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 사이에 팀 컬러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단 말인가. 화끈한 화력을 앞세운 공격력과 선발투수진의 경쟁력을 앞세워 선이 굵고 색깔이 분명한 야구로 전국의 야구장을 뜨겁게 했던 롯데 자이언츠. 하지만 올 시즌 자이언츠의 경기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한마디로 '무색, 무미, 무취'의 '3無' 야구를 선보이고 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기간 동안 자이언츠의 야구는 공격력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이대호, 홍성흔, 가르시아, 강민호, 김주찬, 조성환 등이 주축이 된 타선은 리그 최강의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기존 전력 외에 손아섭, 전준우, 박종윤 등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선수들의 잠재력까지 깨워내면서 자이언츠 타선은 리그에서 가장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였다. 당연히 사직구장은 관중들로 가득 메워졌고, 평일에도 2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들이 사직구장에서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감독 재임 기간 동안 팀 창단 이후 최초로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비록 포스트시즌 첫 번째 무대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었지만, 자이언츠 팀 역사상 가장 성과 있는 시즌들이었다. 그러나 자이언츠 구단 수뇌부는 로이스터 야구로는 도저히 우승을 거머쥘 수 없다고 판단, 아마야구 고려대 감독으로 재임하던 양승호 감독을 후임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양승호 감독의 지명도로 볼 때 자이언츠 팬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2011시즌 초반 양승호 감독은 숱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팀을 단기간에 추슬러 특유의 화끈한 공격야구에 세밀한 야구를 더하기 시작했다.

2012시즌에는 김성배, 이명우, 최대성 등을 불펜의 핵심요원으로 키우면서 그 동안 자이언츠 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불펜야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양승호 감독이 재임하는 동안 자이언츠는 창단 이후 최초로 정규시즌 2위에 올랐고, 2012시즌에는 1999시즌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 2년 연속 덜미를 잡히면서 그토록 고대하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다. 양승호 감독도 결국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더 큰 충격은 양승호 감독이 고대 감독 재임시절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그 동안 보여준 덕장의 이미지도 하루 아침에 붕괴된 것이다.

▲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 대 롯데 경기. 역전패한 롯데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롯데는 9회와 10회 각각 2실점해 6연패에 빠졌다.ⓒ 연합뉴스
올 시즌을 앞둔 자이언츠의 선택은 넥센 히어로즈 감독에서 물러난 김시진 감독이었다. 김시진 감독은 단 한 차례도 포스트 시즌 진출 경험이 없었지만 그 동안 넥센 히어로즈의 전력이 워낙 불안정했다는 점이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했다. 자이언츠에서 본격적인 지도력을 시험받는 무대가 된 것이었다. 김시진 감독이 부임하면서 구단이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부분은 역시 투수력 강화였다. 그러나 12게임을 치른 지금, 자이언츠 투수진은 가장 큰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불펜이 붕괴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시즌만 해도 최고의 필승카드였던 정대현과 김사율이 전혀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고 구위가 현저하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FA로 베어스로 떠난 홍성흔 대신 보상선수로 영입한 김승회는 시즌 초반 노예처럼 등판하고 있다.

지난 시즌 초반 '파이어볼러'로 위력을 떨친 최대성도 아직은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모습이다. 그나마 김성배만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면 고군분투하고 있다.

투수진 뿐만 아니라 타선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꾸준히 누상에 주자를 보내지만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고 있다.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팀 타선의 핵심이었던 홍성흔과 김주찬을 고스란히 두산과 KIA에 보내고 말았다. 프런트의 무대책이 빚어낸 참사였다. 홍성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화에서 장성호를 트레이드 해오고 김주찬의 공백은 김문호, 김대우 등으로 메운다는 복안이었지만, 홍성흔과 김주찬의 공백은 하루 아침에 메워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4번 타자로 나서는 강민호는 최악의 부진에 빠져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땜빵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금메달에 공헌한 이후 점점 기량이 퇴보하는 느낌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FA 최대어로 부각될 예정이지만 솔직히 50억 원 이상을 쏟아 붓을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끔씩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는 등 산만한 모습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4번 타자가 중심이 잡히지 못하니까 팀 타선이 도미노처럼 무기력 증상을 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 4번 타자 후보로 거론되던 전준우는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특타를 통한 의식적인 밀어치기로 타격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20-20 클럽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될만한 활약은 나오지 않고 있다.

시즌 초반 한화 이글스와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5연승을 챙긴 이후 자이언츠는 다른 구단과의 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즌 초반 5연승이 거품이었음을 부산 홈팬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사직구장은 연일 썰렁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28,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직구장에 4월 17일 찾아온 관중은 고작 6,451명이다. 아무리 요즘 날씨가 봄 같지 않은 괴이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예년 같았으면 평일에 최소 12,000명의 관중은 찾아오는 사직구장이었던 만큼 관중 감소 현상은 심각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자이언츠가 하는 야구를 보면 리그에서 가장 답답함을 안겨주는 변비야구의 결정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토록 재미없는 콘텐츠를 누가 3시간 넘게 앉아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단 말인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려는 의지나 절박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장타력으로 안 될 것 같으면 1992시즌 우승 당시의 중거리포 타선으로 무장할 시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자이언츠 타자들의 모습을 보면 집요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직구장의 흥행 한파는 올 시즌 리그 흥행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올 시즌 평균관중이 이번 주 들어 10,000명 밑으로 떨어졌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총 관중 500만 명 돌파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차라리 로이스터 야구라도 보여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만큼 올 시즌 자이언츠 야구는 정말 재미없다. 가르시아가 우익수 자리에서 특유의 박수 제스쳐로 플라이볼을 잡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타석에서 자신이 원하던 타격이 안 나오면 제 분을 못 이겨 허벅지로 자신의 방망이를 두 동강내던 투지가 그립다. 요즘 자이언츠 선수들 모습에선 투지가 보이지 않는다. 제발 선수들이 각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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