은 독일 모델이며 이것조차 짧은 유행으로 그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기도 한 실정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모델이든 독일 모델이든 유럽의 선진국을 대상으로 하는 청사진을 그리는 이상은 피상적이고 일회적인 제도가 아닌 근본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근본적 사회 개혁이 필요

이를 상기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말해야 하는 것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 전환’이 아니라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전환’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과 자본의 대결 구도에서 자본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파트타임 정규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기틀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데, 오늘날 기업들은 양보는커녕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의 편법을 활용해가며 부를 축적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울타리에서조차 밀려나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하는 바가 실현되려면 노동자들이 우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체제를 설계하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여기에는 불안정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와 정규직 노동조합의 관점 전환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결국 관철해야 할 것은 앞서 강조한 ‘자본의 양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양보가 분명히 전제되지 않으면 김대중 정부 시절 네덜란드 모델을 따라 만든 ‘노사정위원회’ 등이 보여준 비극적 결말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한 노동자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사회연대전략모델을 제안하는 등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런 기억을 되살려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연대전략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려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고 이를 국가가 인정하며 여기서 나오는 힘을 통해 자본을 통제하자는 구상이 포함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근혜정부가 이런 구상을 이야기 할 처지는 못 되겠으나 최소한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 전환”같은 발언은 곡해(?)되기 십상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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