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는 사람에 대한 상당히 표준화된 체크리스트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이, 졸업학교, 결혼여부, 직장, 외모, 성별 등을 적고, 마음속으로 채점을 한다. 사회 전체적인 기준에 비추어 그 사람의 우수성을 보고, 나와 비교하여 상대적인 등급을 정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이런 평가를 내리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등급에 따라 대우한다.

이 과정은 은밀히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표 나지 않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쳐다보는 방식, 말투, 몸짓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며 관계를 설명하는지, 잠깐만 사람들을 관찰해보아도 쉽게 안다.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저 : 인권운동사랑방 출판사 : 오월의봄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에서 비혼모, 장애인,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게이, 이주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위 사회적 소수자 또는 약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은 이 '시선'에서 시작한다. 소수자가 겪는 시선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과 '불쌍하게 보는 시선’.

'이상하게 보는 시선'과 '불쌍하게 보는 시선'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같다. 둘 모두, 마음 속 평가에서 상대를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등급 매겼음을 겉으로 드러낸다. 불쌍하게 보는 경우 일종의 자선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상하거나 불쌍하거나 둘 다 굴욕적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 나라에서 마음속의 평가와 시선은 광범위해서 우리의 주변을 장악하고 일상을 지배한다. 무대 앞에 서면 누구나 위축되듯이, 이런 시선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위축된다. 이 책에서 소수자인 이들이 말하는 '평범함'에 대한 욕구는, 위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다. 레즈비언이나 게이와 같이 드러냄을 선택할 수 있는 이에게 커밍아웃은 그 시선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된다.

사실 불편한 시선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소수자 뿐만은 아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견고한 등급제 속에서,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일은 일상적이다. 무시당하기 싫어서 성공을 꿈꾸는 이가 얼마나 많으며, 오르고 또 올라도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한 적은 얼마나 많은가. 등급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만이, 모두를 얕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하대하는 몸짓과 눈빛과 반말로 우리를 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차별이라고 느끼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등급의 사다리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말이다. 만일 올라가지 못한다면,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못하거나, 열심히 할 수 없게 만든 상황 탓이다. 소수자들의 불만에 대한 해결도 마찬가지이다.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하면 된다. 마음 속 체크리스트가 사람을 평가하는 공정한 도구라고 믿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 마음속의 체크리스트와 등급평가는 통계나 선입견을 토대로 한다. 여기에 맹점이 있다. 통계는 '우리'를 설명하지만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통계는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어떤 개인을 평가하는 데에는 사용될 수 없다. 과학적 토대조차 없는 선입견은 더더욱 그렇다. 하물며 생존과 기본권을 결정하는 고용, 의료, 교육 등의 영역에서, 통계나 선입견을 가지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 하나의 개인은 몇 개의 단순한 지표로 설명되는 통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비합리성은 이성을 가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고유함을 보지 못한다. 오랜 세월 체크리스트로 훈련된 우리의 눈은, 상대의 잠재력과 숨겨진 보석을 보는 능력을 잃었다. 세계 곳곳에서 이미 제정하였고 우리도 제정하려고 노력하는 '차별금지법'은 이렇게 편견으로 흐려진 이성을 법규로 통제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차별을 당하고 또 차별을 한다. 그러므로 차별을 금지한다면, 나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도 있지만, 나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통제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비합리적인 등급 매김을 해체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다.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아도, 지금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울림이 크다. '참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내가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이들은 아주 나직하지만 세월이 담긴 묵직한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화답에서 반차별운동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 저자들은 평등한 사회를 함께 꿈꾸고 노력하자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수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투영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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