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오는 29일 마가렛 세카기야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한다.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의 방문은 한국의 인권 상황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국내 인권 상황의 열악함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카기야 보고관 방문을 2주 앞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한 해 수감되는 병역거부자의 수는 많게는 700여 명에 달하지만, 한국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유엔의 수차례에 걸친 권고에도 응답하지 않는 상황이다.

미디어스는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의 방문을 계기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상황을 재조명하고 환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미디어스는 한국의 전쟁없는세상의 유일한 상근 활동가 여옥을 만나 한국 병역거부 10년 운동사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평화도서관에서 진행됐다.

미디어스(이하 ‘미’): 특별보고관 방문 시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NGO들은 어떤 역할을 맡는지.

여옥(이하 ‘여’):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이 한국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국내 시스템을 잘 모른다. 관련된 법과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다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 바탕으로 보고관이 정부에 질문을 하면 정부에서 답을 하고, NGO는 정부 답변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 때문에 NGO는 예상 질문·답변과 반박 리스트까지 모두 만든다. NGO들은 현장에도 가야 하는데 특별보고관 방문에도 대응해야 해서 벅찬 부분도 있다. 특히 유엔 쪽에 보내는 보고서는 공식 문서라 제대로 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전쟁없는세상이 영역한 보고서를 참여연대, 코쿤, 민변 쪽에서 감수해 고칠 것이다.

미: 특별보고관이 이번 방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여: 특별보고관이 와서 병역거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웃음)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해서 처벌받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이들이 신념을 지키는 것 외에 어떤 인권옹호활동을 했느냐”면서 병역거부자가 처벌받는 상황 자체에는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인권옹호자 개념은 좁게 봤을 때 인권침해와 탄압 여부가 아닌 인권 보호 활동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역거부 행위 자체가 왜 인권 옹호 활동인지에 대한 사례로 ‘촛불 의경’ 이길준 씨,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다가 병역거부를 할 예정인 어느 활동가를 소개하려고 한다.

미: 그렇다면 이번 특별보고관 방문에서 가장 관철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지.

여: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 같다. 앞으로 상황이 악화될 것 같아서 그 문제만 잘 해결되더라도 좋을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도 평화옹호 활동이라 병역거부 문제와 연관이 있다. 특별보고관이 제주에 가면 지킴이들과 만날 텐데, 지킴이 중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 서귀포시 관계자들이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공사장 입구에서 강정마을회와 해군기지 반대측이 불법공사 감시 등을 위해 설치한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뉴스1

미: 강정마을에서 새로이 병역거부를 준비하게 된 사람이 있는지.

여: 한 명은 영장이 나온 주에 재판이 잡혀 있어서 입영이 연기됐다. 그 친구는 처음부터 병역거부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촛불집회에 몇 번 나갔고, 제주 강정마을 소식을 듣고 방문했다가 눌러앉았는데, 현장에서 활동하다 보니 군사기지를 지으려는 과정에서 마을이 쪼개지고, 사람들이 짓밟히고, 해군이 폭력을 행사하는 광경을 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군인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미 :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이들 중 종교적인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이들의 비율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비율은 각각 어느 정도 되는지.

여: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17000명 이상 감옥에 다녀왔다.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이하 ‘여증’) 신자이지만, 2001년 오태양 씨 이후로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되면서 반전과 평화, 인권과 소수자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5~60명 정도 된다.

지금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700여 명 정도인데, 90% 이상이 여증이다. 병역거부에 대해 고민하다가 평화운동 단체를 찾은 사람 중 현재 수감자는 2명이다. 물론 기자회견을 하거나 평화운동 단체를 통하지 않고 혼자 재판을 받은 수감자를 우연히 만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미: 연 평균 수감자의 수가 한국 인권 상황의 열악함을 드러내는 지표라는 비판이 있다.

여: 외국 활동가들을 만나면 한국의 상황을 듣고 놀란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가 천 명이라면 그 중 한국인이 8~900명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고 병역거부로 처벌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 또 인권 상황이 열악한 일부 국가보다도 한국에서 병역거부로 처벌받는 사람의 수가 많다. 그 외 국가는 아르메니아, 투르크메니스탄, 터키, 그 외에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곳들이다. 경제·사회 발전 수준이 떨어지고 사회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독재 국가는 병역거부를 하는 모든 국민을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많아봤자 몇 십 명이 감옥에 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에서 만든 주민등록시스템을 통해 국민을 다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한 해 몇 백 명이 꼬박꼬박 감옥에 간다.

▲ 전쟁없는세상의 여옥 활동가.ⓒ미디어스

미: 유엔 권고에는 강제성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 인권 상황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못 미친다는 것을 한국 정부가 압박으로 느낄 가능성은 없을까.

여: 한국 정부는 국제 사회에 인권 기준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온갖 조약에 가입하지만 지키지는 않는다. 유엔은 공신력 있는 국제기관이고, 유엔 권고만큼 강도가 센 압박은 없는데도 그렇다. 유엔은 예전부터 병역거부권을 기본적인 인권으로 보고 있어서, 비슷한 내용의 권고를 수차례 반복해서 내렸다. 대개 “한국 정부는 남북 분단 상황과 국가 안보의 문제를 핑계로 대는데, 전시라 해도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상황은 왜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야 하는지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침해했고,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 인권침해 피해를 입은 개인에게 보상을 하고 재발방지책(대체복무제)을 세워라”라는 내용이다.

권고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이행할 지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함께 토론회를 열기는 한다. 그 때마다 정부는 검토하고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할 뿐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다. 한국에 반기문 사무총장이 있으면 뭐하나. 권고조차 지키지 않는데. 그래서 국제법이 국내에서 효력을 발휘하게 하는 다른 법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

당장 수감자가 해마다 몇 백 명씩 나오는 상황에서 처벌을 멈추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병역법 88조 1항으로 무조건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라는 예외항을 만들지 않으면 처벌을 멈출 방법이 없다. 물론 병역거부자가 이용할 수 없는 공중보건의, 의무소방 등의 대체복무제가 있기는 하다. 이를 폭넓게 ‘사회복무제’로 바꾸어 군사훈련을 빼고 기간을 늘리면 된다.

국회 차원의 법안 발의 작업은 지난하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좋겠지만 내가 발의하지는 않겠다는 의원들이 많다. 대체복무제는 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공격받는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의 경우처럼 대체복무제도 좋아하지 않는다.

미: 보수 기독교와 병역거부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여: 병역거부를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역거부의 시초는 기독교 소수 종파의 평화주의다. 미국 베트남전 발발 당시에는 천주교, 개신교 등에서도 함께 징집거부운동을 하고 영장을 불태우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한국의 기독교는 국가 보수 세력과 결탁하는지 많이 반성해야 한다.

2001년 병역거부 운동이 처음 이슈화된 직후 보수 기독교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운동이 시작된 초창기 몇몇 의원실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 했는데 해당 의원 지역구의 보수 기독교 단체가 의원실을 점거하는 바람에 결국 철회했다. 지역 유지들이 기독교와 결탁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이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미: 하지만 2007년에는 정권 차원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시도가 있었다.

여: 이전까지 누적된 고통의 역사가 드러나면서 도입에 탄력을 받았다고 해야겠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상황이라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더 해야 하느냐 하는 내부적인 고민이 있다. 병역거부 운동 시작 이후 십 년 동안 유엔에 진정을 내 권고를 이끌어내는 것을 비롯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론화도 하고, 국회의원을 만나 법안 발의 시도도 하고, 법정 투쟁도 하고, 헌법재판소 위헌제청을 요구하기도 했다.

▲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세계 인권 선언의 날인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만든 인권 파탄의 시대를 끝내고 인권 발전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촛불집회나 인터넷상 의견 표명 등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회복하고 기능도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인권정책 10대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미: 작년 대선 기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의 대체복무제 도입 공약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여: 대선 기간에 모든 선거 캠프에 질의서를 보내 대체복무제 도입 의지를 물었더니, 박근혜 캠프를 뺀 나머지 캠프에서는 다 도입한다고 했다. 복무 기간, 영역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다른 캠프와 달리 문재인 캠프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특별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문재인 후보 본인에게는 실현 의지가 있었고, 캠프 내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군대 문제를 건드린다는 게 워낙 민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권 관련 공약 중 대체복무제는 세부안에 들어 있었는데 이것이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 [인터뷰]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여옥’ ② 로 이어집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15일 오후 7시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 상영회를 인권재단 사람 3층 다목적홀에서 연다. <혁명을 시작하는 방법>은 미국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진 샤프’의 비폭력 혁명 관련 저서가 어떻게 세계를 건너 아랍 혁명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급과 번역은 ‘벌레벌래 배급사’와 전쟁없는세상이 맡았다.

여옥은 “40개 언어로 진 샤프의 저서가 번역되었는데도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상영회를 통해 진 샤프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해당 영화를 소개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혁명이라고 하면 대개 폭력 혁명을 말하지만, 국가폭력을 넘기 위해 힘을 키우고 우리의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저항폭력 개념 또한 다른 불평등과 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옥은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늘 공권력을 맞닥뜨리고 폭력적인 방식에 가로막히면서 어떤 식으로 이것을 뛰어넘을지 고민한다”며 “합법적 틀에 갇히는 비폭력 방식이 아닌 혁명을 이루는 방식으로서의 비폭력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세상과 사회를 바꾸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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