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안전문기업 하우리 직원들이 전날 일어난 주요 방송사와 일부 금융사들의 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충신동 본사 보안대응센터에서 전용백신과 대국민 보급 백신에 대한 악성코드 진단치료 백신 작업 및 추가적 징후와 복원 작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뉴스1

처음엔 KBS와 MBS 직원들의 컴퓨터의 자료가 한꺼번에 날아간 상황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내부전산망이 뚫렸다고 발표되었다. KBS와 MBC, YTN 등의 방송국과 신한은행과 농협 등의 금융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당했다는 상황이 전해졌다. 어쨌든 북한 소행이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타났다.

약간 시간이 지나자 이들 중 상당수가 LG 유플러스에서 제공하는 내부전산망을 이용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언론사와 SNS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규명하기 시작했고 함께 묶이던 신한은행 서버문제의 경우 별도의 사건으로 계열화되었다. 그 후 단지 LG전산망이 뚫리는 것만으로는 다수 컴퓨터의 자료를 삭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어떤 경로로 악성코드가 유입되었는지에 대한 추측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제(20일)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 동안 벌어진 다수 언론사의 보도와 SNS 이용자들의 추측의 논리적 흐름이다. ‘전산망 대란’ 사태가 일어난 어제 오후엔 조회수 측면에서 볼 때 다른 기사를 올린다는 것이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각 방송국과 신문사는 순간순간 방송 리포트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자사가 이 상황을 먼저 파악했음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YTN뉴스의 경우 자사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관계로 "YTN보도국"이라는 현장에서 기자가 뉴스를 전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방송국 보도라도 어제 같은 상황에선 속보성 정보를 미리 회사계정 트위터 등에 뿌려 SNS에서 화제가 된 후 시청을 유도했기 때문에 사실상 ‘인터넷 전쟁’이었다. 언론계 관계자들은 어제 오후 각 언론사 간부들이 “우리가 먼저 파악했는데 왜 1보는 더 늦었느냐”와 같은 힐난을 기자들에게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 옛날이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일 언론사가 하나 있다. 국가기간 통신사로서 오랫동안 ‘언론들의 언론’으로 군림해왔던 연합뉴스다. 연합뉴스는 어제의 보도경쟁에서 다른 통신사나 방송사, 그리고 인터넷뉴스들에 비해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는 어제 오후 위에서 서술한 각 국면마다 1보가 상대적으로 늦었다.

이는 과거의 매체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던 일이다. 일간지가 일정한 마감을 지키고 공중파 뉴스가 일정한 시간에 방영되던 때에 연합뉴스는 민영 통신사들과만 경쟁을 했고 국가기관에 대한 접근성의 우위를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나서서 추측을 하고 진실게임을 벌이는 어제와 같은 상황에선 연합뉴스의 우위가 더 이상 우위로 작용하지 않았다.

‘연합뉴스의 고난’은 이번 사건으로 드라마틱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다. 올해 1월부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은 연합뉴스와의 전재 계약을 해지했고 그 후엔 뉴시스나 뉴스1 등 다른 통신사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언론들은 작년 연합뉴스의 103일 파업 동안 연합뉴스가 없이도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에 입각하여 전재료 협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합뉴스가 가격 인하도 분할 협상도 거절하자 조선과 중앙은 전재 계약 해지로 대응했다. 당시 연합뉴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제부 기자들은 침울해했다고 전하지만, 어찌됐든 두 신문사는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꾸려오고 있다. 다른 신문사들도 ‘연합뉴스로부터의 독립’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연합뉴스의 위상이 하락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 위상 하락이 지속적으로 이어질지 어느 정도 선에서 민영통신사 및 다른 신문사들과 ‘권력의 균형’을 창출하게 될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연합뉴스의 ‘권력’을 흔들게 한 매체환경 변화의 문제는 오늘날의 언론문제를 바라보는 핵심적인 토양으로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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