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14회에서 오영(송혜교 분)은 이제는 친오빠가 아닌, 남자가 되어버린 오수(조인성 분)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사랑했어. 널 옆에 두고 사랑할 자신은 없지만..."

왕비서(배종옥 분),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자,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 등 주위에 사람은 많았지만, 그나마 장변호사(김규철 분)만 믿을 수 있었던 오영. 어느 날 오빠라며 나타나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기 시작한 오수는 6살 이후 끊임없이 남을 의심하고 거리감을 두어야 했던 오영이 정말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믿음직한 존재였다.

하지만 오수는 친오빠가 아닌, 오영의 돈이 탐나 잠시 가짜 오빠 행세를 한 사기꾼이었다. 언제나 사람에 대해서 회의적인 오영이었다고 하나, 그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하지만 오영은 이상하게 오수가 그리 밉지도 증오스럽지도 않다. 형체를 바라보는 눈은 보이지 않으나 그 누구보다도 내면을 바라보는 눈은 밝은 오영 또한 우리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오수의 진짜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은 맞지만, 오영을 사랑한 것은 진심이었다고.

결국 오수는 오영 곁을 떠났고, 오영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영을 옭아매던 왕비서에게도 결별을 선언했다.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애써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오수와 달리 끝까지 오영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왕비서는 '저항적'이었다. 체념하고 집을 나가는 순간에도 왕비서는 오영을 향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강조했다.

오영과 장변호사를 제외하곤, <그 겨울>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왕비서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격앙돼 있다. 특히 오수를 향한 진소라의 집착은 보는 이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였다. 또한 오영을 사랑한다는 맹목적 명분하에 정작 오영의 눈을 방치한 왕비서의 삐뚤어진 모성애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광기어린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 어느 누구도 <그 겨울>을 말도 안 되는 '막장 캐릭터쇼'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요 인물들의 감정이 극도로 불안정하다고 하나, 그들은 나름 대로 삐뚤어지고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는 마치 내 주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이야기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수, 오영과 반대되는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적대자 관계)는 있으나, 딱히 악역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심지어 자신의 연인 진소라가 떠났다는 이유로 기를 쓰고 오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김사장 또한 버림받은 사랑에 삐뚤어진 영혼으로 보일 정도다.

물론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세상에 나쁜 인간 없고 그들이 저지른 모든 악행이 너그럽게 덮어질 수 있는 끔찍한 오류가 있긴 있다. 오수 때문에 짝사랑하는 연인이 죽었다는 충격에 막 살아온 조무철의 인생과 오수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에 오수를 사지로 끌어들이는 김사장, 그리고 오영에게 가짜 오빠 행세를 한 오수의 잘못은 어떻게 해서든 그 악행에 맞는 죄값을 치러야 한다.

다만 본의 아니게 '사기'로 오영과 관계를 시작했으나, 오수는 오영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참회했고 왕비서, 장변호사가 주는 돈 또한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쓰지 않았다. 그렇게 오수는 불우한 환경을 탓하면서 막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오영 자신을 향한 오수의 진심만큼은 훤히 꿰뚫고 있고, 본인 스스로도 오수를 많이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오영은 떠나는 오수를 그저 바라만 보면서, 애써 끓어오르는 눈물을 삼킨다.

"네가 날 속인 거 무죄야. 넌 살기위한 방법이었고 난 행복할 때도 있었으니까"

6살 이후 시력과 함께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행복'을 잃어버린 오영에게 오수는 오랜만에 행복과 사랑을 안겨주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오수 덕분에 오영은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고 살고 싶은 본래의 욕망이 꿈틀거리게 됐다.

오영은 오수에게 당신을 옆에 두고 사랑할 자신이 없다면서 덤덤하게 말했으나 오수, 오영은 물론 세상 모든 이들은 알고 있다. 오영 곁에는 그리고 오수 곁에는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보다도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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