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 연못에 개구리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개구리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은 훌륭한 우두머리를 갖고 있는데 우리만 없구나. 그래서 게을러지고 멋대로 날뛰게 되는거야. 만약 훌륭한 우두머리가 우리를 잘 지도해 준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 질거야. 그러니 우리도 그런 훌륭한 우두머리를 갖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개구리들은 회의를 가진 후 대표를 뽑아 제우스 신에게 보내 멋있는 임금님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우스는 개구리들의 요청을 받고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임금님이라도, 제우스가 보기에는 없는 편이 훨씬 나았으니까요. 하지만 워낙 개구리들이 조르는지라, 힘들 때 올라 가 쉬라고 나무 토막을 하나 던져 주며 임금님으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자나깨나 훌륭한 임금님을 기다리던 개구리들은 움직이지도 않는 나무토막을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임금님 말고 다른 멋진 임금님을 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개구리들의 성화에 못 이긴 제우스는, 이번에는 황새를 보내 주었습니다. 연못가를 시원스레 걸어 오는 황새를 본 개구리들은 이번에는 진짜로 훌륭한 임금님이 왔다고 모두들 춤을 추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떡하랴! 겉보기에는 멋있는 그 임금님이, 사실은 천하에 몹쓸 육식 동물인 것을... 다가 오는 개구리들을 보기 좋게 입을 다시며 잡아 먹는 황새 임금님! 훌륭한 임금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개구리 연못에는, 얼마 후 한 마리의 개구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합니다...

▲ 서울 신당역 곤충 파충류 체험장에서 관람객을 쳐다보는 청개구리. 이솝우화에 나오는, '포식자가 없는 파라다이스'라 할만하다. 2013.2.22/ ⓒ뉴스1

저 유명한 이솝우화 중 “임금님을 원한 개구리”의 내용이다. 이 우화는 ‘현상유지’의 중요성이나 ‘구관이 명관’이란 격언을 증명하는 보수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고, 모든 국가는 수탈기구에 불과하다는 좌파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취임 한 달이 지난 박근혜 정부는 이전의 정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통나무 임금님’인 것으로 보인다. 87년 이후 5년 단임제 정부들이 취임 초 무언가 비전을 제시하고 역점사업을 추진했던 것에 비해 박근혜 정부에겐 이렇다 할 것이 없다.

한 달 동안 정부조직개편안으로 야권과 줄다리기를 했고 야권이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개편안이 통과된 후에도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나마 미래창조과학부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의 핵심인 ‘창조경제’의 개념을 이렇다 제대로 설명하는 이도 없는 지경이다. 한마디로 말해 ‘막연한 로망’은 있으되 그게 무엇인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나무 임금님’에게는 나름의 미덕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대운하라는 끔찍하도록 구체적인 사안에 ‘로망’을 가지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저 ‘패밀리 비즈니스’를 계승하는 것에만 골몰했을 뿐 딱히 대통령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면, 관료들이 ‘전례’와 ‘메뉴얼’을 참조하여 일을 처리하게 놔둘 뿐 4대강 수준의 참극을 초래하지는 않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지배계급이나 국가기구가 민중을 수탈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만 골몰하는 전근대사회가 아니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국가 역시 ‘부르주아들의 이익조정 기구’로 보겠지만 하다못해 역할을 최소화한 ‘야경국가’라 하더라도 인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과거의 야경국가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는 현대사회의 국가의 경우 통나무보다 많이 움직이지만 황새처럼 개구리들을 잡아먹기는커녕 ‘황새가 개구리들을 덜 잡아먹도록’ 통제를 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부르주아들의 이익조정기구’라는 좌파적 국가관 역시 부르주아들이 지나치게 수탈을 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적절한 조절을 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전을 맞고 있다. 박정희식 발전국가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민주화세력이 이를 개혁하겠다고 받아들인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이 양극화를 심화시켜 사람들이 독재정부 시절을 향수하는 실정이다.

발전국가 모델의 인권침해적 요소는 약화시키고 복지국가처럼 삶의 질을 돌보는 부분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바꾸어나가야 했는데 1997년 이후의 ‘개혁’은 전자는 충분히 약화시키지 못했고 후자는 충분히 강화시키지 못한 상황이다. 서민의 삶이 붕괴하는 이런 맥락에서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와 같은 담론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중점적으로 제기되었으나 선거 이후에 이러한 담론들을 증발해 버렸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가능성이나 눈앞에 다가운 북핵문제 등 염두에 두거나 시급히 대책의 기조를 마련해야 하는 다른 사안들도 많다. 박근혜 정부가 IMF를 맞아 출범했던 국민의 정부처럼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느라 내치에 소홀하다면 조금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겠으나 현 상황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대책’이다.

'소통'이란 측면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통나무' 성질은 두드러진다. 참여정부는 국정브리핑을 운영했고 이명박 정부 역시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이라도 진행했다. 라디오연설의 경우 '일방통행'이란 지적은 있었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현재의 국정상황 및 정부대응을 설명한다는 취지는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런 종류의 '일방통행'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인사 문제에 관한 사과도 17초짜리 '대독'으로 하고 대통령의 얼굴을 볼 길이 없다. 신문들은 대통령의 최근 사진을 확보하지 못해 울상이다.

그런 와중에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국립국어원에 문의해봤다며 ‘박근혜 정부’는 고유명사이므로 ‘박근혜정부’라고 붙여써야 한다는 얘기나 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음을 알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 생각하고 몸단장에나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평화로운 개구리들의 연못에서 ‘통나무 임금님’은 괜찮은 선택일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와 현재 대한민국의 맥락에서 ‘통나무 대통령’은 크나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정치는 황새가 개구리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 것을 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무 목적없이 가만히 있다면 결정적인 실책은 피할 수 있겠으나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아무쪼록 대통령께서 이만 청와대에서 일어나 ‘통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통나무가 깨어나 봤자 황새들을 통제하기는커녕 황새와 함께 개구리를 잡아먹을 것이기에 가만히 있는게 낫다고 냉소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 해남간척지의 황새 한마리가 동면중인 개구리를 잡아먹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2013.1.10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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