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 취소가 결정됐다.

서울행정법원(문준필 부장판사)은 지난 10일 <자가당착>의 ‘제한상영가등급분류결정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비타협영화집단 곡사가 지난해 11월 1일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6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영등위가 문제 삼은 영화의 ‘주제 및 내용’에 있어 “현실정치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성’과 ‘선정성’에 있어서는 “마케팅과 종이칼 등을 활용함이 영화 <킬빌>과 비교하였을 때 폭력적이지 않으며, 대부분이 인형 신체이고 현실감이 떨어져 성적 상상이나 호기심을 부추기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 영화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되었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이 영화를 예술 영화로 인증한 점을 들어 “성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이 사건 영화의 정치적, 미학적 입장에 관하여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결했다.

이날 재판부는 영화가 의사표현의 한 수단으로 헌법 제21조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장을 받음과 더불어 학문적 연구결과의 발표 수단으로 헌법 제22조 학문·예술의 자유의 보장을 받고 있음을 명시하였다.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헌법 제21조 제4항의 일부 제한요건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창작자들이 상영등급분류를 의식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여지가 있는 점을 감안하여 영화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이 침해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해석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자가당착>의 김선 감독은 법원 판결의 의의에 대해 “영등위를 상대로 한 등급 조정, 제한상영가 관련 소송 중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며 “정치풍자극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등위가 표방하는 완전등급제, 즉 ‘모든 영화는 관람 가능해야 한다’는 철학은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하는 순간 유명무실해진다”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가당착>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11년 6월 14일과 2012년 9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주제성’과 ‘폭력성’을 근거로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자가당착>은 오는 6월 일본 이미지 포럼에서 우선적으로 해외 개봉된다.

아래는 <자가당착> 김선 감독과의 일문일답 전문.

▲ 영화 '자가당착' 포스터.
미디어스(이하 ‘미’): 이제 일반 상영관에 영화를 걸 수 있는지.

김선(이하 ‘김’): 그렇지 않다. 영등위에서 판결을 받아들이고 등급 분류 결정을 취소하면 다시 등급 신청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예측하기로는 항소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아주 긴 법정 싸움이 된다.

미: 해외 개봉을 먼저 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인지.

김: 그렇다. 영화는 시기적절하게 배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가당착>은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영화이지만 만들자마자 개봉할 길이 막혔다. 다행히도 영등위에서 문제 삼은 장면 중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달린 마네킹의 목을 치는 것이 있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미: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의는 어디에 있는지.

김: 영등위를 상대로 한 등급 조정, 제한상영가 관련 소송 중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정치풍자극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 제한상영가 판정은 주로 폭력성, 선정성, 동성애 등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자가당착>도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이나, 그 대상이 박근혜라는 점에서 핵심은 ‘정치 풍자’에 있다.

미: 이번 판결이 향후 영등위의 역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김: 영등위에서는 “제한상영관이 없는 것은 제도적 문제”라며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하지만,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쁘게 이용되는 지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등위가 표방하는 완전등급제는, ‘모든 영화는 관람 가능해야 한다’는 철학은 제한상영가 등급이 존재하는 순간 유명무실해진다. 이것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할 일이다. 박주민 변호사가 위헌 신청을 낼 계획이라는 것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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