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동원 의원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진보정의당 탈당을 공식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은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의 탈당파들이 만든 통합연대라는 세 개 정파가 모여서 생겨난 정당이었다. 국민참여당원들은 그후 당내에서 ‘참여계’로 분류됐다. 민주노동당원의 NL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으로 구성되는 데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된다.

한편 NL과 함께 2008년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양대 정파였던 PD들은 통합진보당으로 들어간 통합연대 사람들과 진보신당을 고수한 이들로 갈렸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PD계열의 명망가들은 주로 통합진보당으로 흘러들어갔지만 진보신당을 고수한 당원들도 7천여명은 되었다. ‘잔존 진보신당’은 대선 국면에서 대표적 진보지식인 중 하나인 홍세화를 대표로 추대하여 다른 역사를 가졌던 사회당과 통합하는 등 생존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했다.

통합진보당은 당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진보정의당으로 분화된다. 진보정의당으로 넘어간 이들은 NL의 세 정파 중 인천연합과 참여계, 그리고 PD들이었다. 울산연합은 갈등 상황에선 비당권파로 분류되었지만 분당 상황에선 결국 통합진보당에 남았다. 현재 진보정의당원은 8천명, 진보신당원은 7천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려 세 문단이나 이어지는 이상의 ‘서사’는 남한 사회를 살아가는 5천만명의 시민 중에서 3-4만명이나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의미까지 전무하다고 볼 수는 없다. 진보정의당에서 참여계로 분류되었던 강동원 의원이 탈당한 가운데, X파일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대표가 진보신당까지 포함하는 제2창당을 언급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강동원 의원의 탈당은 진보정의당 내 참여계의 몰락 내지는 증발을 의미하는 것일까? 복수의 관계자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구심점이었던 유시민 전 대표의 정계은퇴로 인해 참여계의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한다. 현재 진보정의당 내 참여계 당원은 2천명 정도로, 주로 천호선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노회찬 대표가 강동원 의원에 대해 “원래 우리와 정치적 체질이 다른 사람이었다”라고 발언하자 강동원 의원은 “그렇다면 유시민 전 대표와 최고위원 두 명을 포함한 참여계 전부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2천명이라면 강동원 의원의 최근 주장대로 참여계가 진보정의당 내의 '최대계파'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상황인 것도 현실이다.

복수의 관계자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참여계 당원들은 진보정당의 분위기에 많이 동화된 사람들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진보정의당 내에서 국민참여당 출신과 민주노동당 출신을 넘어 사민주의에 관한 세미나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라고 전한 바 있다.

노회찬 대표도 사민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노회찬 대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여계와 의견이 비슷하고, 진보신당과의 재합당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같은 PD 출신이지만 노회찬과 심상정의 이해관계가 다소 다르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많다. 심상정 의원은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 전 대표에게 후보를 양보한 경험도 있고, 유시민 전 대표의 지역구를 계승했으며, 의원 보좌관도 일부 참여계를 채용하는 등 참여계와 꾸준한 스킨십을 쌓아왔다.

이런 부분에서 심상정 의원보다는 뒤지는 노회찬 대표로서는 '노동'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사민주의'를 말하면서 참여계와 스킨십을 쌓는 한편 진보신당 당원들에 대한 관심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사실 진보신당 당원들의 경우에도 심상정보다는 노회찬에게 더 우호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심상정 의원에 비해 노회찬 전 의원이 진보신당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충분히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즉 노 대표로서는 의원직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홀가분한 이 시점에 분열된 진보정당들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가 제2창당에 함께 할 주체로 진보신당을 언급했지만,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어렵다. 진보신당원들의 정서는 통합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조차 대체로 “나간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사과를 해야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정의당의 정치인들로선 사과 요구를 수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통합에 대한 의향은 있더라도 진보신당 측에 내세울 마땅한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국고보조금을 받는 진보정의당으로서는 진보신당과의 합당이 그리 화급한 일도 아니다. 한 관계자는 "진보정의당이 진보신당과 합치는 것이 한국 사회 전체로 볼 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양당 모두 당명을 변경하며 ‘제2창당’에 해당하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보신당이야 08년 창당 이후 당명이 바뀌지 않았고 가설정당의 성격을 보여주는 당명이니 너무 늦게 바뀌는 상황이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의당의 경우 분당하면서 만든 새로운 당명을 또 한 번 바꾸는 상황이다. 당내 관계자들은 “바꾸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는데, 무엇으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고 전한다. ‘진보’라는 명칭에 생채기가 너무 많이 났고, 통합진보당과의 구별이 힘들다는 것이 당명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의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양당 모두에서 ‘사민당’이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른다. 진보정의당의 경우 구심점을 상실한 참여계가 다른 구심점을 찾기 위해 사민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전통적 운동의 논리에 충실한 인천연합의 경우 이 명칭에 거부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신당의 경우 사민당이 당명 개정 과정에서 후보로 올라 있기는 하나 ‘노동당’에 비해서는 호응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신당이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의 흐름과 접속할 가능성이 진보정의당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아이러니다. 현재의 진보신당의 정황은 과거 민주노동당에서도 반복되던 어떤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정당이 통합한다고 대중이 그들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게 되거나 살림살이가 확연히 나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체성에서 차별성을 보여주기 힘든 두 개의 정당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비슷한 당명으로 개정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도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을 줄인 인터넷 조어) 것일 게다.

무소속 강동원 의원의 탈당은 ‘통합진보당 실험’의 유산이 진보정의당 내에서도 잘 정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정의당과 진보신당은 ‘도로 민주노동당’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렇다고 지난 몇 년간의 갑론을박을 모두 잊고 합치자고 말할 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이다. 뾰족한 모범답안은 없지만,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양당 정치인들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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