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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 언제까지 ‘연구’만 하실 건가요?쌍용차 분향소 철거 사태, 서울시의 현명한 중재를 바란다
윤다정 기자 | 승인 2013.04.05 02:51

   
▲ 서울 중구청이 4일 오전 덕수궁 앞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철거작업을 벌이고 있다.ⓒ뉴스1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가 지난 4일 새벽 중구청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철거는 10분 만에 끝이 났다. 천막을 지키며 잠을 자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소식을 뒤늦게 듣고 달려온 범대위 관계자를 비롯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시민들은 천막이 있던 자리로 밀고 들어온 덤프트럭이 흙더미를 한가득 쏟아놓는 장면을 보면서도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여긴 함께 살자는 곳이야! 너희가 뭔데!” 악에 받친 비명 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화단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는, 혹은 도로 구석에 세워진 경찰차로 연행해 가는 거친 손길뿐이었다.

지난해 4월 처음 설치된 이후 1년 간 쌍용차 분향소는 각종 시국 현안에 대한 연대 투쟁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늘 제자리를 무사히 지키지는 못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그러했다.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는 지난해 5월 24일에도 분향소에 들이닥쳐 천막을 철거하고 집기들을 모두 실어 내버렸다. 항의하던 노동자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연행되었다.

당시 분향소 강제 철거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들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서울시청으로, 정확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로 쏠렸다. 쌍용차 분향소가 서울시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지만, 행정가이기 이전에 시민운동가로서 사회 곳곳에 산재한 부조리에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박원순 시장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지난 2011년 10월 27일 서울시청으로 첫 출근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를 기다렸다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들의 기대에는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 일례로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10월 27일 첫 출근길,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이용료를 본인 부담으로 하겠다는 서울시를 비판하며 농성 중이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를 외면하지 않고 악수를 청했다.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며 “꼭 챙기겠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장이 시정을 비판하는 시민에게 친근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넘어 시민의 목소리에 정성껏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시민사회에 기분 좋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시장이 시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쌍용차 분향소 철거 사태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았을 때 박 시장이 보인 반응은 의외로 소극적이었다.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wonsoonpark)을 통해 “파악해 보니 중구청이 서울시와 아무런 상의 없이 철거 조치했다”며 “구청장 권한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시장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뭔지 연구해보겠다”고 덧붙였다.

   
▲ 지난해 5월 24일,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wonsoonpark)을 통해 “(쌍용차 분향소 강제 철거는) 구청장 권한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물론 시가 구청에 갖는 권한이 자제를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고, 무엇인가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상황에서 박 시장이 손을 아예 놓고 있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지난해 5월 25일 서울시는 이창학 서울시 행정국장의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중재안을 제시했으며, 같은 달 31일에는 분향소 측과 협상안을 마련해 중구청에 제시했다. 같은 해 6월 3일에는 방한 중이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박 시장이 함께 쌍용차 분향소를 찾아 쌍용차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2003년 2월 17일 박 시장은 한겨레에 “추운 겨울에 수천 명의 성직자들이 길거리에 나서고 주민들이 생업대신 피켓 시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부를 우리는 진정으로 원한다”는 문장으로 끝맺음되는 칼럼을 한 편 기고하기도 했다.

“밤샘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시간만 가만히 서 있어도 온몸이 꽁꽁 얼어버리는 추위에 한데서 밤샘을 하는 사람들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원불교 교무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지난 13일 1200여명의 남녀 성직자들이 꼬박 밤을 새우며 추위에 떨었다. 무엇이 이들에게 야외 밤샘 기도회를 열게 하였는가? 정부가 설 연휴 직후인 2월4일 정권 말기의 어수선한 틈을 타 핵 폐기장 후보지를 발표하자 이들은 비상총회를 소집하여 계획을 백지화하고 핵 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을 전환하도록 촉구하는 기도회를 열게 된 것이다. 동시에 이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교대로 24시간 1인 시위와 108배를 하고 있다. (후략)” (한겨레, 2003년 2월 17일자 2면, ‘한겨울 밤샘기도’)

일련의 언행과 사건을 통해 볼 때, 박 시장이 풍찬노숙하는 해고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박 시장은 지난해 4월 쌍용차 분향소에 과태료를 부과했다는 언론 보도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조례도 지켜야 한다”며 시장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대한문 농성장 철거 이후 서울시 대변인실 관계자는 “아직 특별히 (공식 입장 등의) 발표를 준비하는 바는 없다”고 말했다. 딱히 나설 계획은 없다는 말이었다. 대한문 농성장 철거에 박 시장이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시민운동가 박원순과 서울시장 박원순 사이에서 달라진 책임과 권한의 ‘딜레마’ 그 자체 인지도 모른다. 박 시장도 자신에게 쏠려있는 관심과 기대치를 잘 알고 있겠으나, 서울시장 박원순으로서 그의 역할은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도 이해한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신청사 6층 집무실에서 열린 '시장과의 주말데이트' 열두 번째 시간에서 시민들의 민원을 듣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서울시 제공)ⓒ뉴스1

하지만 박 시장은 제도 정치 외곽의 흐름을 타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어 ‘시민 정치’를 하겠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서울시장 이전에 그는 ‘인권 변호사’이기도 하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는 제도권 바깥, 보수 언론에 의해 불법 건조물로 일컬어지는 천막 한 동이 유일했다. 박 시장 자신이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가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던 맥락을 봤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땅히 법과 조례와 같은 제도권 바깥을 맴돌 수밖에 없는 힘없는 노동자들을 보다 따뜻하고 사려 깊게 굽어 살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박 시장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참여연대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정황상 도의적으로 철거 문제를 묵인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중구청 측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제를 요청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참여연대 출신 서울시장이 농성장 철거의 상급기관장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도 느껴졌다. 

대한문 앞에 둥지를 틀었던 해고자들도, ‘서울 중구 태평로2가 58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주소지를 가진 서울 시민이다. 답답한 구석을 긁어 주는 명쾌한 시정으로 서울시민을 환호하게 만든 박 시장이다. 서울시와 상관없는 구청장의 권한이란 것이 ‘행정적’으로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적 위계의 현실에서 서울시장이 상관할 수 없는 구청장의 권한은 존재하는 것일까. 연구와 현실, 수동적 시장과 능동적 행정가 사이에서 박 시장이 보다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윤다정 기자  songbird@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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