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영미문학 고전 '위대한 개츠비'가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선을 보이기도 했는데, 2013년 '위대한 개츠비'의 메가폰을 잡은 장본인은 호주 출신의 바즈 루어만 감독이다.

이쯤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2013년 '위대한 개츠비'가 어떤 분위기와 영상으로 그려질지 대략 감을 잡았을 것이다. 1992년 '댄싱 히어로'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바즈 루어만 감독. 그가 1996년 헐리우드로 진출하여 찍은 첫 작품이 세익스피어의 고전을 영화화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이미 올리비아 핫세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있었지만,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MTV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전개와 빠른 영상 편집으로 젊은 영화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도 로미오 역을 맡은 줄리엣보다도 더 예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적인 매력은 전 세계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카디건스의 'Lovefool', 데즈레의 'Kissing You' 등 주옥같은 OST도 영화를 한층 빛나게 한 요소였다.

2001년에는 파리를 배경으로 한 퓨전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로 바즈 루어만은 전 세계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다섯 번째 연출작은 다시 한 번 고전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로 선택되었다.

영화는 초반부터 역시 바즈 루어만 영화답다는 느낌이 들 만큼 역동적이고 빠른 영상미가 돋보인다. 특히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펼쳐지는 파티 장면에 비욘세, U2 등의 노래가 편집되어 삽입되는 등 1920년대 뉴욕을 더욱 세련되고 활기 넘치게 묘사한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펼쳐지는 파티 장면은 마치 '물랑루즈'의 화려한 뮤지컬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반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츠비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17년 전 로미오로 등장했을 때에 비하면 중년의 후덕함이 많이 더해졌지만 여전히 매력이 넘치고 개츠비답다.

이 영화의 화자이며, 작가가 꿈이었으나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의 삶을 택한 닉 캐러웨이역을 맡은 토비 맥과이어도 반듯하고 정갈한 이미지와 품성을 소유한 캐러웨이 역에 딱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말끔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츠비가 꿈꿔왔던 모든 꿈의 결정판인 개츠비의 옛 연인 데이지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은 17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한 클레어 데인즈를 연상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클레어 데인즈보다 발랄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밖에 없는 데이지 캐릭터에 적격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데이지의 남편이자 부를 물려받은 폴로 선수로 등장한 뷰캐넌 역의 조엘 에저튼도 평생 운동을 업으로 삼아온 뷰캐넌 캐릭터에 딱 안성맞춤이라는 이미지를 안겨준다.

이처럼 원작 소설에 충실한 캐릭터 설정은 영화의 몰입감을 한층 더해준다. 또한 개츠비의 실체가 양파 껍질을 벗겨지듯 드러나고 재회한 개츠비와 데이지의 밀애가 짙어질수록 영화의 긴장감은 배가된다.

개츠비는 연인 데이지와의 재결합,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캐러웨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데이지를 향한 강렬한 소유욕을 드러낸다. 하지만 데이지에게 중요한 것은 안정(secure)이었다. 개츠비가 자신의 실체를 낱낱이 벗겨내는 뷰캐넌을 향해 광기의 분노를 드러내는 순간, 데이지는 개츠비를 향한 마음을 접게 된다.

개츠비가 광기의 분노를 드러내는 그 장면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다. 17년 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보여준 광기보다 훨씬 정제되고 압축되었지만 더욱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는 광기와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17년의 시간 동안 쌓아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내공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운명의 여정에 나선 개츠비의 삶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개츠비와 같은 인생역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자문해 본다. 그토록 갈망하던 부를 위해 순수한 꿈을 꾸던 개츠비도 결국 현실과의 타협, 그 중에서도 악덕스러운 것과의 결합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된다.

비록 불법과 거짓 속에 쌓아온 탑위에 올라선 개츠비이지만 누구보다도 현실에 대해 희망과 긍정을 품고 살아왔던 그의 모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웃 캐러웨이는 그에게 '위대한(Great)'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한다. 우리 주변에는 뷰캐넌과 데이지와 같은 이기적인 존재들이 쉽게 눈에 뜨인다. 개츠비처럼 살기 어렵다면 적어도 캐러웨이만큼은 살아야 '위대한 개츠비'의 꿈과 이상에 대한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사람들이 욕망과 본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기막히게 들어 맞는다는 점이 원작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인사이트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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