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은 신 지도부 출범과 함께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정치·경제·사회분야 및 통일·안보분야를 중심으로 <정책비전과 의제>를 제안하는 토론회를 마련하였다. 첫 번째 토론회는 경제분야, 두 번째 토론회는 사회분야, 세 번째 토론회는 정치분야, 네 번째 토론회는 통일·안보분야를 주제로 열린다.

지난 21일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는 경제분야를 주제로 한 첫 번째 토론회가 열렸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발제를 했고 김진방 인하대 교수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리고 민주통합당 김기준 의원이 토론문을 썼다.

발제자인 홍장표 교수는 대선 당시 민주당의 경제·민생분야 공약을 평가하고 민주당의 경제정책 노선과 비전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를 논했다. 홍장표 교수는 지난 대선이 진보정치의 패배였지만 새누리당의 공약을 진보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진보적 정책노선은 승리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진보정치의 위기로 인해 공약의 신뢰성이 약화되었고 3% 부족한 경제정책공약이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주당 강령에서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가 절충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데 자유주의 노선은 민주당 집권 당시 민생정치의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케인즈주의의 경우 위로부터의 시장경제에만 치중하며 아래로부터의 경제 민주화 동력에 관심이 부족한 국가개입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진보노선과 자유주의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 노선의 가치충돌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책비전과 의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뉴스1

홍장표 교수는 민주당의 경제정책 노선과 비전의 재정립 문제에 대해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유명한 슬로건을 분석해 3대 정책비전으로 뽑아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에서 ‘기회 평등’의 문제를 “기회평등의 실질적 보장과 사회적 기본권 신장: 보편복지의 심화”로 규정했고 ‘과정 공정’의 문제는 “공정·상생·협동의 시장경제질서 확립: 실질적 경제민주화 실현”으로 구체화시켰으며 ‘결과 정의’의 문제는 “함께 누리는 혁신적 성장”으로 정리했다.

그는 이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문제, “함께 누리는 혁신적 성장”의 문제에 주목했다. 현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재벌 대기업 위주 성장·수출주도 성장·부채주도 성장이었다고 지적하고 특히 뒤의 두 가지가 세계적으로 통용된 신자유주의 성장모델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성장주도 정책이 ‘고용없는 성장’으로 유효성이 약화되면서 대안적 성장모델의 필요성이 생긴 만큼 국제노동기구(ILO),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제시한 세가지 대안적 성장모델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용주도 성장, 임금주도 성장, 그리고 소득주도 성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한국적 실정에 들어맞는 길은 고용주도 성장과 소득주도 성장이 될 것이라고 홍장표 교수는 분석했다. 고용주도 성장은 실업률이 높고 고용률이 낮은 국가에 적합한 정책이고 임금주도 성장은 중앙집중적 노사단체교섭제도가 발달된 국가에 적합한 정책이며 소득주도 성장의 경우 자영업 등 비공식부문 취업자 비중이 큰 국가에 적합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책비전과 의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고용주도 정책은 ‘좋은 일자리 창출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고 혁신경제나 협동경제 구축을 목표로 삼는다. 소득주도 정책은 ‘사회보장의 실질적 강화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고 보편주의에 입각한 복지제도 확충과 사회적 포용의 상생경제 구축으로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정책들이 목표로 하는 정책관리지표는 고용율, 수정노동소득(피용자보수+자영업자소득) 분배율, 사회보장률 등이다.

한편 전강수 교수는 현안 정책과제 중 부동산정책에 대하여 발제를 하였다. 그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정책이 철학이나 정책방향을 상실한 채로 순간을 넘기는 대증요법·단기정책·현안정책에 치중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정책 역시 철학이나 정책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에 상황에 따라 정책의 내용을 조금씩 바꿀 때에도 그 철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부동산 정책철학과 그 방향을 명확하게 밝혀야 시장상황에 따라 세부정책을 조정하더라도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은 우리 헌법에 포함되어 있는 토지공개념의 이념을 바탕으로 중장기 정책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인 김진방 교수는 정책비전과 의제를 제안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낱말을 곱씹었고 발제자 홍장표 교수가 정리한 ‘3대 정책비전’에 대한 의문을 밝혔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정치민주화와 비교할 수는 있겠으나 경제민주화를 형식과 실질로 나누는 것은 부적절하며 경제 영역에서 공정과 평등을 지향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로, 참여를 지향하는 것을 산업민주주의라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재벌문제에 관련해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출자총액 제한과 지주회사 행위 규제 등은 주로 재벌그룹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인데, 서민경제와 중소기업 경영을 위협하는 것이 재벌그룹의 확장 중에서도 문어발식 확장에 있다면 재벌개혁의 핵심 목표를 어디에 설정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민주당의 정책비전과 의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는 모습을 참석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미디어스

토론자인 김상조 교수는 “진보적 정책노선은 승리”했다는 홍창표 교수의 주장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본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의제의 상당부분은 서구 역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유주의적 의제인데 과거 한국 보수진영의 기형적 모습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적 의제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라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따라서 지난 총·대선에서 보수진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자신의 의제로 가져간 것은 ‘진보의 승리’가 아니라 ‘보수의 정상화’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실정은 진보진영이 어떤 가치를 내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운 시국이란 점에서 ‘2007년 대선 패배 이상의 진보의 위기’의 상황이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조 교수는 최근 민주당의 논쟁을 보면 “지난 선거에서 이긴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탄식이 나올 정도라고 개탄했다. 그는 민주당이 목표와 수단의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하며 보수정부 및 국회 하의 현실적 목표를 ‘단기목표’로 2016년 총선 및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제기할 비전을 ‘중기목표’로 20∼30년 후에 실현하고자 하는 진보적 가치를 ‘장기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으로 그는 홍장표 교수의 발제문이 내세운 고용주도와 소득주도 정책은 중기목표로 적절한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토론자인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경우 발제문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일자리 창출 정책의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실업자는 74만명 수준이나 실질실업자는 300만명, 여기에 600만명의 자영업자 속에 숨어 있는 위장실업자까지 합치면 400만명이 훨씬 넘는 실업자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백 연구위원은 이런 실정에서 만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200∼400만의 신규고용창출이 가능하겠지만 이는 신규채용 증대와 임금인하를 수용하는 노사간 대타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현실적으론 노사 모두 이를 원하지 않기에 실현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신규고용창출 전략을 추진하되 창업을 통한 신규고용창출전략을 보다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지금의 자영업자도 과잉이기에 현재 양산되는 준비 안된 영세 생계형 창업이 아닌 충분히 준비한 경력형 창업, 기술창업, 협업창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 토론자인 민주통합당 김기준 국회의원은 과거 유권자들이 진보정권이라 인지한 민주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보수적이었다며 박근혜 정부의 핵심키워드인 창조경제에 대응해 민주당은 ‘제3섹터’, ‘사회적 경제’ 혹은 ‘협동사회경제’라 불리는 영역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의 논의와 지적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와 그에 대처하는 진보적 성향의 수권정당의 정책지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을 지키기’ 행보에 나선 최근 민주당의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은 방향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실정에서 ‘임금주도 성장’이 효력이 적다는 발제자 홍장표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구체적 정책영역에서 최저임금제 인상 정도를 제외하면 비정규직 문제 혹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에 대한 고민 내지는 대책은 조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나 김기준 의원이 ‘보강’하는 부분 역시 ‘노동’보다는 ‘창업’의 영역에 치중해 있으니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토론자 김진방 교수가 토론문 말미에서 던진 “총선/대선 공약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거나 의도적으로 피했던 노사관계 개혁을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주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민주당의 정책논의가 기존 진보진영의 정책논의에 비해 영세자영업자 문제에 대한 가닥을 잘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까지 포섭할 수 있다면 한층 더 높은 정책역량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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