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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이진욱의 재발견보다 흥미로웠던 케이블 드라마의 재발견[블로그와] 자이미의 베드스토리
자이미 | 승인 2013.05.16 15:07

20회로 마무리된 tvN의 오리지널 드라마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국내 드라마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작품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순하고 평범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나인>은 잘 보여주었습니다.

케이블 드라마 나인; 기존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시간을 왜곡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작가들이 이를 소재로 창작을 해왔습니다. 시간을 여행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비된 상황에서 <나인>의 소재는 참신함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기 전에 들었던 그런 아쉬움은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풀어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향이라는 익숙한 도구가 시간을 거슬러 특정한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은 탁월했습니다. 향이라는 도구가 타임머신이 되었다는 사실도 신선했지만, 그보다 시간을 지정하지 않고 오직 20년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는 제약이 <나인>을 매력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판타지와 현실, 그 경계가 모호한 향을 이용한 시간여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숨죽인 채 그들의 여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해주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깨트리고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며, 아홉 개의 향이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되어버리는 구조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꿔보겠다는 욕심이 결국, 현재를 더욱 뒤틀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다소 교훈적인 메시지가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한 매력으로 다가올 정도로 <나인>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습니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 <나인>엔 허점도 많습니다. 그 열린 결말 자체가 시간여행이라는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을 현실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한계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해도 불안전 요소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열린 결말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전진해도 결국에는 처음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뫼비우스의 띠 구조가 <나인>에서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향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선물을 움켜 쥔 인간의 모습은 시작과 끝을 이루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라는 지구상 가장 힘든 공간에서 얻으려는 허망한 행위 자체에 <나인>의 주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형의 손을 잡으며 건네는 선우의 모습 역시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네팔로 향한 형과 민영을 위해 네팔로 떠난 선우. 그들이 그곳에서 재회하는 시간은 아주 짧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네팔로 가기 전에 선우와 정우가 만났기 때문입니다. 고글을 벗은 선우의 모습이 젊은 선우가 아니라는 모호함 역시 다양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20년이라는 경계가 반복되어 20년 후의 모습이 재현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특하다는 인간들 역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인생을 살고는 합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20년 후 다시 향의 유혹이 그들을 힘겹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나인>이 20회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해왔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인>은 이진욱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 했습니다. 그는 2003년 광고모델을 시작으로 2004년 MBC 베스트극장 <불량소녀>를 통해 연기자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1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진욱이라는 인물은 낯설기만 합니다. 대중이 기억하는 이진욱은 최지우의 남자친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연기자이지만 연기자보다는 스타의 남자친구로 취급받아왔던 이진욱에게 <나인>은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일 것입니다. 연기 톤을 보면 전작인 <로맨스가 필요해>와 유사합니다. 아니 기존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대중에게 이진욱은 <나인>의 박선우라는 존재로 각인되어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그동안 왜 이진욱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들 정도로, 그는 이번 작품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직하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약한 로맨티스트 박선우 그 자체가 된 이진욱은 어렵게 찾아낸 진주처럼 반갑기만 했습니다.

이진욱의 재발견도 반가웠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케이블 드라마의 재발견이었습니다. tvN이 모기업 CJ의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케이블로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김병수 연출, 송재정 극본으로 탄생했던 <인현왕후의 남자>의 현대판 이야기라고도 불리는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타임머신이라는 주제를 독특하게 풀어 성공한 연작입니다. 지상파에선 시도해보기 힘든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케이블이라는 상대적인 조건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CJ가 자신들이 보유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오리지널 드라마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를 위협하는 드라마 라인업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초반 부진과 아쉬움을 씻어내고 자신들만의 드라마 스타일을 구축하며 시청자들의 충성도까지 높이고 있다는 점은 케이블의 반격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상파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전국방송보다 케이블이 더욱 큰 경쟁력을 갖추고 있듯, 국내 역시 CJ라는 거대한 재벌이 거느린 케이블 라인들이 다양한 형식의 실험으로 경쟁력을 키워가며 최소한 드라마에서 지상파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이진욱의 재발견과 조윤희의 연이은 성공보다도 케이블 드라마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은 시청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 여기에 신선한 시도까지, 기존 드라마를 거부하던 이들까지 팬으로 만들 정도로 <나인>은 케이블 드라마를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난해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기억되었던 <응답하라 1997>의 후속편이 준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 케이블 드라마의 재발견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상파에 비해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케이블이 고루한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드라마도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Crowding Out Theory을 역으로 생각해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형국이 되고 있는 케이블 드라마의 역습과 이를 통한 재발견은 기존의 드라마 형식을 파괴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과연 케이블의 이런 시도와 도전들이 시청자들의 선호를 바꾸고, 지상파 드라마의 다양성을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자이미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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