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 결혼을 이루는 요소에서 ‘이성애 관계’와 ‘법적 인정’은 필수적이다. 물론 결혼에는 결합을 원하는 두 남녀의 의지뿐만 아니라, 두 남녀를 세상에 있게 한 가족들의 인정도 필요하다. 결혼을 개인이 아닌 가족 간의 결합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남녀의 결합으로부터 시작하는 ‘정상 가족’만을 정당하다고 여기는, 소위 ‘전통적 결혼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현재의 법률혼 제도가 사회의 발달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관계와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이러한 시도의 밑바탕을 이룬다.

▲ 지난달 26일 전북 전주시 전주수목원에서 전주시자원봉사센터와 한국도로공사 주관으로 열린 제1회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아이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뉴스1

한국의 경우 과거에 비해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워졌으며, 이에 따라 한부모가족, 동거 가족, 자녀가 이혼한 부모가 재혼하지 않고 파트너와 함께 사는 가족 등 가족의 형태가 점차 기존 법률혼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해지는 추세다. 따라서 혼인과 혈연 중심의 가족관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의 형태 모두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9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래포럼의 첫 번째 공개 포럼 ‘새로운 결혼제도에 대한 상상’에서, 참석자들은 기존의 결혼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파트너십 제도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공동생활약정, 경직된 법률혼 꺼리는 이성 커플에게 인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기조발제를 통해 법률혼의 대안적 모델로 프랑스의 공동생활약정(팍스, PACS)를 소개했다.

공동생활약정은 “공동생활을 영위할 목적으로 이성 또는 동성의 성년의 자연인 사이에서 체결되는 계약”으로 정의된다. 동거 커플이 법원에 등록함으로써 법적 지위가 획득되며, 친인척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지만 거주권과 재산분할이 법적으로 보호되고 공동세금납부가 가능하며 세제혜택이 주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공동생활약정 관계에서는 부양의무와 동거의무만이 발생할 뿐,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에게 발생하는 정조의무, 부조의무, 구조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부양의무는 물질적인 부분에만 한정된다. 일종의 민사상 계약인 셈이다.

▲ 지난 29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미래포럼의 첫 번째 공개 포럼 ‘새로운 결혼제도에 대한 상상’이 열렸다.(미래포럼 제공)

공동생활약정이 동성 간 생활동반자 관계에 대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토대로 발달하기는 했지만, 실상 경직된 법률혼 이외의 선택지를 추구하는 이성 커플에게 더 인기가 많다.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2000년에는 동성 커플의 비중이 45~50% 정도를 차지했는데, 2004년에는 15~20% 정도로 나타났다. 장서연 변호사는 “프랑스의 경우 2004년을 기점으로 법률혼이 눈에 띄게 줄고 그 이상으로 공동생활약정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장 변호사는 이어 “법률혼 밖에서 태어난 프랑스 아이들은 2008년에 51.6%에 다다른다”며 “어떤 가정 형태에서 태어나더라도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혼인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며, 육아가 가족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에 더해 법률혼 이외의 가족 형태가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만일 새로운 파트너십의 도입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전통적 가족을 해체할 수 있다는 정서적 반발 외에 현실적으로 문제시될만한 지점은 바로 상속권이다. 장서연 변호사는 “프랑스 공동생활약정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일 뿐 친족이나 신분상의 변동이 없고 상속권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한국에 파트너십 제도가 도입된다면 상속권이 가장 논쟁적인 문제지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생활동반자 등록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또한 “상속권 인정 여부, 상속 순위 문제, 제3자에게 효력을 미치는 신분관계의 변동, 자녀 입양과 친권 문제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활동반자 등록법이 사회 혼란 야기한다는 것은 호들갑”

▲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이 지난 29일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미래포럼의 첫 번째 공개 포럼 ‘새로운 결혼제도에 대한 상상’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미래포럼 제공)

진선미 의원은 “생활동반자 등록법은 단순히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결혼 제도에 포함되지 못한 동성 커플만의 문제는 아니”라며 “사회 밖으로 밀려 나가는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포섭해 정책적 지원, 관리를 가능하게 해 사회적 안정과 통합을 증진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 의원은 “생활동반자 등록법을 입법하면 전통적 가족이 붕괴하고 가족이 담당해 온 순기능이 모조리 없어져 사회가 혼란스러우리라는 것은 지나친 호들갑”이라면서도 “(새로운 결혼제도가) 기존 제도나 기존 가족의 붕괴를 촉진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며 제도 도입 이전에 충격 완화를 위한 여론 형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긍정했다.

진 의원은 “호주제 폐지 논의 당시 호주라는 제도가 존재해야만 가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념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안적 결혼 제도의 내용 자체보다는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사실상의 거부감과 실제로 필요한 부분을 명확히 정리해 여론을 제대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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