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6일) 한국경제 1면 기사 인터넷 화면 캡처 파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 도착하여 방미 일정에 돌입하였다. 물론 각 언론사의 많은 기자들도 대통령을 따라 바다를 건너갔다. 국내에서 주로 노동단체들의 시위를 비판하는 기사 및 데스크 칼럼을 쓰던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역시 미국에서 기사를 보내왔다.
두 면에 걸친 기사 내용의 핵심은 미국에서는 대한문 앞 텐트농성 같은 것을 하면 즉시 체포되고, 용산참사처럼 화염병을 사용하면 즉시 진압대상이 되며 희생자가 나와도 경찰 측은 책임을 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폴리스라인’이 지켜지고 있고 공권력이 지극히 존중받기 때문에 평화시위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법률엔 수많은 맥락이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을 따로 떼어내어 단선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막말로 한국의 재벌그룹들에게 미국 수준의 경영구조를 가지게 하자고 한다면 경제신문들은 “그렇게 하면 한국 경제 다 망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속도조절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경제신문들은 한국의 재벌그룹과 비슷한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제도에 대해서도 단지 특정 법안들의 유무를 비교해서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다. 너무 과도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옹호하려고 하는 재벌그룹의 소유구조 문제를 떠나서 노동과 시위의 문제로 보더라도 문제는 크다. 미국 사회는 그 분야에 있어 매우 선진적이거나 진보적이라 타의 모범을 보일 정도는 아니라도, 적어도 한국 사회보다는 관용적이고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 역시 일정 부분 ‘미국식 표현의 자유’에 기인한 것인지라 한국 사회에 일률적으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것의 원인과 그것이 전체 사회제도 속 어떤 문맥에서 발생하는지를 알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에 기반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비교없이 제 입맛에 맞는 해외의 사례들을 가져와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질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가령 참여정부의 기자실 폐쇄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논거는 “기자실을 가진 건 일본과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실은 폐쇄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한국경제가 수긍했는가? 이런 논법은 검찰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나라만 바꿔서 헌법재판소에 대해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부러진 화살> 사건에서 판사에게 석궁을 쏜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은 “증거가 사라졌으므로 미국 같으면 무죄였을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미국 같으면 검사에게 석궁만 겨눠도 수십 년형”이라고 재반박했다.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가 ‘한국 최초의 노동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간 지면에 써왔던 기사와 칼럼은 위에 예시한 것들과 같은 단편적인 반박과 재반박의 논리에 해당한다. 특정한 법안이나 제도는 그 사회의 다른 법안 제도 정책 및 문화적 조류를 감안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소거하고 제 입맛에 맞춰 유리한 제도를 호출한다.
윤 기자는 심지어 딱히 처벌한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용인되고 있는 대한문 시위마저 행정지침과 ‘미국 기준’을 잣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의 법과 법원의 판단을 깡그리 무시한 자세라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미국법에 의거해 산재보상을 피해간다는 의혹이 있는 삼성전자나 회계자료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는 쌍용자동차 같은 기업들을 재단해본 일이 있는가? 아니면 역시 한국법원의 판단을 무시하고 파견노동자의 정규직을 거부하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미국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기업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성토한 일이 있는가?
한국 법원의 판단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한 준법주의도 아닌, 미국 기준을 재벌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한 사대주의도 아닌, 사회와 법을 횡단하는 주제에 해당 사안에 대한 어떤 보편적인 권리의 충돌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는 이러한 시선이 한국의 경제신문들의 맨 얼굴이다. 그 재벌일변도의 시선을 그냥 드러내기가 민망하여 ‘노동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면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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