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한겨레 1면 기사. 대통령이 대기업을 압박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 오늘자 경향신문 1면 기사.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속도조절에 나섰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대통령의 발언엔 한겨레 1면과 경향신문 1면이 지적한 사안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화두였던 경제민주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민주당 입장에선 쓰기 부담스러웠던 이 조어를 선점하면서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기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의 주창자라고 자임하는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사실상 밀려난 것을 보고 ‘사기극’이었다고 폄하하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최근 기업사범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은 상황을 두고 ‘일정 수준의 의지가 있다’고 평하는 경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발언을 둘러싼 신문보도들은 혼란스럽지만 그 ‘실체’에 대해 평가할 단서들을 제공한다. 박대통령은 대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경제민주화 법안이 지나치게 대기업을 옥죄는 것 역시 경계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했지만 대기업을 옥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 오늘자 중앙일보 8면 기사. 대통령이 '엇갈린 정책 신호'를 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내용들을 종합하면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대한 어떤 상이 보인다.
민주당은 이를 ‘경제민주화 노선의 후퇴’라고도 비판하지만 그보다는 ‘의회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마라’는 비판 쪽이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협의하다 보니 새누리당 공약 이상의 ‘대기업 옥죄기’ 정책이 포함되는 것에 대해 우려한 것 뿐이다. 따라서 새누리당 입장에선 후퇴가 아닐 수 있고, 다만 법안은 의회의 협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인데 대통령이 너무 간섭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평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듯 경제민주화 문제에 대한 선명성 경쟁이 ‘재벌 대기업에 대한 규제정책의 경쟁’으로 흐르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역시 사실상 그런 경쟁을 벌였지만, ‘재벌 규제’는 경제민주화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 오늘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과도한 규제'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소상하게 담았다.
▲ 오늘자 매일경제신문 4면 기사. 역시 재계의 우려를 소상하게 담았다. 이러한 보도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뻔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재벌 규제만을 늘리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능사는 아닐 것이다.
세밀하게 살피면 재벌 규제 논리가 자유주의 내지는 신자유주의 논리일 수 있다는 ‘장하준 그룹’ 등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재벌을 옥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 등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노사정 합의가 추구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재벌 규제에 대한 강박’ 보다 오히려 경제민주화의 본령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노사정위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 오늘자 한겨레 5면 기사. 노사정위의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고민하는 쪽에서는,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대해 무턱대고 비판하는 태도가 개혁담론이나 진보담론의 내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야권지지자에겐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나름의 내용도 있고 실행의지도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을 보면 대기업에게 투자를 압박하고, 대기업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 수를 늘리며, 대기업에 대한 통제는 반대하는 등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생태계’의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야권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있느냐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주류업계의 독점 문제를 맛있는 맥주의 문제와 연결시킨 민주당 홍종학 의원의 발의 같은 것이 바람직하며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은 최근 경제민주화를 하면 맥주맛이 좋아진다는 취지의 입법발의로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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